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마을 암 발병 원인 조사에서 피마자박 위험 분석 빠졌다”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20-10-23 13: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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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감으로 논란 재점화된 ‘장점마을 사태’

    • 비료공장에서 나온 맹독 성분으로 장정마을 주민 30명 암 발병, 17명 사망

    • 환경부 “피마자박이 발암물질인 줄 몰랐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북지부와 장점마을 주민들이 7월 13일 전북도의회를 찾아 전북 민변 ‘익산 장점마을 주민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전북지부와 장점마을 주민들이 7월 13일 전북도의회를 찾아 전북 민변 ‘익산 장점마을 주민소송’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시스]

    10월 7일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건(장점마을 사태)’이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장점마을 사태’는 2001년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에 들어선 비료가공업체인 금강농산(현재 폐업 상태)이 재활용대상폐기물인 폐사료, 연초박(담뱃잎 찌꺼기), 피마자박(피마자(아주까리) 열매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 전분박(감자, 고구마 등에서 전분을 빼고 남은 찌꺼기), 당박(옥수수 등에서 포도당, 과당 등을 빼고 남은 찌꺼기), 주정박(술을 빚고 남은 찌꺼기) 등을 불법으로 가공해, 이 과정에서 배출된 매연과 폐수로 인해 마을주민 30여 명이 암에 걸리고, 17명이 숨진 사건이다. 이날 국감장엔 백복인 KT&G 대표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비료 원료로 사용된 연초박을 KT&G 측에서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날 기획재정위원회 국감에서도 장점마을 사태 관련한 질문이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김수흥 의원은 장점마을 사태와 관련해 정부와 KT&G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건의 책임은 특정 기업이나 정부가 아닌 전북도와 익산시에 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KT&G가 연초박을 금강농산에 제공한 것인데 (금강농산이) 가열해서 사용하는 과정에서 불법이 발생했다. 정부 책임이라고는(보기 어렵다)”며 “KT&G를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 문제의 요지는 연초박의 불법 사용행위가 있었다는 것”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지난 8월 발표된 감사원 결과에 따르면, 원래 연초박은 가열 없이 자연 상태에서 퇴비로 만들어 써야하지만, 금강농산에서 불법으로 가열해 사용한 나머지 연초박 내 담배특이니트로사민 등 발암물질이 대기 중으로 배출 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근거로 홍 부총리는 “만약 폐기물관리법상 관리감독 책임이 정부에 있다면 익산시와 전북도가 주체”라며 “(피해자들이)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백복인 KT&G 대표는 앞서 열린 환노위 국감에서 “장점마을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다만 사실관계를 근거로 답변해야 하기에 회사 입장을 즉각 밝히기 어렵다”고 밝혔다.


    전북 민변, 전북도・익산시 상대로 157억 원 소송 제기

    장점마을 주민들은 금강농산 설립 후 수차례에 걸쳐 익산시에 악취와 매연 발생 관련해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답변은 “별문제 없다”였다. 그러다 2016년 마을주민과 시민단체가 합심해 공장에 대한 탐문을 벌인 끝에 금강농산이 피마자박·연초박 등을 불법 가공해 비료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해당 원료들은 발효과정을 거쳐 퇴비로 만들어 사용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고온으로 가열해 유해 물질을 발생시킨 것이다. 



    이에 지역 주민들은 2017년 4월 17일 환경부에 건강영향조사 청원을 제기했고, 7월 14일 환경보건위원회는 해당 청원을 받아들여 주민건강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2019년 11월 14일 환경부는 “비료공장 배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 간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환경부는 “환경 주무부서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주민에 대한 피해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재발방지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주민과 전라북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전라북도와 익산시를 대상으로 157억 원의 민사조정 신청을 했다. 감사원도 지난 8월 “익산시의 지도·감독상의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감사 결과를 최종 확정했다. KT&G 측으로부터 제공받은 연초박이 유해물질을 발생시킨 건 맞지만, 이를 불법으로 가열한 업체와 이를 제대로 지도 감독하지 않은 익산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결론이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익산시는 2001년 공장 가동 직후부터 14년간 악취 측정 외 단 한 건의 행정조치도 하지 않았다. 또 2015년 비료공장이 유기질 비료를 불법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폐기물 실적보고를 받고도 이를 묵살했으며, 시청 단속 일정을 공장 측에 미리 알려주는 방식으로 금강농산을 비호했다.


    환경부가 피마자박 맹독 성분 조사 안 한 이유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0월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장점마을 사태와 관련해 “책임의 주체는 익산시와 전북도에 있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10월 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장점마을 사태와 관련해 “책임의 주체는 익산시와 전북도에 있다”고 강조했다. [뉴시스]

    책임 소재 공방에 앞서 더 큰 문제는 환경부가 처음부터 발암 물질 발생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금강농산은 연초박 외에도 사료찌꺼기, 주정박, 피마자박 등 여러 원료를 혼합해 비료를 생산했는데, 이 중 피마자박에는 맹독성 성분인 ‘리신’이 함유돼 있다. 리신은 청산가리보다 6000배 독성이 강해 강아지 등 애완동물이 피마자 유박비료를 먹을 경우 목숨을 잃게 된다. 실제로 아파트 화단 등에 뿌려놓은 피마자박 비료를 먹고 애완동물이 죽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면서 2013년부터는 비료 포장에 동물이 먹지 않도록 경고 문구를 넣게끔 하고 있다. 

    앞서 전북대 환경공학과에서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의뢰로 실시한 '비료공장 및 주변 환경 오염실태 예비조사 연구용역' 결과에서도 피마자박에 발암분류물질 3종과 독성물질 리신이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다. 금강농산은 비료 생산 과정에서 연초박보다 피마자박을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금강농산의 원료사용량을 살펴보면 연초박 2040t, 피마자박 8400t이다. 그럼에도 환경부는 연초박 외 다른 재활용 원료에 대해서는 어떤 조사도 실시하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지난 1월 김학용 전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은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에 피마자박을 역학조사대상에서 배제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질의했다. 그러자 국립환경과학원은 “피마자박에 대한 인체 발암 관련 증거는 아직 없거나 근거가 약하다”며 “분석 결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한 물질로 조사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마자박 열분해 시 검출되는 물질 중 비대칭디메틸히드라진(1, 1-Dimethylhydrazine)과 피로카테콜(Pyrocatechol)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B등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1등급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키는 물질’, 2A등급은 ‘사람에게 암을 일으킬 개연성이 있는 물질’을 뜻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환경부의 해명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환경부에 대해 “무지함의 극치”라고 일갈했다. 피마자박에서 나오는 리신은 생화학무기로 사용될 정도로 맹독을 가진 단백질로 동물은 물론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원료인데, 환경부가 리신의 심각성을 몰랐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장점마을 사태를 포함해 향후 유사한 환경 문제가 발생할 경우 초기 단계부터 결론까지 빠짐없는 조사와 명확한 분석이 나와야 제대로 된 문제 해결과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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