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4월 16일(현지 시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중국 경제보복 우려로 대만 언급 피해온 日
일본은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1972년 이후 대만 언급을 피해왔다. 그동안 중국과 각종 분쟁이 벌어졌을 때도 대만을 거론한 적이 없다. 또한 대만과 경제교류를 활발하게 해왔음에도 정치·외교적으로 상당한 거리를 뒀다. 일본이 이런 입장을 보여온 것은 중국의 경제보복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의 최대 수출시장으로, 일본 기업 1만3000여 개가 중국에 진출해 있다.그렇다면 스가 총리와 일본 정부가 중국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미·일 공동성명에 대만을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스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대만 카드를 지지함으로써 상당한 반대급부를 얻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 사태로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도쿄올림픽에 대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다.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은 올여름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도쿄올림픽·패럴림픽 개최를 위한 스가 총리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스가 총리는 또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관련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대답을 받아냈다. 공동성명에는 “납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그것이 심각한 인권 문제이며, 미·일은 북한의 즉각적인 해결을 촉구하기로 재확인했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도쿄올림픽 개최 노력 지지와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로부터 굳이 지원을 확인할 필요가 없는 부차적 현안이라고 할 수 있다.
스가 총리와 일본 정부가 바이든 대통령과 미국 정부로부터 얻어내려던 것은 바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안전 보장 약속이다. 센카쿠 열도 문제는 영토 및 해양 패권과 관련된 중차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센카쿠 열도를 자국 땅으로 만들기 위해 무력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명해왔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중국 해경선(우리나라 해양경찰선)과 해군 함정들은 일본이 주장하는 센카쿠 열도 내 영해와 접속수역에 진입해왔다. 심지어 중국 해경은 올해 들어 해경선의 센카쿠 열도 인근 해역 진입 등의 상황을 수시로 공개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정부는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가 통과시킨 ‘해경법’에 따라 2월 1일부터 중무장한 해경선을 센카쿠 열도에 출동시키고 있다. 해경법에는 해상에서 중국 주권과 관할권을 침해하는 외국 선박 등을 대상으로 ‘무기 사용을 포함한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일본 정부도 이에 맞서 외국 선박(중국 해경선)이 센카쿠 열도에 접근해 불법 상륙을 감행하는 것을 ‘강력범죄’로 규정하고 해상보안청(우리나라 해양경찰청)의 무기 사용을 허용했다. 또한 중국 인민해방군이 센카쿠 열도를 무력으로 점령할 것에 대비해 동중국해 난세이(南西) 제도에 미사일 등을 대거 배치하고 해상자위대와 수륙 기동단(우리나라 해병대) 등을 동원해 탈환 훈련까지 실시해왔다. 따라서 이번 공동성명에 “센카쿠 열도는 미국의 일본 방위 의무를 규정한 미·일 안보조약 제5조의 적용 대상이며 센카쿠 열도에 대한 일본의 실효 지배를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내용이 들어간 것은 스가 총리와 일본 정부로선 의미심장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양국은 3월 16일 외교·국방장관(2+2) 회담에서도 이런 내용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센카쿠 열도 침략을 가정한 대규모 연합훈련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청일전쟁 때 일본에 편입된 센카쿠 열도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재팬 타임스]
반면, 중국은 명나라 때인 1372년 센카쿠 열도를 처음 발견했으며 류큐 왕국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번속국(藩屬國)이었다고 주장해왔다. 중국은 또 청일전쟁에서 패배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차지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청나라는 1895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일본에 대만과 부속도서들을 할양한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대만은 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중국은 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에 센카쿠 열도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점거를 승인한 적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이 점령했던 오키나와와 센카쿠 열도는 닉슨 전 대통령과 사토 전 총리의 1969년 11월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1972년 일본에 이양됐다. 그런데 당시 공동성명에는 “대만 지역의 평화와 안전 유지도 일본의 안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내용이 들어갔다. 그 이유는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한 틈을 노려 중국이 대만을 점령할 것을 우려한 미국이 일본 측에 대만 안보를 위한 방파제 역할을 해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친(親)대만 정책을 추진했던 사토 전 총리는 중국이 대만을 무력 통일할 경우 센카쿠 열도도 위험할 것이라고 생각해 미국 정부의 요청을 수락했다. 이후 친중 정책을 추진하던 다나카 가쿠에이 전 일본 총리는 1972년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했다. 중국은 반대급부로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했다.
대만 카드 협력에 강력 반발하는 中
지난해 11월 미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가 동중국해에서 합동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미 해군]
중국 정부는 일본이 미국의 대만 카드에 협력한 것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심지어 중국 군부 일각에서는 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의 위성타원(圍城打援: 성을 포위하고 적을 고립시키기 위해 달려드는 적의 지원 부대를 친다는 뜻) 전략에 따라 일본을 먼저 공격해 제압한 후 미국을 막아야 한다는 군사대응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밍바오(明報)’도 “미·일이 손잡고 대만 카드를 들고 나옴에 따라 중국은 먼저 일본을 제압하는 전략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뤼샹 중국 사회과학원 연구원은 “일본은 중국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해치려는 미국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며 “일본은 중국과의 대결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런 중·일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자칫하면 21세기판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