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서울 신문로 대한축구협회축구회관에서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0월 A매치 2연전에 나설 25인의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동아DB]
관전 포인트는 명확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을 궁극적 지향점으로 삼는 축구대표팀은 세대교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존 멤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되, 새로운 얼굴을 추가해 새판을 꾸려야 한다. 중앙 수비진도 그중 하나다. 9월 A매치 결과 누군가는 대표팀과 멀어질 수도 있었다. 가령 칠레전 막판에 백패스 실수를 한 장현수의 운명에도 조명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 이름 석 자는 10월 명단에도 있었다. 벤투 감독의 관점도 기존 감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빌드업’ 패스 믿고 장현수 쓴다고?
실력 논란에 휘말려도 계속 대표팀에 선발되는 장현수(FC도쿄). [동아DB]
중앙 수비수뿐 아니라 여러 포지션을 번갈아 맡았다. 장현수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 오른쪽 측면 수비수를 겸했다. 폭발적인 오버래핑(전방 수비수의 공격 가담)은 없지만, 옆줄 가까이에서 패스 길목을 열 수 있다는 차원에서였다. 또 신태용 전 감독과 함께한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처럼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다.
다만 퍼포먼스가 압도적으로 좋았던 경기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경기 직후 대형 인터넷 포털사이트와 여론의 눈총이 그에게만 쏠린 적이 여러 번이다. 일각에서는 인맥 논란까지 불거졌다. 장현수의 배경이 어마어마해 대한축구협회에서 암묵적으로 밀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까지 선택했으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벤투 감독은 장현수의 발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는 선수 평가 시 수많은 움직임과 판단을 먼저 살핀다. 장현수는 9월 A매치에서 아주 잘했다.”
그간 감독들이 장현수를 낙점해온 가장 큰 이유는 ‘빌드업’이었다. 우리 진영에서 공격을 시작할 때 앞선 동료에게 얼마나 정확히 패스를 건네느냐는 것이다. 9월 코스타리카전과 칠레전에서 장현수는 141회의 패스를 시도해 우리 대표팀에서 가장 많았다. 성공률 90%는 정우영의 91.5%에 이어 두 번째다.
이즈음에서 ‘통계의 허구’를 논하고 싶다. 장현수가 기록한 90%는 대단한 성공률인데, 그 실패한 10%가 어땠는지가 선수에 대한 인상을 가르기 마련이다. 칠레전 마지막 순간 나온 실수가 그랬다. 0-0 균형이 그 한 방에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었다.
최종 수비진의 횡패스, 백패스 실수는 그 무엇보다 죄악시된다. 경기 전체로 보면 골키퍼 김진현의 킥이 더 나빴다고 평할 수 있으나, 장현수의 그것보다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장현수 본인은 축구를 논할 때 ‘기본에 충실’이란 표현을 종종 쓰곤 했다. 그렇다면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패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범실은 없어야 했다.
장현수 능가할 수비수 나오지 않아
선수 시절 대표팀에서 수비수로 활약했던 홍명보 대한축구협회 전무. [동아DB]
장현수를 꼬집을 때 대다수가 하는 말이 “저 선수가 더 나을 것 같은데, 왜 안 써보느냐”다.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안 남은 시점에 부임한 감독은 시간적 여유가 없다.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에 윤영선을 기용한 것처럼 과감한 수를 던져 성과를 낼 수도 있으나, 호흡을 미덕으로 여기는 수비진은 절대로 쉽게 손댈 수 없다. 어떤 감독이든 그렇다.
한국산 중앙 수비수에 대한 불신도 크다. 원래 그 정도 실력이란 얘기다. ‘아시아의 리베로’로 불리던 홍명보 전 감독과 “대체 왜 한국에는 괜찮은 중앙 수비수가 잘 안 나오느냐”를 놓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홍 전 감독은 유망 수비수들을 모아 짧게나마 캠프를 열곤 하는데, 하루는 이들에게 “가장 잘하는 것을 하나씩 말해보라”고 했단다. 대부분 ‘킥’이나 ‘태클’이라고 대답했다고. 빌드업, 패싱력 등 세계 축구의 조류와는 크게 엇갈리는 대답이다. 홍 전 감독은 “선수들이 경기 중 급하게 킥이나 태클을 요구받는다. 결국 우리 지도자들이 만드는 수비수가 그렇게 굳어가고 있다”며 답답해했다.
수비를 전문적으로 교육시킬 인력이 없다는 사실도 뼈아프다. 홍 전 감독이 미국에서 생활할 때다. 동네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우는 아들을 따라가 보고 놀랐다고. 그 작은 팀에도 코치가 철저히 분업화돼 있더라는 것이다. 펜스면 펜스, 스틱이면 스틱, 게다가 스틱도 드리블과 회전 등으로 세분화돼 있었다. 한국 중앙 수비수는 이런 체계적이고 세밀한 코칭을 거의 받지 못한다. 장현수 같은 유망 수비수에게 전문 지도자들이 달라붙어 고쳐줬다면 그렇게 맥 빠지는 실수로 휘청했을까. 대부분 학창 시절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다 성인 즈음에 중앙 수비수로 자리 잡는다. 이들에게 엄청난 실력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도둑 심보다.
장현수를 발탁한 감독은 지금까지 한 둘이 아니었다. 그만큼 다른 선수보다 준수했기 때문이리라. 그게 곧 한국 중앙 수비수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