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김민경]
게다가 바다에서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 아버지와 나의 주말 식사 거리를 푸짐하게 구할 수 있었다. 배추와 무만 좋아하는 어머니가 동네 슈퍼마켓에서 절대로 사지 않던 기기묘묘한 해물로 식탁을 점령할 생각에 신이 나곤 했다. 옷깃을 여밀 만큼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맘때면 우리 부녀는 게 잔치를 준비했다. “먹을 것도 없고 분답하기만 한 게는 왜 또 사왔느냐”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는 어머니의 잔소리는 매년 가을마다 집 안에 울려 퍼지곤 했다.
빵게·홍게·참게…하나같이 ‘게 꿀맛’
양념게장.(왼쪽) 간장게장 만들기.[사진 제공·김민경]
다른 게에 비해 도시 사람들이 철마다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게가 바로 꽃게다. 꽃게는 서해에서 많이 잡힌다. 동해안 깊은 바다에 사는 대게나 홍게와 달리 꽃게는 수심 20~70m의 바다에 산다. 꽃게를 봄과 가을에 많이 먹는 이유는 산란기, 금어기와 관련 있다. 꽃게는 겨울잠을 자고 봄에 깨 산란을 준비한다. 그래서 4~5월이면 살이 꽉 차올라 맛이 좋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산란을 하는 시기에는 포획이 금지된다.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6~8월은 꽃게를 잡을 수 없으니 맛보기도 힘들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어기가 끝나고 다시 꽃게를 맛볼 수 있다. 봄 꽃게는 꿀맛이지만 잡히는 양이 많지 않은 반면, 가을 꽃게는 풍성하게 잡혀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초가을에는 수게가 많이 잡히고 가을이 깊어갈수록 암게가 많이 잡힌다.
꽃게는 통발 또는 그물로 잡는다. 통발로 잡은 꽃게는 배에서 어창으로 바로 옮긴다. 이때 꽃게의 집게발 끄트머리를 약간 자른다. 그렇지 않으면 꽃게끼리 물면서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그물로 잡은 꽃게는 일일이 그물에서 떼어내는 게 큰일이다. 여러 개의 다리에 집게발까지 있는 꽃게를 상처 없이 하나씩 분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잡은 꽃게는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누고 다시 암수와 크기별로 구분한다. 같은 날, 같은 배에서 잡은 꽃게라도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의 값은 배 이상 차이 난다. 생각해보면 먼 서해 꽃게가 도심 시장까지 살아서 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카레·찌개 등 끓여 먹어도 별미
꽃게카레, 매운 꽃게볶음, 쉽게 맛 내기 좋은 꽃게찌개. (왼쪽부터) [사진 제공·김민경]
두고두고 꺼내 먹고 싶다면 게장으로 담근다. 육수, 간장, 청주, 양파, 대파, 마늘, 생강, 마른고추 등을 넣어 끓인 뒤 식힌 장을 싱싱한 게에 부어 간장게장을 만들 수 있다. 간장 국물에 계피, 사과, 레몬 등을 넣어 상큼한 맛을 내기도 한다. 간장 국물을 부을 때 게는 반드시 배가 위로 향하도록 차곡차곡 놓아야 맛이 잘 밴다. 간장게장 못지않게 밥반찬으로 사랑받는 것이 양념게장이다. 손질한 게를 껍데기째 양념에 버무려 만들기도 하고, 살만 발라 양념에 무치기도 한다. 통째로 무친 게는 껍데기를 씹을 때마다 스며나는 단물을 먹는 맛이 좋고, 게살무침은 뜨거운 밥에 얹어 짭짤하게 비벼 먹는 맛이 그만이다.
조금 색다르게 맛보고 싶다면 꽃게를 2~4등분 큼직하게 손질해 카레로 끓여본다. 카레 재료로 종종 사용되는 소프트셸 크랩보다 훨씬 달고 감칠맛이 좋다. 꽃게로 카레를 만들 때는 감자나 당근 같은 덩어리 재료는 빼고 양파만 넣으면 되니 의외로 간단하다. 매콤하게 먹고 싶으면 청양고추나 마른고추를 넣고, 구수하게 먹고 싶으면 버터에 양파를 볶은 뒤 우유를 약간 섞어 끓이면 된다. 꽃게를 6등분해 매콤한 양념에 볶아도 색다른 요리가 된다. 볶기 전 꽃게에 녹말가루를 묻혀 기름에 튀기면 훨씬 맛있다. 매운맛은 마른고추와 생강으로 내고 간은 간장이나 굴소스로 맞추며 설탕을 조금 넣으면 감칠맛이 살아난다.
이런저런 재료도, 솜씨도 없다면 꽃게를 넣고 국이나 찌개를 끓이면 된다. 꽃게는 된장, 고추장, 고춧가루, 소금, 간장, 액젓 등과 두루 잘 어울린다. 맑은 국에 넣으면 시원해지고, 매운 국에 넣으면 감칠맛이 나며, 구수한 국에 넣으면 농밀함이 더해진다. 게다가 국물 요리에는 싱싱한 놈으로 한 마리만 넣어도 가을 꽃게의 풍미를 실컷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