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택할 ‘신의 한 수’

대만 대신 중국 손잡으면 … 교세 확장, 종교의 자유 확대, 민주화 기여 등 일거삼득

  •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8-10-15 11:3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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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위). 중국 가톨릭 지하교회에서 
신자들이 촛불을 켠 채 예배를 보고 있다. [CNA, 가톨릭 헤럴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위). 중국 가톨릭 지하교회에서 신자들이 촛불을 켠 채 예배를 보고 있다. [CNA, 가톨릭 헤럴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상 최초 예수회 출신으로 즉위한 가톨릭교회 수장이다. 예수회는 1540년 성(聖) 이그나티우스 로욜라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신부 등 6명의 사제와 함께 창설한 가톨릭의 사제 수도회를 말한다. 예수회는 중국, 일본,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와 중남미 등 해외 선교에 주력했다. 1549년 최초로 일본에 가톨릭을 전파한 선교사도 하비에르 신부다. 하비에르 신부는 1551년 포교를 위해 중국에 갔지만 입국하지 못했고, 1552년 광둥성 앞의 섬에서 열병으로 숨졌다. 하비에르 신부 다음으로 중국 포교에 나선 선교사가 마테오 리치 신부다. 리치 신부는 1583년부터 27년간 명나라에 체류하면서 뛰어난 포교 활동을 벌였다. 

    청년 시절 일본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중국과 관계 개선 움직임을 보여왔다. 중국에 가고 싶다는 말도 여러 차례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비행기가 중국 상공을 지나갈 때 마테오 리치 신부가 떠올랐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분된 중국 가톨릭교회

    로마 교황청과 중국 정부가 그동안 주교 서품 문제를 놓고 대립해오다 잠정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고 있다. 앙투안 카밀레리 몬시뇰 교황청 외교차관과 왕차오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9월 22일 베이징에서 주교 서품 문제에 대한 잠정 합의안에 서명했다. 바티칸(시국)은 로마 교황청을 유지하기 위한 독립국가를 말한다. 양측의 이번 합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력한 희망에 따른 것이다. 양측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잠정 합의안은 중국 정부가 자국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교황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고, 정부가 주교들을 추천하되 교황은 이들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는 내용인 것으로 추정된다. 가톨릭에서 서품은 최고지도자인 교황이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주교(主敎), 사제(司祭), 부제(副祭) 등 성직자를 임명하는 것을 뜻한다. 서품된 성직자만이 신자들에게 은총을 전하고 예식을 집행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교황의 이런 권한을 내정 간섭이라고 주장하며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해왔다. 

    이 때문에 중국 가톨릭교회는 양분된 상태다. 중국의 공식 가톨릭교회는 현재 정부 통제를 받는 관제 단체인 중국천주교애국회(中國天主敎愛國會·애국회)에 소속돼 있다. 이 단체가 교황 대신 주교를 서품하고 있는 것. 교황이 중국 주교를 직접 임명할 경우 자칫하면 주교들이 종교의 자유를 앞세워 자국의 정치 체제를 비판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 교황청은 애국회의 주교 서품이 교리에 위배된다며 강력히 비판해왔다. 

    교황이 서품한 중국 성직자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으며 지하교회를 운영하고 있다. 애국회 소속 신자는 500여만 명이고, 지하교회 신자는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지하교회 신자들에 대한 배신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대만 주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주바티칸 대만대사관]

    프란치스코 교황(가운데)이 대만 주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 주바티칸 대만대사관]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국과 화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교세 확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시아는 전 세계 인구의 60%를 차지하지만 가톨릭 신자는 12%에 불과하다. 가톨릭 교세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14억 인구의 중국에서 포교에 나선다면 교세 확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로마 교황청은 내심 중국 내 종교의 자유 확대는 물론, 민주화에도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로마 교황청은 1980년대 동유럽 민주화에 도움을 준 바 있다. 

    중국도 바티칸과 관계 개선이 종교의 자유와 인권 탄압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무마하는 데 좋은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바티칸이 1951년 대만을 합법정부로 인정하자 바티칸과 단교했다. 중국은 바티칸과 수교하면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독립노선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만 카드’를 사용하는 것을 차단할 수단도 된다. 물론 중국 공산당 지도부 중 일부는 종교의 자유가 확대될 경우 자칫하면 체제에 위협이 된다며 수교에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임명한 가톨릭 주교가 56년 만에 로마 교황청이 주최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에 참석했다. 10월 29일까지 바티칸에서 진행되는 제15차 주교 시노드에 처음 참가한 중국 성직자는 궈진차이 청더교구 주교와 양샤오팅 시안교구 주교다. 중국 주교는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교황청이 주최하는 시노드에 참석한 적이 없다. 특히 궈 주교는 잠정 합의에 따라 로마 교황청이 승인한 중국 주교 7명 가운데 1명이다. 

    하지만 가톨릭교회의 강경파는 이번 잠정 합의가 오랫동안 고통을 겪어온 중국 가톨릭 지하교회 신자들을 중국 정부에 팔아넘기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요셉 쩐 홍콩 추기경은 “잠정 합의로 중국 정부에 지하교회를 제거할 기회를 주게 됐다”며 “중국 지하교회 신자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잠정 합의로 지하교회 활동을 사실상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대만 정부는 바티칸과 중국 정부가 수교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만약 바티칸이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여 대만과 단교하면 대만은 유럽의 유일한 수교국을 잃게 된다. 대만 총통부는 단교를 저지하고자 10월 11~16일 천젠런 부총통을 바티칸에 특사로 파견했다. 대만 정부는 바티칸이 중국 및 자국과 동시에 외교관계를 가질 것을 주장하지만,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중국 정부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수교국이 17개국밖에 남지 않은 대만으로선 ‘바람 앞의 등불’ 신세나 마찬가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랜 친구’와 ‘새 친구’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신의 한 수’를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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