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9일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에서 지하철 미화원들이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지호영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오전 청소조를 맡고 있는 김귀선(65) 미화원의 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수준이 ‘심각’ 단계로 격상되고 70여 일이 지난 현재 지하철 미화원에게 방역은 일상이 됐다. 하루 평균 746만 명(2019년 기준)이 이용하는 서울지하철의 ‘방역 미션’이 이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청소와 방역은 한 몸이다.
심각 단계 격상 이후 서울지하철은 주 2회 역사 전체 방역을, 승객이 접촉하는 시설물은 하루 4번 이상 방역 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철 미화원들은 살균제를 묻힌 주황색 걸레로 하루 4번 이상 개찰구,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엘리베이터, 전자 안내판 등 승객 손이 닿을 법한 모든 곳을 닦는다. 청소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김씨는 “일이 2배로 늘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루 4번 방역 실시
4월 29일 을지로입구역을 찾았다. 출근시간이 약간 지난 오전 9시 10분 역사는 마스크를 낀 사람들로 북적였다. 명동, 을지로와 인접한 이 역은 직장인 및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김재혁 을지로입구역 역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승객이 줄었지만, 여전히 하루 5만 명 이상이 우리 역을 들고 난다”고 전했다.을지로입구역의 미화원은 총 16명. 주간 12명과 야간 4명으로 나눠 근무한다. 김씨는 이판임(65), 이상분(55) 미화원과 주간 오전 근무를 맡고 있다. 아침 6시 출근해 한 차례 역사 청소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한 뒤 오전 10시 두 번째 청소에 나선다. ‘코로나19 방역’이라고 쓰인 주황색 조끼가 눈에 띄었다.
지하철 미화원은 ‘카’라고 부르는 청소 수레와 항상 동행한다. 카에 달린 도구를 보면 이들의 업무를 파악할 수 있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역사에 떨어진 쓰레기를 청소한다. 밀걸레로 바닥을 닦는다. 역내 11개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를 재활용, 일반, 액체 쓰레기로 분리한다. 파란색 물걸레로 구석구석 먼지가 쌓인 곳을 닦는다. 화장실과 역무실, 기계실 등도 미화원의 청소 구역. 주간 오전 근무조와 오후 근무조가 함께 일하는 점심 무렵에는 지하철 출구 밖 주춧돌을 닦기도 한다. 김씨는 “승객이 전동차 내에 음료수를 쏟는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전동차 내부 청소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기 시작된 2월 말부터 카에 주황색 걸레와 분무기가 추가됐다. 이상분 씨는 “방역까지 맡게 되면서 쉬는 시간이 30분에서 10분으로 줄었다”고 전했다. 분무기에는 의료용 살균소독제 BTC-A를 물에 200 대 1로 희석한 용액이 담겨 있다. ‘방역 영역’은 승객의 이동 동선과 일치한다. 전동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갈 때 잡는 손잡이, 교통카드와 손이 닿는 개찰구, 에스컬레이터 손잡이, 엘리베이터 내부와 버튼, 교통카드 발급기 및 충전기, 승객들이 앉는 플랫폼 의자 등이 소독 대상이다.
“청소 수레 혐오하는 승객에 서운”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역사 내 안내판(왼쪽)과 엘리베이터를 소독하는 지하철 미화원들. [지호영 기자]
13㎡ 남짓한 휴식공간은 샤워실과 세탁기, 사물함,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방역당국이 생활방역지침의 일환으로 권고하는 ‘두 팔 간격 유지하기’가 이 공간에서는 쉽지 않다. 이상분 씨는 “밀폐된 지하공간이라 감염 위험성이 높은 만큼 마스크를 쓰라고들 하지만, 휴식 중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미화원들은 휴식공간에 앉자마자 주머니에 넣어둔 쓰레기를 꺼냈다. 김씨는 “방역 작업 중에도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호주머니에 넣는다”고 했다.
애로사항을 물었다. 이판임 씨는 “카를 끌고 승강장과 지하 1층을 오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어떤 승객은 ‘다음번에 타라’고 한다. 카가 자기 몸에 닿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승객도 있다”고 전했다. 그래도 시민의 응원 덕에 힘을 얻는다. 이상분 씨는 “종종 ‘깨끗하고 안전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승객도 있다”고 말했다.
곧 다가올 무더위도 걱정 가운데 하나. 한여름에는 역사 안이 덥고 습해 조금만 움직여도 옷에 땀이 밴다. 역사 구석구석을 하루 4번 닦아야 하는 방역 작업이 여름까지 계속된다면 업무 부담은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여름에는 모기와 날파리 때문에 방충 작업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코로나19가 사라져 청소만 해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며 다시 카를 끌고 청소하러 나섰다.
월급은 180만 원…“추가 채용”
‘코로나 방역’이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있는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지하철 미화원의 뒷모습. [지호영 기자]
전동차 소독은 차량사업소에서 한다. 하루에 입고되는 1~4호선 전동차는 2114량으로 대수로는 200여 대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월 2회 실시하던 전동차 내 방역을 심각 단계 이후에는 매일 실시하고 있다. 전동차 역시 청소와 방역을 동시에 한다.
서울메트로환경이 고용한 미화원은 1424명. 방역으로 업무가 늘어나자 서울메트로환경 측은 54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하지만 늘어난 업무량에 비해 추가 고용 인원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5개 역당 1명씩 보충된 셈이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 형태를 막론하고 이들이 받는 급여는 월 184만 원으로, 방역 업무에 따른 추가 수당은 없다. 이평중 서울메트로환경 역사환경지원처장은 “근로자가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임금 인상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