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경북테크노파크]
주인공은 총리 암살범이라는 누명을 쓴다. 억울하게 암살범으로 지목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가 원격 조종 비행기를 다룰 줄 안다는 것. 그만큼 소설이 출간된 2008년까지만 해도 원격 조종이 가능한 비행물체를 다루는 일은 생소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아이도 장난감 가게에서 쉽게 ‘드론’을 구매해 하늘로 날릴 수 있다. 촬영용 드론도 하루가량 연습하면 누구나 간단한 촬영 정도는 가능하다.
일반인에게는 드론이 레저, 촬영, 배달용으로 인식되지만 관련 업계에선 “아직 드론이 필요한 곳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관련 사업에 경북도가 나섰다. 위험이나 인력 한계 같은 문제로 사람이 가지 못하는 곳 등에서 드론 수요를 창출하고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엮어 새 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10월 22일 경북 김천의 산업용 드론 혁신도시에 있는 ‘경북테크노파크’를 찾았다. 국내 드론산업 발전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경북테크노파크의 오픈랩설립추진TF팀은 드론 수요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공공기관의 교통안전 사업 가운데 드론 도입 시 불편을 줄일 수 있는 곳을 찾은 뒤 관련 업체나 학내 연구팀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즉 산·학·연·공·관이 경북테크노파크에 갖춰진 개방형 연구시설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류하고 산업용 드론의 수요를 만들면서 그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는 곳이다.
한국형 드론산업을 디자인하다
오픈랩설립추진TF팀 팀장인 송민석 박사는 “드론산업을 육성한다면 대부분 촬영이나 레저용 드론을 떠올리고, 이미 중국이 장악한 시장에 뒤늦게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비친다. 하지만 산업용 드론은 아직 블루오션이다. 중국은 물론 미국, 일본 등 기술 선진국에서도 산업용 드론 기술은 태동기에 머물고 있다. 빨리 수요를 파악하고 관련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면 한국이 세계 드론산업의 선두에 서는 것도 가능하다”고 밝혔다.경북테크노파크 근처에는 산업용 드론 혁신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추후 드론 관련 업체가 대거 입주할 계획이다. 앞으로 5년 동안 교통안전 관련 드론산업단지로 특화해 운영하고, 이후 영역을 넓혀가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단지를 꾸린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많은 사무실이 아직은 비어 있었다. 하지만 단지 외관만 봐도 미래의 모습이 대략 그려졌다.
드론을 만드는 것 외에도 드론 관련 산업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촬영용 드론에 필요한 렌즈를 만드는 업체, 비행 중 촬영할 때 흔들림을 줄이는 부품을 만드는 업체 등 하드웨어 부분은 물론, 드론이 안전하게 날 수 있게 항로를 짜거나, 다량의 드론을 자동 제어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많은 관련 업체가 있다. 경북도는 해당 업체들을 이곳에 입주시켜 협업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다.
건물마다 입구는 각각 달랐지만 중앙 통로로 출입구가 하나씩 뚫려 있었다. 공원처럼 꾸민 중앙 통로에는 식당 등 편의시설이 마련될 예정이다. 각 업체의 직원들이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자연스레 이곳에 모여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업체 간 협업으로 새로운 드론과 관련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공간이다.
교통안전 분야에서 드론 활용을 목표로 하는 경북테크노파크는 먼저 교통 감시 및 도로·교량 관리 업무에 힘을 쏟을 방침이다.
송민석 박사는 “현재 중·장기 연구개발(R&D) 사업의 일환으로 4개 업체와 3개 공공기관이 합작해 드론을 통한 교각 감리 체계를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교각의 균열 등을 드론으로 촬영해 그 결과를 파악한 후 교각에 추가로 안전 조치가 필요한지를 확인하는 일이다. 교각 위는 매 순간 차가 지나다니니, 자주 차를 세워 안전감리를 하는 것은 불편하다. 게다가 교각 하부는 사람이 직접 가기 어려워 균열이 생겨도 알 수 없다. 그간 교각 상부만 확인하는 안전감리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것.
