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동아DB]
투기수요와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부의 고강도 정책에 부동산시장은 관망세로 돌아서는 듯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4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몇 가지 치명적인 부동산정책 시행을 앞두고 집을 처분하려는 매도자와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려는 매수자가 몰리면서 도리어 집값은 폭등했다. 심지어 연초에는 계약서를 쓰는 자리에서 매도자가 갑자기 1억 원씩 집값을 올려 매수자가 계약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8·2 부동산대책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과열 양상을 보였고 4월 이후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부동산 불패’에 대한 사람들의 신념은 더욱 공고해져 분양시장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면 지방은 미분양 증가, 집값 하락 등 이중고로 부동산 침체기에 들어섰다. 8·2 부동산대책이 발표된 지 1년, 정책별로 어떤 효과를 낳았는지 분석해봤다.
과열지역에 투기수요 유입 차단
정부는 먼저 집값이 과도하게 오른 지역을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조정대상지역 등 3개로 나눠 지정했다. 서울은 25개 구 모두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됐고, 이 가운데 강남, 서초, 송파 등 11개 구가 투기지역으로 묶였다. 그러면서 집값 상승의 견인차 구실을 한 재건축·재개발 규제안도 내놓았다. 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강화했고, 투기과열지구 내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의 조합원 분양권 전매를 관리처분계획인가 후부터 소유권이전등기 시까지 금지했다.투기지역,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곳의 집값은 과연 진정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감정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3.64%로 전년 대비 1.5%p 높았다. 지난해 12월 서울 매매가 상승률은 0.59%로 6월 0.66%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 8·2 부동산대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특히 송파(1.50%), 강남(1.36%), 서초(1.08%), 강동(0.93%) 등 ‘강남 4구’가 집값 상승을 견인했다. 강남 4구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1년 새 3억~5억 원가량 오른 집이 수두룩하다.
재건축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을 강화하고, 재개발 조합원 분양권 전매를 금지한 정책의 실효성을 놓고도 의문이 따른다.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게 되자 조합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수요자 역시 ‘희소성’만 더욱 높였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당시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고 거래를 아예 막아버린 것은 잘못된 처사다. 조합원의 퇴로를 막아 재건축 아파트의 가격을 잡기는 어렵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일각에서는 향후 재건축·재개발 완료 이후 집값은 더 오를 것이란 전망과 함께 ‘조합원들은 더 큰 돈방석에 앉을 기회를 얻게 된 셈’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분양시장에서 발생했다. 8·2 부동산대책 발표 당시 정부는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적용 요건을 강화해 고분양가에 따른 주택시장 불안을 잠재우려 했다. 3개월 동안 집값 상승률 10% 이상인 지역에 적용되지만 아직 적용 사례는 없다. 그 대신 국토교통부(국토부) 산하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투기과열지구 분양가를 이미 시세보다 낮게 책정해 분양가상한제가 사실상 적용되고 있다.
이로 인해 ‘로또 청약’이라는 표현이 생겼을 정도로 쏠림현상이 심해졌다. 대표적 예로 3월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분양한 ‘디에이치자이개포(개포8단지)’는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 25.22 대 1, 최고 경쟁률 90.69 대 1을 기록했다. 인근 도곡동과 개포동 시세가 3.3㎡당 평균 5000만 원인 데 비해, 디에이치자이개포 분양가는 4160만 원에 책정된 것이 원인이었다. 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청약 경쟁률은 가히 기록적 수준이다. 8·2 부동산대책이 나오고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청약 당첨은 가장 손쉬운 재테크’라는 공식이 깨지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분양시장에 대기 수요가 넘치는 실정이다.
