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 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개막 경기에서 정용진 SSG 구단주가 전광판에 자신이 소개되자 손을 모아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DB]
‘야린이’ 신세계는 야구를 활용한 마케팅만큼은 질 수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3월 30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음성 기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럽하우스의 SSG 랜더스 응원 대화방에 깜짝 등장해 “롯데는 가지고 있는 가치를 본업에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며 롯데를 저격했다.
이에 롯데는 롯데그룹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 홈페이지에 ‘원정 가서 쓰윽 이기고 ON’이라는 배너광고를 게재해 응수했다. 쓰윽은 SSG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다. 이를 본 정 부회장은 4월 2일 다시 클럽하우스에 등장해 “롯데가 내 의도대로 반응했다. 누가 1승을 하기보다 야구판이 커지길 원한다”며 이유 있는 도발이었음을 설명했다.
정용진, 스벅 커피 마시며 개막전 관람
4월 1~4일 롯데쇼핑 롯데온(왼쪽)과 신세계 SSG닷컴은 각자 자신들의 야구단을 응원하며 할인 경쟁을 펼쳤다. [롯데온 홈페이지 캡처, SSG 홈페이지 캡처]
여러 유통사를 가진 롯데와 신세계의 날 선 대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형마트, 홈쇼핑, 면세점, 백화점 등 다양한 분야에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두 그룹의 최대 관심사는 온라인으로 체질 개선이다. 최근 성적만 보면 신세계가 앞서는 모양새다. 신세계는 1월 온라인 쇼핑 최강자 네이버와 지분 교환을 통해 동맹을 맺은 데 이어 3월에는 온라인 여성패션 편집몰 1위 W컨셉을 인수했다. SSG닷컴의 오픈마켓 서비스 출범을 선언한 지 일주일 만에 보인 공격적 행보다.
반면 롯데는 1년 전 3조 원을 투입해 통합 온라인몰 롯데온을 출범시켰지만 오히려 매출이 27% 줄어드는 부진을 겪었다. 이를 만회하고자 3월 한국 1위 온라인 중고거래업체 중고나라를 인수했다. 양사 모두 뛰어든 이베이코리아(G마켓·옥션·G9) 인수전에서마저 신세계가 승리를 거둔다면 롯데로선 뼈아픈 패배가 될 것이다. 지난해 말 기준 거래액이 20조 원에 달하는 이베이코리아를 등에 업는다면 쿠팡(22조 원), 네이버(27조 원)에 견줄 정도로 단숨에 덩치가 커진다.
‘전에 없던’ 구단주 마케팅
신세계의 1352억 원대 ‘야구단 쇼핑’은 다소 의외의 행보로 비치기도 한다. 평소 정 부회장은 “단순히 상품을 파는 데 그치지 말고, 고객의 시간을 팔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같은 맥락에서 야구단 운영은 소비자 접점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더 없이 좋은 마케팅 수단이 될 수 있다. SSG 랜더스 슬로건 역시 ‘세상에 없던 프로야구의 시작’이다. 야구단과 모그룹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정 부회장은 클럽하우스에서 “야구팬들이 NC 다이노스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택진이 형’이라고 부르는 게 부러웠다. 나를 ‘용진이 형’이라고 불러도 좋다”고 했을 만큼 야구단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한 정 부회장은 ‘용진이형 상’을 만들어 그날의 MVP 선수에게 수여하는 등 적극적인 구단주 면모를 보이고 있다. 4월 4일 개막전에서는 홈런을 각각 2개씩 터뜨린 내야수 최주환과 최정을 1호 수상자로 선정해 상장과 한우를 선물했다.
인천 SSG랜더스 홈구장은 이마트24, 노브랜드버거, 스타벅스가 입점하는 등 평소 정 부회장이 강조한 대로 ‘고객이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특히 스타벅스 랜더스필드점은 세계 최초로 야구장에 입점한 스타벅스 매장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야구장 지정 좌석에서 음료를 주문하면 배달까지 가능한 서비스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용진이 형’이 ‘택진이 형’처럼 재미를 맛볼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 부회장이 바라는 대로 SSG 랜더스 팬이 야구장 밖 충성 고객으로 이어지려면 야구단 성적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 롯데 자이언츠의 경우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 연속 꼴찌를 해 ‘꼴데’로 불리며 모기업 이미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소속 선수가 부정적 이슈에 휘말릴 경우 자칫 모기업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스포츠 마케팅 전문가인 임충훈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투자하는 사람 처지에선 베네핏(benefit)과 리스크(risk)를 함께 생각해야 하는데, 선수 리스크는 교육과 관리, 언론 대응이 효율적으로 이뤄진다면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SSG 랜더스를 활용한 마케팅은 오히려 신생팀이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신생팀일수록 야구판의 관성적 부분을 탈피해 팬층 확보, 구단 수익 구조 개선, 홍보 마케팅 등에서 좀 더 자유롭다. 임 교수는 “구단주가 야구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팀 성패가 나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