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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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술’ 상승 기류에 올라탄 저가 주류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46]

  • 명욱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 blog.naver.com/vegan_life

    입력2020-12-05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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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술’ ‘혼술’ 문화 덕에 마트에서 파는 술 종류도 다양해졌다. [명욱 제공]

    ‘홈술’ ‘혼술’ 문화 덕에 마트에서 파는 술 종류도 다양해졌다. [명욱 제공]

    무엇이 불변의 진리인지 끝까지 고민한 철학자가 있다. 수학자로도 명성을 떨치며 방정식까지 만들어낸 르네 데카르트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어떤 때는 맛있다고 했다가 또 어떤 때는 맛없다고 하고, 빛을 보고 파란색이라고 했지만 그늘에 가면 그 색이 또 달라지곤 한다. 그는 이러한 세상 진리를 끝까지 고민해보니, 딱 하나 불변의 진리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여기서 나온 말이 ‘나는 생각(사유)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이다. 

    하지만 현대 철학, 또는 과학에서는 이 원리가 틀렸다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것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내가 잘나고 못나고, 예쁘고 못생기고, 생각하고 안 하고의 기준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생겨난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부분은 술에도 적용된다. 술이 가진 색과 향, 맛은 다른 술에 비해 어떻다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래서 술맛을 제대로 보려면 그 술 하나만 마시는 것이 아닌, 다른 술과 비교 시음을 진행해야 술자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그러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지기도 한다. 이번 호에서는 저가 술을 서로 비교하며 즐길 수 있는 편의점과 마트 홈술을 소개한다.

    저가 주류로 나온 발포주

    국내 대표적인 발포주 필라이트와 필굿. [진로, OB 제공]

    국내 대표적인 발포주 필라이트와 필굿. [진로, OB 제공]

    우리나라에는 맥주인 듯하지만 맥주가 아닌 술이 있다. 바로 발포주다. 발포주는 이름 그대로 발포성 탄산이 들어간 술이라는 의미다. 주세법상 맥주는 아니지만, 맥주처럼 보이는 유사 알코올음료에 붙은 이름이다. 특징이라면 맥아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 맥아 비율을 10% 미만으로 해 주세를 낮춰 최저가로 만든 제품이다. 일반 마트에서는 355ml 6개들이 제품이 4000원대로 판매되고 있다. 개당 800원 이하인 초저가 주류다. 

    일반 맥주와 발포주를 비교하면 발포주는 후미에서 느껴지는 맥주 특유의 맛이 짧게 끝난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발포주는 크게 하이트진로의 필라이트와 OB의 필굿이 있다. 흥미롭게도 두 제품은 다른 맛을 품고 있다. 필라이트 오리지널의 경우 아로마 홉을 사용해 목 넘김 후 입속에 남아 있는 홉에 의해 허브향이 길게 어이진다. 필굿은 홉이 주는 아로마의 맛보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탄산 맛이 강조된 느낌이다. 같은 초저가 제품이지만, 추구하는 맛과 향은 전혀 다른 것이다.



    1만 원대 위스키도 취향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 위스키 맛을 비교해볼 수 있다. [명욱 제공]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 위스키 맛을 비교해볼 수 있다. [명욱 제공]

    최근 ‘혼술’ ‘홈술’ 문화가 확산하면서 위스키업계에서는 200ml가량의 소용량 제품을 적극 출시하고 있다. 이제는 ‘부어라, 마셔라’ 시대가 아니라 자신이 마시고 싶은 만큼, 조금만, 그리고 다양한 술맛을 느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의외로 1만 원 내외로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 많다. 발렌타인 파이니스트(Ballantine’s Finest), 조니워커 레드라벨(Johnnie Walker Red Label), 짐빔 화이트(Jim Beam White)의 소용량 제품은 8000~9000원대로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러한 제품은 논 에이징(non-aging)이라고 해서 숙성 연도를 표기하지 않는다.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2~6년 숙성시킨 원액을 혼합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고급 제품을 즐기고 싶다면 1만 원대에서 고를 수 있다. 12년산 제품들이 1만 원대 초반에 포진해 있다. 맛을 비교한다면 1만 원 대 이상의 논 에이징 제품은 같은 브랜드라도 질감이 가볍게 느껴지고, 입속에 남는 풍미도 짧게 끝난다. 반대로 오래 숙성시킬수록 입속에서 질감이 크게 느껴지고 오크향, 바닐라향, 견과류향 등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이는 숙성이 진행됨에 따라 원재료의 맛과 풍미가 압축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숙성을 거듭하면 할수록 알코올이 증발되기에 원가는 계속 올라간다. 

    최근 유행하는 하이볼(위스키소다)로 즐기길 원한다면 8000원대 위스키로도 충분하다. 양을 잘 조절하면 10잔도 나올 수 있다. 숙성에 따라 맛이 변하는 것을 즐기고 싶은 사람은 같은 브랜드로 논 에이징 제품과 12년산 두 종류를 구입해 맛본다면 흥미로운 포인트가 된다. 오래 숙성시킨 제품이 무조건 맛있다고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입맛은 다 다르니까. 

    참고로 와인앤모어 같은 주류 전문매장에는 더 작은 용량의 위스키 미니어처도 많다. 12년산 위스키를 5000원 전후로 구매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50ml라서 너무 적다는 의견도 있지만, 집에서 한두 잔 즐기는 데는 전혀 문제없다. 양이 아닌 맛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층 다양해진 마트 막걸리

    10년 전과 비교할 때 가장 비약적으로 발전한 대형마트의 술 매대는 아마도 막걸리 매대일 것이다. 한두 종류밖에 없던 막걸리 매대에 다양한 지역 막걸리가 들어왔고, 가격도 1000원대에서 수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고급 막걸리부터 시작하는 것은 부담스럽고 입맛에도 안 맞을 수 있다. 1000~2000원대 막걸리부터 맛본다면 부담감이 줄어들 것이다. 

    최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지평막걸리의 경우 밀누룩(밀입국)을 사용해 빚다 보니 마시고 난 후 끝에서 살짝 식빵 향이 느껴진다. 가평 명물인 가평 잣막걸리는 100% 쌀로만 빚어 식감이 매끄럽고 여운으로 가볍게 느껴지는 잣향이 포인트다. 배상면주가의 느린마을 막걸리는 일반 막걸리와 달리 밥을 찌지 않고 생쌀을 갈아서 빚기 때문에 입속에 살짝 쌀 입자가 느껴지고, 풍부한 쌀 함량으로 크림 같은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생막걸리는 집 냉장고에서도 한 달가량 숙성이 가능하다. 숙성시키면 단맛은 줄고 알코올 도수는 살짝 올라간다. 한마디로 ‘드라이’한 술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숙성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냉장고에서 2~3주 숙성시킨 뒤 비교해 마실 수도 있다. 

    사람들이 홈술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밖에서 술을 마시지 못해서가 아니다. 내 스타일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량의 저가 주류도 홈술 바람을 탈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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