실수요 중심 주택수요 관리 강화
8 · 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시행, 재건축 안전관리 기준 강화 등 정부의 고강도 정책으로 재건축 아파트 시세는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재건축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주공1단지 전경. [동아DB]
일부 다주택자는 집을 팔기로 결정해 8·2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올해 3월까지 8개월 동안 매물이 쏟아졌다. 그런데 다주택자의 다음 선택은 ‘똘똘한 한 채’였다. 이들은 여러 채를 팔아 모은 돈으로 강남권의 비싼 집 한 채에 투자하는 쪽을 선택했다. 이로 인해 강남권 학군, 인프라, 브랜드 가치 등을 갖춘 대단지 아파트는 8개월 새 2억~3억 원은 우습게 올랐다.
특히 집값 하방 압력이 거셌던 지방 부유층은 집 여러 채를 판 돈을 강남 아파트에 묻었다. 실제로 1월 18억7000만 원에 거래된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59㎡의 매수인은 지방에 거주하는 다주택자로, 전세 10억 원을 끼고 갭투자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2월 입주를 앞둔 서울 송파구 송파헬리오시티 인근의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대표는 “7월 비수기에도 지방에 거주하는 이들이 투자용으로 상당수 문의를 해왔고 주말에는 현장을 직접 답사한 뒤 내려갔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투기수요를 확실히 잡기 위한 방안도 내놨다. 8·2 부동산대책에서 다주택자 등에 대한 금융규제를 강화해 투기지역 내 주택담보대출을 기존 인당 1건에서 가구당 1건으로 제한한 것. 투기과열지구와 투기지역의 경우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가 40%로 확 줄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LTV가 70%까지 늘어나 3억 원밖에 없어도 10억 원짜리 집을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빚내서 갭투자를 하는 투기수요는 잡히는 듯했다. 그러나 실수요자도 마찬가지로 발목이 잡혔다. 집값은 고공행진 중인데 대출 길이 막히자 차일피일 미루던 내 집 마련의 꿈을 아예 접은 무주택자가 늘었다. 상황이 이러니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 실수요자 사이에서는 ‘정부가 대출 걱정 없는 부자들을 위해 잔치판을 벌여준 꼴’이라는 비난도 거세게 일었다.
다주택자에게 인센티브를 줘 임대주택 등록을 유도한 정책은 일정 부분 효과를 봤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방안’(활성화방안)을 발표하며 임대사업 등록 시 지방세, 소득세, 양도세 등을 감면하고 국민건강보험료 부담도 완화하는 등의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17년 하반기 총 3만7000여 명, 2018년 상반기 7만4000여 명이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다. 활성화방안이 나오고 6개월 만에 임대사업자 수는 2배로 대폭 증가했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의 세수 확보에는 도움이 됐을지언정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집값 안정화 등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대사업자로 등록한 이들이 세제혜택을 보려면 단기임대의 경우 4년, 준공공임대의 경우 8년간 임대를 해야 하기 때문. 전세 혹은 월세 가격은 안정될 수 있지만 그만큼 시장에 매물이 나오지 않는 ‘매물 잠김’ 현상이 두드러져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투기적 주택수요에 대한 조사 강화
그동안 부동산시장에는 불법증여, 청약 점수 조작, 분양권 불법전매 등 암암리에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들이 있어왔다. 정부는 이들을 투기적 주택수요라 보고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놨다. △자금조달계획 등 신고 의무화 △주택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국세청 등 관계기관 공조 강화 △불법전매 처벌 규정 강화 등으로 적발 시 과태료 부과, 행정처분, 벌금형 등 처벌을 받게 했다.정부가 강남권 부동산을 정조준하고 단속을 철저히 하자 기현상이 벌어졌다. 지난해 하반기 시장 과열 시기에 일부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관계자가 문을 닫은 채 전화로 혹은 외부에서 중개를 하기도 했다. 또 정부가 자금조달계획 신고 시 부모와 친척의 자금까지 철저히 조사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섣불리 집을 사려는 이도 줄었다.
실제로 서울 강남 도곡동에 거주하는 30대 A씨는 “올해 초 집을 사려다 포기했다. 지인이 집을 사면서 자금조달계획서에 부모로부터 융자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증여세를 내게 됐을 뿐 아니라, 부모가 경영하는 회사까지 조사받았다고 하더라. 괜히 집을 샀다 남편 회사까지 조사받을까 봐 걱정돼 이번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에는 집을 사지 않으려 한다”며 몸을 사리는 발언을 했다.