드론을 감리에 사용하려면 먼저 확실한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이 있어야 드론이 찍어온 사진이나 영상을 바탕으로 감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관리공사는 이 기준을 마련했다. 한국건설관리공사 관계자는 “그간 도로, 교각, 비탈면 등의 관리 및 유지·보수를 지방자치단체에서 해왔는데, 담당 업무를 맡는 공무원들이 수시로 바뀌어 업무 연속성이 없었다. 그래서 주먹구구식으로 감리하는 곳도 종종 있었다. 게다가 전문가가 아닌 공무원이 육안으로 감리하다 보니 문제를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드론, 교각의 내시경 되다
교각 하부는 드론으로 촬영이 어렵다. [동아DB]
난관에 부딪힌 것은 교각 감리용 드론이다. 드론도 교각 하부의 촬영이 가장 어렵다. 드론은 대부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통해 자신의 위치정보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데, 교각 하부는 GPS 신호가 닿지 않는다. 협곡의 돌풍도 문제다. 돌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영상을 찍어내야 한다. 카메라 성능도 놓칠 수 없다. 송 박사는 “사람 몸에 내시경이 들어가 보기 힘든 환부를 파악하듯, 드론을 이용해 교각의 하부 균열을 촬영하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교각의 결함을 잡아내려면 0.1mm의 작은 균열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최소 4800만 화소 이상의 성능을 가진 카메라가 필요하다. 만에 하나 드론이 떨어질 것에 대비해 낙하산 등의 장비도 달아야 한다. 이 모든 기능을 담으려면 드론에 적재된 화물량만 5kg이다. 드론 무게까지 합치면 적어도 20kg.
최종 목표는 경북드론혁신도시
경북테크노파크 오픈랩설립추진TF팀 팀장인 송민석 박사. [홍중식 기자]
니어스랩과 그리폰다이나믹스는 드론 개발에 나선다. 니어스랩은 이미 비슷한 사업에서 성과를 내 풍력발전기의 날개 결함을 조사하는 드론을 개발했고, 그리폰다이나믹스는 촬영 전문 드론 개발업체로 이미 미국 할리우드 등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본 프로젝트에 초고성능 촬영 드론이 필요하니 두 업체가 힘을 합쳐 드론 개발에 나서게 된 것이다. 드론 기지국 역할은 전파 및 센서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월드TNS가 맡는다.
송 박사는 “개발 기한은 올해 4월부터 2022년 12월까지이지만 3년 내 상용화를 마칠 계획이다. 이미 관련 기술을 대부분 확보했다. 남은 기간엔 개발된 드론 및 감리 프로그램을 해외시장에 소개하고,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북테크노파크가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아 성과를 내고 있으니 드론업계에서도 산업용 드론 혁신도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매일 한두 곳의 업체에서 입주 관련 문의가 온다고.
경북테크노파크 관계자는 “이곳에서 당장 성과를 내고 있는 만큼 많은 업체가 입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근 9km의 공장지역에 비해 임대료가 5배가량 비싸 입주를 망설이곤 한다. 새 건물이 들어서는 만큼 부동산 투자 수요 때문에 임대료가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경북도에 임대료 보조 등의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한 상태”라고 말했다.
송 박사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에 빛, 에너지 관련 기업이 모여 있는 것처럼, 경북도에도 드론 기업이 모인 혁신도시를 꾸릴 계획이다. 지금은 교통안전 분야 감리를 위주로 하지만 시스템이 확보되면 공사장 감리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비해 경북도는 전문인력 양성에 힘쓰고 있다. 약 40억 원의 예산을 들여 경일대, 경운대, 금오공대, 김천대 등 지역 대학에 드론 관련 학과를 신설한 것. 이곳에 입주할 업체들의 예비 인력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