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까지 60% 줄었던 수출입 물동량, 5월엔 전년 80% 수준으로 회복
손소독제·방호복 수출 크게 늘고, 언택트 영향 컴퓨터 수출도 강세
농심 등 K푸드 수출량 증대에 24시간 공장 풀가동
부산 강서구와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걸쳐 있는 부산신항. [지호영 기자]
이러한 부산신항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피할 수 없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수출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는 법. 한국의 주요 수출품목인 자동차·철강·석유제품 수출액이 많게는 절반 이상 줄었지만, 그 대신 언택트(untact·비대면), 홈코노미(Home+Economy) 산업이 부상하면서 관련 수출도 늘고 있다.
‘집콕’하며 K-라면 먹는 세계인
경남 창원시에 자리한 물류업체 ㈜세주디에스제이의 농심 창고에 해외로 수출되는 라면 제품이 가득 쌓여 있다. [지호영 기자]
오전 10시 부산 사상구에 위치한 ㈜농심 부산공장을 찾았을 때 직원들은 40t 트럭 3대에 라면과 과자를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낀 채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활기찬 분위기였다. 신라면 상자 72개가 올라간 팰릿(pallet)을 번쩍 들어 올린 지게차는 작업장과 트럭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갔다. 하루에도 10대 넘는 트럭이 부산신항 인근 물류업체로 향한다. 농심 부산공장이 생산한 제품의 80%는 해외 수출용. 미국, 호주, 동남아 등 전 세계로 향한다.
코로나19 사태로 많은 산업이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지만, 라면 수출량은 증가 추세다. 조짐은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크게 확산한 2월부터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따르면 4월 라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52.3% 늘었다. 농심은 2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 덕도 보고 있다. 농심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한데 끓인 ‘짜파구리’가 영화에 등장하면서 해외 소비자가 이들 제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4월 농심 부산공장 생산량도 크게 증가했다. 하루 16시간이던 공장 가동시간도 24시간으로 늘렸다. 최현우 부산공장 부산제품관리지점 지점장은 “3월 생산량은 3만6000CBM(Cubic Meter·1㎥=1CBM)이었는데, 4월 생산량은 5만2000CBM으로 70% 증가했다”고 말했다.
라면 이외에 화장지, 즉석밥 등 홈코노미 상품의 수출도 증가했다. 데스크톱과 노트북을 포함한 컴퓨터 역시 2월 이후 월 10억 달러(약 1조2310억 원) 이상 수출액을 유지하고 있다. ‘K방역’에 대한 세계적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방역 관련 제품의 수출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특히 손소독제 4월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77배, 의료 방호복은 320배 증가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언택트·홈코노미·방역 등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끌 새로운 산업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항구 사람들로 식당이 꽉 찬다”
경남 창원시 진해구 용원동의 상가 거리(왼쪽)와 아파트 단지. 부산신항 배후 단지와 인접해 항구 사람들의 소비처 역할을 한다. [지호영 기자]
농심 제품을 보관하는 세주디에스제이 창고는 2600㎡(약 800평) 규모. 창고에는 신라면, 너구리 같은 라면과 양파링 등 과자 상자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해외로 나가는 제품이라 상자에는 한글과 영어가 병기돼 있다. 이들 제품은 10t짜리 컨테이너에 속속 실렸다.
K라면의 수출 호황은 물류업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농심은 3개 물류업체에 일을 맡기다 최근 물류업체 두 곳과 추가로 계약을 맺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차츰 라면 이외에 다른 물품의 수출도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다. 세주디에스제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로 60~70%까지 감소한 물량이 5월 들어 회복세로 돌아섰다”며 “아직은 지난해 비교해 80% 수준에도 못 미치지만 앞으로 나아지지 않겠느냐”고 바람을 피력했다.
북컨 배후단지에 위치한 ㈜글로벌물류센터 측도 앞으로의 회복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쳤다. 이곳은 주로 화학제품 및 전자부품 수출입을 담당한다. 이 업체 관계자는 “5월 사정이 4월보다 확실히 낫다”며 “이달 물량이 지난달 대비 20%가량 늘었다”고 전했다.
북컨 배후단지 바로 윗동네인 진해구 용원동은 항구 사람들이 밥도 먹고 물건도 사는 동네다. 이곳 상가의 경기 역시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분위기. 용원동 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김모 씨는 “대구 신천지 사태가 한창일 때는 손님이 드물었지만, 요즘에는 물류업체 직원이나 트럭 운전사가 많이 보인다. 점심·저녁시간에는 14개 테이블이 꽉 찬다”고 전했다.
부산신항배후단지물류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97%. 하지만 물류업체에 고용된 근로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그렇다고 희망을 얘기하기엔 아직 조심스럽다. 1분기 실적에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적으로 반영되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류에 제조 더한 복합항만으로 진화해야
오히려 2분기에는 실적 감소폭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4월 수출량이 지난해 동기 대비 24.3% 감소했기 때문이다. 황계인 부산신항배후단지물류협회 사무처장은 “물류업체 얘기들을 들어보면 최근 물량이 20~30% 감소했다는 곳도 적잖다”고 전했다. 기자가 연락한 7개 업체 가운데 6곳은 “코로나19 여파로 물동량이 줄었다”고 답했다. 한 물류업체 관계자는 “업체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우리는 죽을 맛”이라고 호소했다.이틀간 비바람이 치던 부산신항에 5월 20일 맑은 해가 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지만 희망을 접을 순 없다.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비해 부산 항만업이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화물 하역과 보관 등 전통 기능에 더해 상품 제조·포장·가공·분류 등이 융합된 복합물류센터형 항만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율성 한국해양대 물류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부산 북항과 신항 내부에서 제조 및 배송까지 이뤄지게 해 증가하는 전자상거래에 대응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규모 설비사업인 자동차·정유에만 의존하다 보면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찾아올 때마다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황계인 처장은 “부산신항의 남은 부지에 제조업을 유치해 이 지역 경기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