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가 주인공인 SBS 드라마 ‘열혈사제’. 김남길이 연기하는 김해일 신부는 악당에게는 거친 언행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사진 제공 · SBS]
성적표는 현재까지 합격점. 특히 2월 15일 방송된 2회는 전국 시청률 13.8%, 순간 최고 시청률 18.3%(닐슨 코리아 기준)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다. 지난주까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던 SBS 대표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과 견줘도 밀리지 않는 기록이다.
이명우 감독은 2월 15일 서울 양천구 SBS 사옥에서 열린 ‘열혈사제’ 제작발표회에서 “궁극적으로 성직자에 대해 말하려는 게 아니라 부패와 잘못에 길들여진 대한민국에 작은 메시지를 던지고자 한다. 정의의 힘으로 악을 깨부수는 신부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경쾌하게 보여줄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드라마 시청자들은 김남길이 사제복을 펄럭이며 액션을 선보이는 모습에 더 눈길이 갔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 등 대중매체에 신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더는 낯설지 않다. 종전까지는 사제가 악령을 쫓는 엑소시스트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약 54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한 영화 ‘검은 사제들’(2015)이 대표적이다. 케이블TV방송 OCN이 지난해 내놓은 드라마 ‘손 the guest’와 ‘프리스트’도 신부가 주인공인 엑소시즘 드라마였다.
‘열혈사제’는 분노 연기의 달인인 김남길이 폭력도 불사하며 불의를 타도하는 사제 역으로 나와 변주를 줬다. ‘열혈사제’가 보여준 새로운 사제의 모습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드라마를 본 30대 직장인 최모 씨는 “기존 매체에 나오던 사제와는 다른 캐릭터라 흥미로웠다”며 호평했다. 유아 세례를 받은 후 지금까지 가톨릭 신자로 살아온 20대 직장인 박모 씨도 “실제 신부님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불쾌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드라마 공식 홈페이지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사제의 모습을 왜곡했다며 사과를 촉구하는 글도 적잖다.
그렇다면 엑소시스트부터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열혈 사제까지, 매체에 등장한 이들의 모습을 실제 가톨릭 신부들은 어떻게 볼까. 현직 신부 2명에게 물었다. A 신부는 2013년 서품을 받았고, B 신부는 올해로 신부가 된 지 10년이 됐다.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최부제 역을 맡은 강동원. 사제복도 그가 입으면 패션이 된다는 걸 보여줬다. [사진 제공 · 영화사 집]
“신부님, 그 옷 입지 마세요!” 한 무리의 초등학생이 A 신부의 사제복을 잡아끌며 외쳤다. 당시 영화 ‘검은 사제들’이 한창 인기를 끌 때였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강동원처럼 잘생긴 사람이 입는 옷을 왜 신부님이 따라 입느냐’며 저를 놀리곤 했습니다. 해맑은 아이들의 뼈아픈 질책이었죠.”(A 신부)
로만 칼라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긴 옷,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보는 바로 그 사제복이다. 수단(soutane)으로 불리는 이 옷은 중세 때 길이가 길고 헐렁한 외투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 의사나 법관이 입었다. ‘하느님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세속에서 죽었다’는 의미에서 검은색을 쓴다. 성직자 지위에 따라 색깔도 다르다. 신부와 부제는 검은색이나 흰색을 입고 주교는 진홍색, 추기경은 적색, 교황은 흰색 옷을 입는다.
OCN 드라마 ‘프리스트’에서 오수민 신부(연우진 분 · 왼쪽)와 문기선 신부(박용우 분 )는 구마 의식을 거행하며 악마 와 사투를 벌인다. [사진 제공 · OCN]
그렇다면 구마 의식은 어떨까. 한국 가톨릭은 구마를 ‘사람이나 사물에서 악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쫓는 준성사’로 규정한다. B 신부는 “구마 자체는 교회에서도 오랜 전통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흔치 않다”며 “신학교 과정에도 관련 수업은 없는 것으로 안다. 원칙적으로 교구장 주교의 허락이 있을 때 그 지시를 받은 사제만이 구마를 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론 신부든, 아니든 강동원급 인물은 흔치 않고 국내에서 구마 사제는 더더욱 드물다.
Q 김남길(SBS 드라마 ‘열혈사제’ 김해일 미카엘 신부 역)같이 화를 참지 못하는 신부도 있나요.
드라마 ‘열혈사제’ 2회에서 미사 도중 한 신자가 몰래 빵을 먹자 김해일 신부는 “거기 너, 모카빵. 나가!”라며 일갈한다. 1회에서도 그는 거짓 굿판으로 마을 사람들을 속인 무당이나 악덕 사채업자를 주먹으로 응징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실제로는 어떨까. A 신부는 “다행히 미사 도중 음식물을 섭취하는 신자는 아직 보지 못했다. 다만 휴대전화 사용이 이따금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B 신부는 “미사 전 휴대전화 전원을 끄거나 진동으로 해달라고 안내하지만 도중에 벨이 울리면 보통 모른 척하거나 농담을 하며 넘긴다”고 대응법을 밝혔다.
다만 신부도 사람이니 ‘분노’라는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할까. A 신부는 “화를 신자에게 직접 풀지는 않는다. 대개 동료 신부와 대화하며 푼다. 내 경우에는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결론 악인에 대한 분노로 폭력을 행사하면 실정법은 물론, 교회법으로도 제재받는 것은 당연지사.
Q 이제까지 대중매체에 나온 사제 캐릭터에 공감하거나 혹은 불쾌감을 느낀 적은 없나요.
“나는 내 직업이 나오는 드라마는 안 봐.” 의사들이 의학 드라마를, 법조인들이 법조계를 다룬 드라마를 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기자들이 기자가 주인공인 작품을 잘 보지 않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현실과는 영 딴판이기 때문. 사제들이 나오는 작품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부들이 인정하고 공감했던 사제 캐릭터는 없을까.
A 신부는 “사제의 길과 사랑하는 연인 사이에서 고민하던 극 중 인물에게 많은 또래 신학생이 공감했다”며 2003년 방영된 MBC 드라마 ‘러브레터’에서 배우 조현재가 연기한 이우진 안드레아 신부를 꼽았다. 뜻밖에 코믹한 영화의 사제 캐릭터도 공감을 얻었다. 신학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다는 B 신부는 영화 ‘신부수업’에서 배우 권상우가 연기한 신학생 김규식의 좌충우돌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가톨릭 사제가 주요 등장인물인 작품이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오류나 왜곡 논란은 어떻게 볼까. 두 신부는 “크게 불쾌한 적은 없으며 주변 신부들도 비슷한 반응”이라고 전했다.
“가톨릭 사제를 다룬 드라마는 분명 현실과 다르고 오류도 많아요. 하지만 교회나 교리에 대한 악의적 모독이 아니라면 극적 묘사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B 신부)
결론 신부들은 대중매체 속 신부의 모습에 대체로 관대하다. 신성 모독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