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입법
홍준형 지음/ 한울아카데미/ 302쪽/ 2만6000원
‘상징입법’이란 겉과 속이 다른 법, 그러한 법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상징입법의 예는 한둘이 아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구제하고자 만든 법은 오히려 피해자의 원성을 사고, 대학 강사의 지위 향상을 꾀한 ‘고등교육법 개정안’(강사법)은 오히려 대량해고 사태를 낳았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담뱃세 인상은 정작 국민건강을 증진했는지는 의구심을 남긴 채 세수만 크게 늘렸다. 법학자이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인 저자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 신설과 해양경찰청 폐지를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 적폐 청산을 위한 전가의 보도로 활용된 형법 제123조(‘직권남용죄’) 등도 상징입법의 대표적 예로 꼽는다.
이러한 상징입법은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가 자체에 불신을 가중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를 타개하려면 입법의 부작용과 결함을 평가하고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국회의원의 ‘자기혁신’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입법평가’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입법자로 하여금 법안의 목표와 기대 효과, 성과 측정 방법을 미리 밝히도록 하고, 일정 시점이 지난 후 그 성과를 측정, 평가하자는 것이다. 국민은 입법자가 자행하는 ‘입법농단’ 실상을 더 소상히 객관적으로 보고받을 자격이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거대 여당’이 국회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현시점에서 곱씹어볼 대목이다.
유원
백온유 지음/ 창비/ 284쪽/ 1만3000원
12년이 지나 언니 나이로 자란 ‘이불 아기’ 유원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빚덩어리’로 여긴다. 부모와 교회 사람들이 추억하는 언니는 늘 자랑스러운 모습이고, ‘아저씨’는 시시때때로 찾아와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한다. 학교에서 늘 ‘쟤가 걔라며?’라는 시선을 받는 유원에게 마음 터놓는 친구는 없다. 종종 화재 사고 기사의 댓글을 찾아 읽으며 죄책감과 분노가 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한 유원에게 수현이라는 동급생 친구가 생기면서 소설은 한 소녀의 치유와 성장 이야기를 전개한다.
‘편견을 깨부수는 힘 있는 이야기’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글’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2020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에 대해 정신과의사 정혜신은 “일상의 트라우마를 통과 중인 내 곁의 수많은 ‘나’들에게 새살이 돋게 하는 치유의 소설”이라고 말한다.
부부 건축가 생존기, 그래도 건축
전보림·이승환 지음/ 눌와/ 252쪽/ 1만3800원
프랭크 게리, 안도 다다오 등 세계적 건축가는 대중에게 ‘예술가’와 동격이지만, 우리 주변 생활인과 다를 바 없는 이 부부는 건축 설계 일에 대해 “사회와의 적극적인 접선이고 디자인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얘기하는 건축물을 선보이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도 물론 있지만, 그러려면 많은 이와의 협력, 그리고 때로는 줄다리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란 직업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흥미로움을 주는 동시에 우리 주변 건축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끔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