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FIFA U-20 월드컵 대표팀이 귀국한 6월 18일 공식 환영행사가 진행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동아DB]
충분히 잘해줬다. 빈틈을 메우는 것을 넘어 더 좋게 탈바꿈한 데 찬사를 보내고 싶다. 또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 리뷰, 대회 성과, 그리고 현실적인 벽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소년만화처럼 성장하다 체력 한계 맞아
6월 16일 우크라이나와 결승전에서 조영욱(왼쪽에서 세 번째)이 수비수 3명 사이에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왼쪽). 결승전 패배 직후 울먹이는 이재익(오른쪽)을 다독이고 있는 정정용 감독. [뉴시스, 뉴스1]
이른 득점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곤 한다. 자칫 느슨한 운영으로 주도권을 빼앗길 때가 있다. 이는 성인부 경기에서도 곧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안일한 마음에 템포가 떨어지고, 도리어 상대의 기가 산다. 동점골이 눈 깜짝할 새 터졌고, 역전골과 쐐기골이 이어졌다. 그동안 나온 장점들이 살지 않았다는 건 큰 아쉬움이었다.
이는 체력 저하의 탓이 컸다. 조 편성이 나온 뒤 잡은 현실적 목표는 ‘토너먼트 진출’이었다. 전력상 만만한 팀들이 아니었다. 세계대회에 나서는 대한민국 축구 각급 대표팀은 죄다 조별리그를 넘는 데 피지컬 사이클을 맞춘다. 일단 온힘을 짜낸 뒤에야 그다음을 노려볼 수 있었다.
조별리그 3경기에 초점을 맞춘 선수들이 16강, 8강, 4강, 결승까지 치렀다. 특히 소속팀에서 줄곧 주전으로 뛰어온 선수가 별로 없어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았다. 피지컬 코치가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몸. 여느 경기보다 맥없어 보인 이유였을 것이다. 나라 전체를 달군 결승전 열기에 ‘나도 축구 한번 봐볼까’ 했던 이들, 이 가운데 비판의 날을 세운 몇몇 팬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속사정이다.
이강인 외에도 다양하게 빛난 재원들
축구라는 단일 종목으로 이렇게 들뜨기가 어디 쉬울까.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독일전 승리,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에 이어 FIFA A매치 국내 경기 7경기 연속 매진. 여기에 만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이 ‘세계 2위’로 쐐기를 박았으니 더할 나위 없었다.극찬이 쏟아졌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두 살 어린 이강인을 향한 찬사는 파격적이었다. 박지성도 이강인에 대해 “기술이 굉장히 뛰어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이 보였다”고 치켜세웠다. “박지성 본인을 뛰어넘을까”라는 짓궂은 질문에는 “너무도 쉽게 뛰어넘을 것 같다”며 웃었다. 공개석상에서 특정인을 잘 거론하지 않는 그였기에 꽤 이례적이었다.
‘이강인 쏠림 현상’을 아슬아슬하게 바라본 축구계 선배도 꽤 됐다. 손흥민은 작심 발언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강인 한 선수를 콕 집어 말하는 게 불편하다. 모든 선수가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며 ‘원 팀’을 강조했다.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어린 시절 이강인과 사제 연을 맺었던 유상철 인천 유나이티드 FC 감독 역시 “강인이가 잘하는 건 주위 동료들이 잘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우려된다”고 밝혔다.
다행히 극단적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이번 대회는 이강인 말고 다른 선수들의 진가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극적 승리가 많아질수록 여러 스토리가 쌓였다. 기존에는 조영욱, 전세진, 오세훈 등 공격형 포지션을 맡은 K리거들에게 관심이 편중됐다면, 이 범위가 좀 더 넓어졌다.
크지 않은 체구 대신 반사신경을 극대화한 골키퍼 이광연. 통진고 시절부터 그 능력은 입소문을 탔다. 인천대 신입생 때는 일찌감치 접근해 계약을 추진한 강원FC의 손을 잡았다.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에도 들었던 보인고 출신의 중앙 수비수 이재익 역시 강원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단단한 피지컬과 왼발 빌드업으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U-23까지 계속 성장해야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FIFA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패한 대한민국 대표팀이 공식 시상식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7년 10월 경기 파주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예선. 정정용호는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등 약체와 붙어 4전 전승, 22득점 무실점으로 가볍게 본선행을 확정했다.
당시 멤버는 정말 괜찮았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이강인은 물론, 훗날 바이에른 뮌헨으로 진출한 정우영까지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아쉬웠다. 당시 경기력으로는 U-19 챔피언십 본선을 넘어 U-20 월드컵까지 가는 게 녹록지만은 않아 보였다. 이전 세대도 같은 전철을 밟았기에 정정용 감독 역시 “보다시피 선수들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또 다른 로드맵으로 준비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다행히 U-20 대표팀은 이 대목에서 몰라보게 개선됐다. 세계대회에서도 싸워볼 만한 경쟁력을 키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이 팀을 꾸준히 지켜본 한 사람으로서 느낀 보람도 상당했다.
이젠 꿈같던 여정을 뒤로한 채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 이 연령대는 완성형이 아니다. 국가대표를 논하기 전 각 소속팀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는 게 먼저다. 세계무대에서 자신감을 얻었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병수 강원FC 감독의 말이 더없이 냉정하게 다가왔다. 이광연, 이재익과 관련해 “무조건 출전 기회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여론에 떠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 도쿄올림픽에 나설 김학범 U-23 대표팀 감독이 U-20 대표팀 중 몇 명이나 끌어올릴지 의문이다. 김 감독은 “그 연령대는 더 커봐야 안다”고 말했다.
한국 U-20 대표팀은 2011년 16강, 2013년 8강, 2017년 16강에 올랐다. 당시 출전 선수 가운데 국가대표로 자리 잡은 이는 정말 얼마 안 된다. U-23 대표팀은 성인 대표팀으로 많이 올라가지만 U-20은 변수가 많다.
U-20 대표팀이 귀국한 날, 인천국제공항과 서울광장은 이들을 환영하는 축구팬들로 붐볐다. 하지만 거사를 치른 뒤 종적을 감추는 이가 생각 이상으로 많다. 새로운 역사를 쓴 이 세대는 부디 좀 더 오랫동안 빛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