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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익명성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자신의 고민과 욕망을 검색창에 쏟아내고 있다. 검색창에 쓴 진솔한 고백으로부터 도출된 통찰은 ‘전문가 100명에게 물었습니다. 2021년 부동산 전망은?’ 같은 설문조사보다 더 높은 예측력을 가진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익명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해도 저마다 멀쩡하게 보이길 원하는 ‘바람직성 편향’ 때문에 ‘샤이 트럼프’의 생각을 찾아내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동일한 질문으로 특정 집단에게 특정 기간 조사하는 설문조사보다 자발적 동기에 의해 실시간으로 입력되는 검색량 빅데이터가 오히려 시시각각 변하는 복잡다단한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세권’으로 뜬 슬세권, 역세권, 초품아
지난 1년간 우리나라 사람들은 인터넷 포털사이트 초록창에 어떤 ‘세권’을 가장 많이 검색했을까.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압도적 검색량을 보인 ‘◯세권’은 바로 ‘슬세권’이다(그래프1 참조). 슬세권은 슬리퍼와 세권을 합친 말로, 슬리퍼를 신고 마트나 카페 등 각종 편의시설을 지근거리에서 이용할 수 있는 주거지역을 뜻한다. 슬세권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최초로 월 2만 건이 검색됐고, 이후 10월 한 예능프로그램 퀴즈문제에 슬세권이 출제되면서 검색량 6만 건을 기록하며 핫한 부동산 키워드로 등극했다.
2021년에도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코로나19 확산세로 슬세권 인기는 꾸준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슬세권 주거 유형으로는 주거와 상업시설이 함께 있는 주상복합을 꼽을 수 있다. 주상복합은 주로 저층부에 상업시설이 밀집돼 있는데, ‘슬리퍼+단지 엘리베이터’ 조합으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주거와 상업시설이 한 몸인 슬세권 단지라도 소매업종과 더불어 금융, 클리닉 등 생활의 질과 관련된 편의시설까지 누릴 수 있으려면 상업시설 전체 규모가 6600㎡(약 2000평) 이상 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더불어 유흥업종 등 코로나19 고위험시설군으로 분류된 시설의 유무도 체크할 필요가 있다. ‘위드 코로나 시대’를 맞아 이러한 시설들의 영업정지 장기화는 단지 내 상권의 슬럼화를 촉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세권에 이어 지난해 높은 관심을 받은 검색어는 ‘역세권’이다. 역세권 키워드는 지난해뿐 아니라 과거부터 꾸준한 검색량을 보이며 명실상부한 부동산 핫 키워드로 인정받고 있다. 역세권 검색량이 급증한 때는 서대구 KTX 역세권 개발과 강릉선 KTX 역세권 개발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지난해 7월인데, 이는 투자자들의 관심이 촘촘한 규제에 묶인 수도권을 넘어 지방 역세권 개발로 옮겨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무엇보다 올해 개통을 앞둔 서대구 KTX ‘환승센터 건립’이 국토교통부 사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대구 서구의 부동산 시장을 달굴 것으로 예상된다. 같은 시기 보도된 강릉선 KTX 역세권 개발은 강릉역, 동해역, 횡성역 등 강원권 KTX 역세권을 지역 특색에 맞게 개발하는 구상안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내 여행객 증가와 맞물려 규제 청정지역인 강원권 부동산 시장을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역세권 못지않게 지난해 관심이 높았던 키워드로 ‘초품아’를 꼽을 수 있다. 초품아는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를 뜻한다. 단지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자녀들의 통학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거 단지다. 지난해 조두순 출소는 전국적으로 ‘아동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24시간 안전’에 대한 관심이 초품아를 부동산 핫 키워드에 등극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대세가 된 수익형 부동산
예금금리 0% 시대가 도래하면서 역대급 단기 유동성이 폭발한 2020년, 어떤 수익형 부동산의 검색량이 가장 많았을까. 투자자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은 수익형 부동산은 세제와 대출 면에서 유리한 ‘지식산업센터’였다(그래프2 참조). 주택 관련 세금 규제가 쏟아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지식산업센터 검색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식산업센터 검색량은 이번 정부에서 최초로 다주택자 중과를 확정 발표한 2018년 9·13 부동산대책 이후에도 급등했는데, 이는 저금리 기조에 따른 ‘길 잃은 유동성’뿐 아니라 주택 관련 세금 규제 강화에 따른 ‘절세 풍선효과’ 역시 수익형 부동산 인기에 한몫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지식산업센터는 최대 80%까지 대출이 가능하고, 완공 후 직접 사용할 경우 취득세 50% 감면 혜택이 주어지며, 재산세는 37.5%까지 감면받을 수 있다. 물론 주택이 아니기 때문에 2021년부터 강화되는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중과에서도 배제된다. 다만, 지식산업센터의 인기로 공급 과열 우려가 있기에 올해부터는 수요 여력이 있는 곳에 선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서울은 강서구·영등포구·성동구, 경기는 부천·안양시가 공급 과열 우려가 적은 곳으로 분석된다.
2020년을 달군 또 다른 수익형 부동산으로는 ‘아파텔’이 있다. 아파텔은 보통 3룸 이상의 중대형 오피스텔을 가리키는데, 수도권 전세난이 시작된 지난해 하반기 검색량이 급증했다. 서울 소형아파트 전세 가격이 단기간 수억 원씩 오르자 청년, 신혼부부 등 1·2인 가구의 아파트 입주가 더욱 어려워졌고, 그 대체상품으로 전용면적 84㎡의 신축 아파텔이 실수요자와 투자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생활형숙박시설’ 역시 세금 혜택과 저금리 영향으로 지난해 하반기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생활형숙박시설은 건축법 규제를 받는 숙박시설 중 유일하게 선분양과 개별 취사, 그리고 개별 소유권 등기가 가능하다. 흔히 생활형숙박시설 하면 오피스텔 같은 스튜디오 타입의 원룸 구조를 떠올리기 쉽지만, 고급 서비스를 갖춘 부산 해운대 엘시티 레지던스(LCT)도 생활형숙박시설에 속한다. 이처럼 생활형숙박시설은 준고급아파트, 고급 세컨드하우스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최근 1인 고소득 여성가구가 고급 레지던스의 주요 수요층으로 떠올라 생활형숙박시설의 진화는 계속될 전망이다.
핫한 GTX 노선
최근 3년간 수도권 상승장에 불을 붙인 교통 호재는 단연 GTX 개발이다. 2014년 GTX-A노선이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통과하며 첫 테이프를 끊었다. 2018년에는 C노선이 예타를 통과해 수도권 대세 상승의 서막을 알렸으며, 2019년에는 B노선이 예타를 통과함으로써 GTX 3총사의 밑그림이 완성됐다.
GTX 노선별 검색량 추이를 살펴보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D노선 검색량이 급증한 것을 알 수 있다(그래프3 참조). 교통개발 영향력의 경우 검색량 추이보다 호재 발표 직후 검색량의 폭발력을 비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예타 통과 보도 후 검색량이 가장 급증한 노선은 B노선으로, 이는 그간 서울 접근이 불편하던 인천 송도와 경기 남양주시를 잇는다는 청사진이 해당 부동산 시장에서 호재로 인식됐음을 의미한다(‘교통황무지’ 법칙). 더불어 송도와 남양주시에는 송도신도시, 별내신도시, 다산신도시 등 대규모 주거 단지가 조성돼 있다. 광범위한 수혜 지역도 폭발적인 검색량에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GTX-B노선 착공 시점에 다시 한 번 송도와 경기 동북권의 부동산 시장이 들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