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신년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한 서욱 국방부 장관. [사진 제공 · 국방부]
대한민국은 경제지표로 보면 의심할 여지가 없이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불행히도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인식과 헌정질서 수호 의지만 놓고 보면 후진국에 비해 크게 나은 것 같지는 않다. 특히 군 수뇌부로 올라갈수록 ‘적(敵)’이 아니라 ‘위(上)’를 주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 군 수뇌부는 이른바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윗선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많은 정력을 소비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철저히 연구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눈에 들려고 애쓰다 보니 군 정책이 5년마다 오락가락한다.
정권 눈치 보느라 5년마다 ‘오락가락’ 국방 정책
노무현 정부 시절 군 수뇌부의 핵심 이슈는 ‘자주국방’이었다. 군부대 곳곳에 자주국방 표어가 내걸렸다. 잠수함과 미사일 등 독자적 전략무기를 확보하는 데 국방 정책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명박 정부 때는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국정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녹색 국방’ ‘국방녹색성장’ 등의 표어가 등장했다. 고위 지휘관이 타는 검은색 대형 세단이 승합차로 바뀌었다. 간부들에게는 자가용 대신 자전거나 도보로 출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창조경제’라는 국정철학이 등장하자 군은 잽싸게 ‘창조국방’이라는 기상천외한 단어를 만들어냈다. 이때는 자신들도 뭘 해야 하는지 몰랐는지, 창조국방 아이디어 공모전을 연일 개최했다. 각급 부대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시범 도입할 때 ‘창조’라는 접두사를 경쟁적으로 갖다 붙였다.
그나마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군 수뇌부의 ‘안테나 세우기’는 국방 발전과 국가안보 강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군 수뇌부의 안테나 세우기는 국방 강화는 고사하고 안보 기반부터 흔드는 위험천만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현 정부 들어 임명된 세 번째 국방부 수장이다. 전임 정경두 전 장관은 공군, 그 이전 송영무 전 장관은 해군 출신이다. 서 장관은 육군 출신(육군참모총장·합참 작전본부장 역임)이다. 그가 장관으로 발탁됐을 때만 해도 군이 안정적으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해나갈 듯했다. 그러나 서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그 어느 전임 장관보다 청와대를 향한 안테나를 높이 세웠다.
서 장관은 1월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출입기자들과 신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기자간담회에서 서 장관은 △핵잠수함·경항공모함 등 국가 전략무기 사업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한미연합훈련 △주한미군과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 등 현안에 대해 설명했다.
필자는 서 장관이 이 자리에서 자신이 얼마나 ‘윗선’을 향해 ‘지휘 주목’하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먼저, 서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던 ‘핵잠수함 개발’을 두고 “예하 부대에서 근무할 때는 그 정도(핵잠수함 개발)는 될 줄 알았는데, 여기(국방부 장관직) 와서 보니 국가 재정도 고려해야 하고 기술력도 봐야 한다. 면밀히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핵잠수함 도입이 어렵다고 밝힌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핵잠수함 독자 개발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국내 조선업계와 원자력공학계는 자체 개발에 문제없다는 분석 결과를 내놨다. 그럼에도 현 정부가 핵잠수함을 개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 및 핵연료 조달을 위한 미국의 ‘양보’를 얻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만큼 한미관계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잠수함 기술 고도화로 핵잠수함 획득 필요성은 높아졌다.
경항모는 가능하고 핵잠수함은 안 된다?
2015년 3월 30일 경북 포항시 해안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는 한미 장병. [동아DB]
군 당국은 실제 항모 건조에 약 2조 원, 전투기 도입에 약 2조 원 등 제반 비용까지 합쳐 5조 원 이내 예산으로 경항모 전력화가 가능하다고 내다본다. 이렇게 확보한 경항모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래 전장 환경에서 효과적인 무기라고도 주장한다. 수긍하기 어려운 장밋빛 전망이다. 항모 자체는 2조 원가량의 예산으로 건조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적절한 함재기 도입이다. 현재 한국군이 추진하는 규모의 경항모에서 운용할 수 있는 함재기는 사실상 F-35B가 유일하다.
최근 다른 국가들이 F-35B를 도입한 사례를 보면 2조 원으로 20대를 도입하기는 불가능하다. 영국은 F-35B 48대를 91억 파운드, 우리 돈 13조9200억 원에 구매했다. 1대에 2900억 원꼴이다. 영국과 같은 조건으로 F-35B 20대를 도입하려면 5조8000억 원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F-35B 12대를 27억5000만 달러(약 3조690억 원)에 구입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미국과 협상 중이다. 대당 2500억 원 꼴이다. 20대를 도입하려면 마찬가지로 5조 원 이상이 필요하다.
서 장관은 국방 관련 최대 이슈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서 장관 본인의) 재임 기간 중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 FOC(완전운용능력) 검증과 관련해 우리 측은 이른 시일 내 (검증을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미군은 조건을 갖춰 (추진)해야 한다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그것 역시 협의해나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군은 문 대통령의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오랫동안 전작권 전환에 대한 공통 인식이 있었다. 특정 시한을 정하기보다 한국군의 자체 운용능력 평가를 중시하자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군은 이런 합의를 뒤엎고 무리하게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서 장관의 발언 이튿날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한국군 전작권 전환에 대해 “양국이 상호 합의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때 전환될 것이다. 특정 시점을 약속하는 것은 군 병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현재 양국 태도는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아도 2022년(문 대통령 임기 종료 전)까지 어떻게든 전작권을 가져오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전작권을 돌려줄 수 없다는 방침이다. 서 장관이 양국의 정반대 태도를 ‘미세한 차이’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軍 ‘노스 프렌들리’에 국민 불안감
서 장관의 기자간담회 발언 중 가장 논란이 된 것은 따로 있었다. “한미연합훈련을 북한과 상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한미연합훈련은 북한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한미 동맹군의 역량을 유지·발전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런 훈련을 주적(主敵)인 북한과 상의하겠다는 발언이 국방부 수장의 입에서 나오자 국민은 경악했다.안타깝게도 서 장관은 지나치게 ‘청와대 지향적’ 인물로 보인다. 천문학적 규모의 혈세가 들어가는 전력증강 사업에서 정권의 치적만 중시했다. 정권의 ‘노스(north) 프렌들리’ 코드에 맞추기 위해 한미 군사훈련을 두고 북한과 상의할 수 있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국방부 수장의 행보에 동맹국과 우리 국민은 불안감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