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공기는 아래로 들어오고, 내부 공기는 위로 나가야…“교실에선 불가능해 걱정”
환기 어려운 빌딩·백화점이 학교보다 더 위험…“전기요금 들어도 공조시스템 풀가동해야”
어린이날인 5월 5일 오후 서울의 한 대형 복합쇼핑몰이 방문객으로 붐비고 있다. 밀폐된 다중이용시설에서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은 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뉴스1]
등교 개학을 하더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의 일환으로 교실 내 에어컨 사용이 금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5월 초 서울 종로구 소재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제 이 같은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5월 7일 교육부가 교실에서 에어컨을 가동해도 좋다는 방역 지침을 발표했다. 단, ‘모든 창문을 3분의 1 이상 열어둔다’는 조건을 달았다.
중국 광저우서 ‘에어컨 바람 타고’ 9명 감염
재채기할 때 배출되는 비말은 1~2m가량 날아간다. 하지만 에어컨을 가동하면 비말은 에어컨 바람이 만든 공기 흐름을 타고 5~10m를 날아가며 공기 중에 30분 이상 떠다닌다. 그만큼 바이러스 감염 위험도가 높아진다. 이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에서 실내 공간에서 에어컨 사용 자제를 권고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질병관리본부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중국 광저우 한 식당에서 코로나19 확진자 9명이 발생했는데, 식당 내 에어컨 바람을 타고 바이러스가 전파돼 감염이 확산한 것으로 추정된다.다만 창문을 연 채 에어컨을 가동하면 환기가 돼 실내 바이러스 감염 위험성을 낮출 수 있다. 중대본에 따르면 창문을 열어 실내 공기를 5번 교체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양이 환기 전의 100분의 1 이하로 감소한다. 실내 공기를 5번 교체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이하.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창문 열고 에어컨 가동’ 지침을 내놨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에어컨 때문에 대규모 감염이 발생했다’는 세간의 인식은 오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방역당국은 확진자 36명이 발생한 평택성모병원의 경우 에어컨 가동으로 감염이 확산됐을 개연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3대의 에어컨 필터에서 메르스바이러스 조각이 검출됐다. 하지만 이후 역학조사 결과 최초 확진자가 입원한 병실에는 흡·배기구가 없었고, 에어컨도 병실 간 연결된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 기모란 국립암센터국제암대학원대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비상대책위원장)는 “복도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닫으면서 옆 병실로 공기가 이동해 감염이 확산됐다”며 “병실 내 환기를 했더라면 확산 정도를 낮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실 내 창문을 열고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이 코로나19 확산 위험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보완책이라는 데 동의한다. 다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한다. 중대본이 구성한 생활방역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공기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도록 창문을 개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방향으로 창문을 열어 에어컨 바람을 탄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게끔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모란 교수는 “에어컨 바람 세기를 ‘무풍’ 혹은 ‘약’으로 설정하는 대신 설정온도를 예년 여름보다 낮추라”고 조언했다. 에어컨이 만들어내는 공기 흐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확진자 나오면 에어컨 필터 전부 갈아야
등교개학을 앞둔 5월 7일 서울 성동구 무학여자고등학교에서 한 교사가 에어컨 가동 점검을 하고 있다. [뉴스1]
주변 환경에 따라서는 창문을 열어놓을 경우 소음 때문에 수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김종헌 성균관대 의과대학 사회의학교실 교수는 “쉬는 시간에 최소 10분 이상 교실 창문을 완전 개방하라”고 조언했다. 10분간 모든 창문을 열어두면 교실 내 공기를 100% 교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모란 교수는 “수업시간을 잘게 쪼개 30분간 창문을 닫은 채 교사가 수업한 뒤 학생들이 개별 과제를 할 때는 창문을 열어두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어컨 관리에도 주의해야 한다. 한국실내환경학회 산하 ‘국제 실내공기질 및 기구학회 학술대회’(IndoorAir 2020)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화택 국민대 기계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에어컨 통풍구에 부직포나 얇은 천을 덧대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에어컨을 가동하면 에어컨 내부 코일에 응축된 수중기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흩어지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다. 한 교수는 “에어컨에서 나오는 수증기에 각종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서식하고 있어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염려스럽다”며 “가급적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지 않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이재갑 교수는 에어컨 필터 관리를 철저히 할 것을 당부했다. 그는 “에어컨 필터를 평소보다 자주 교체하고, 확진자가 나온 경우 즉시 필터를 전부 교체해야 한다. 필터에 붙은 살아 있는 바이러스는 감염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공조시스템 끄고 에어컨 가동? ‘구로 콜센터’ 꼴 된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으려면 창문 개폐가 제한적인 고층빌딩은 에어컨을 가동할 때 공조시스템도 함께 가동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당부한다. [GETTYIMAGES]
김종헌 교수는 “여름철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공조시스템을 돌리면 외부의 더운 공기가 안으로 유입돼 사람들이 덥다고 느낀다. 공조시스템 가동에 따른 전기요금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 공조시스템을 끈 채 에어컨을 가동하는데, 만약 이번 여름에도 그렇게 한다면 사무실 환경을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 발생한 구로 콜센터와 같게 만드는 셈”이라고 경고했다. 한화택 교수는 “오피스 외에도 많은 인파가 장시`간 머무는 백화점 같은 쇼핑센터도 큰일”이라며 “바깥 공기는 막고 내부 공기만 순환시키면서 에어컨을 트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지 않는 한 이번 여름에는 대형빌딩과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전기요금을 아끼지 말고’ 에어컨과 공조시스템을 동시에 사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창문이 없는 건물에는 공조시스템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기모란 교수는 “에어컨을 가동해야 하는 여름철에는 가능한 인력은 재택근무를 하게 해 사무실 내 밀집도를 낮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열심히 늘린 교실 공기청정기, 코로나19 사태엔 무용지물
5월 7일 교육부는 에어컨 사용을 허가하는 방역 지침을 발표하면서 공기청정기 사용은 금지했다. 공기를 빨아들였다 내뿜는 공기청정기로 인해 비말이 더 멀리, 더 오래 실내 공간에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최근 2~3년간 교육부와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전국 초중고 교실에 환기시설을 확충하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학교에 주어진 ‘옵션’은 기계환기설비와 공기청정기. 하지만 대다수 학교가 기계환기설비보다 공기청정기를 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 전국 초중고 27만5221개 학급 중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학급은 25만6863개(93%)로, 기계환기설비를 설치한 학급 4만1100개(15%)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둘 다 설치한 학급은 4만1100개). 교육부 관계자는 “공기청정기는 렌털이 가능하고 필터도 업체에서 관리해주는 반면, 기계환기설비는 구조 공사를 해야 하고 관리도 번거로워 일선 학교들은 공기청정기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교실에 기계환기설비가 있다면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가동하더라도 기계환기설비를 통해 환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 코로나19 사태에서는 교실 환기시설이 공기청정기 위주로 마련된 것이 아쉬운 대목. 교육부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전체 학급에 공기청정기나 기계환기설비를 최소 1개 이상 마련하는 작업을 완료했다”며 “추가로 기계환기설비를 늘릴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