정부 역시 고강도 조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6월에는 디에이치자이개포, 경기 과천위버필드, 논현아이파크, 마포프레스티지자이, 당산센트럴아이파크 등 5개 단지의 청약 당첨자 가운데 불법행위 의심 사례 68건을 적발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8월에는 경기 하남포웰시티 당첨자 가운데 108건의 불법행위 의심 사례도 적발해 경찰 수사를 의뢰했고, 확정 시 3년 이하 징역 혹은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고 향후 청약 자격도 제한하는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 같은 강도 높은 조사는 투기 세력을 잡고, 과도하게 몰린 대기 수요를 단기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수세를 옥죌 뿐 근본적인 집값 안정화 정책이 될 수 없다는 아쉬움이 따른다.
서민을 위한 주택 공급 확대
정부는 8·2 부동산대책에서 서민을 위한 공급 물량 확대를 약속했다. 사실 전문가들은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공급 물량 확대’를 꼽았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지난해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공급 물량을 늘리는 것밖에 없다. 그러려면 강남에 남아 있는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곳에 주택을 공급하면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수도권 집값 안정화 방안으로 정부는 신규택지 개발을 추진하고, 주택 공급에서 공공의 역할을 강화하며, 신혼부부를 위한 분양형 공공주택을 새로 건설하는 방안을 내놨다. 현재까지 정부는 당초 약속한 대로 2018년 13만 호 공공임대주택 공급 약속을 이행하고 있으며, 2022년까지 총 65만 호를 공급할 계획이다.
이뿐 아니라 정부는 평균소득 이하의 신혼부부와 저소득 신혼부부 등에게 공공주택을 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저소득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기금 대출상품을 마련하는 등 주거와 출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공공임대주택이 지어지는 지역은 서울을 제외한 수도권 일부와 인천, 대구, 울산 등 지방에 그쳐 불만이 쌓이는 실정이다.
실수요자를 위한 청약제도 정비
무주택 실수요자는 청약 당첨에 목숨을 건다.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8·2 부동산대책에서 실수요자를 위해 청약제도를 정비했다.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의 1순위 자격을 청약통장 가입 후 2년, 납부 횟수 24회 이상으로 강화하고 △가점제 비율도 투기과열지구에서 85㎡ 이하 100%, 조정대상지역에서 85㎡ 이하 75%로 상향했다. △가점제 당첨자는 2년간 가점제 적용을 배제하고 △민영주택 예비입주자 선정에서도 가점제를 우선 적용하기로 했다.청약 당첨 조건을 까다롭게 하자 인기 청약지역에는 고점자가 대거 몰렸다. 당첨자 발표 전부터 인터넷 부동산 카페 등에 평균 커트라인 점수가 돌고, 자신의 청약점수가 당첨 안정권인지를 묻는 사람도 늘었다. 점수가 낮은 이들은 100% 가점제인 85㎡ 이하보다 50% 추첨제로 뽑는 85㎡ 초과에 희망을 걸기도 했다. 고점자의 당첨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서울의 경우 청약통장 수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청약통장을 쥐고도 한숨을 쉬는 이가 여전히 많은 실정이다.
이 밖에 정부는 지방 민간택지 전매 제한 기간 설정, 오피스텔 전매 제한 강화 등의 대책도 내놨다. 부산 해운대구 등 7개 구 아파트 분양권 전매는 1년 6개월 보유 또는 소유권 이전 등기 시로 바뀌었다. 그러자 부산 분양시장은 빠르게 식어 올해 1월 미분양 주택이 2000가구를 넘어서는 등 급증하고 있다.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의 한 부동산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지난해 9월부터 분양 열기가 확 식으면서 덩달아 기존 집값도 떨어지고 있다. 정부가 서울 집값 잡겠다고 지방은 나 몰라라 한다. 앞으로 부산 부동산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도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