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36계 중 31계가 미인계
스파이 혐의로 체포된 러시아 여성 마리야 부티나가 기관단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부티나 페이스북]
미국의 세계적인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애인도 소련 스파이였다. 5개 국어를 구사하는 변호사 마르가리타 코넨코바로 위장한 이 여성은 미국의 원자탄 개발 프로젝트 기밀을 빼내려고 아인슈타인에게 접근했다. 소련 조각가인 남편과 함께 미국을 방문한 코넨코바는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아인슈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애인이 됐다. 아인슈타인은 코넨코바가 소련 스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하지 않았다. 10년간 관계를 유지한 아인슈타인은 코넨코바가 소련으로 돌아가게 되자 이별의 편지와 함께 시계를 선물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98년 공개된 아인슈타인의 편지로 알려지게 됐다. 코넨코바의 암호명은 루카스였다.
애나 채프먼이 패션잡지 ‘맥심’의 러시아판 표지 모델로 나온 모습.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녀 스파이 예카테리나 자툴리베테르. 올가 체코바(왼쪽부터). [Film Foto Verlag]
FBI가 7월 15일 외국 정부의 불법요원으로 활동한 혐의로 체포한 러시아 여성 마리야 부티나(29)는 자툴리베테르와 비슷한 유형의 스파이라고 볼 수 있다. 부티나는 시베리아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2011년 러시아에서 총기 소지 옹호를 주장하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 고위 관료이자 억만장자인 알렉산데르 토르신 러시아 중앙은행 부총재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했다. 토르신은 러시아 정부의 해외 불법활동에 연루된 혐의로 올해 4월 미국이 제재 대상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2016년 유학 비자로 미국에 입국한 부티나는 지난해 5월 워싱턴 DC의 아메리칸대 대학원에서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티나는 총기 소지 옹호 단체에서 활동하며 친분을 맺은 미국 최대 로비 단체인 전미총기협회(NRA)와 공화당 정치 후원 단체인 보수정치행동위원회(CPAC) 인사들을 포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활동을 도와준 NRA 회원이자 공화당 전략분석가인 폴 에릭슨(56)과 동거했다. 에릭슨은 부티나를 도와 2016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선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하던 릭 디어본 전 백악관 비서실 차장과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NRA 총회 때 트럼프 후보와 푸틴 대통령의 만남을 주선하자’는 e메일을 보냈다. NRA 총회에서 트럼프와 푸틴 회동은 불발됐지만 당시 부티나는 토르신과 함께 트럼프 대선후보의 장남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있기도 했다. 부티나는 또 다른 미국 정계 인사를 통해 미국 정치권 유력 인사들과 러시아 정부 인사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런 행적들은 FBI가 부티나의 노트북컴퓨터를 압수해 조사한 결과 밝혀졌다. FBI는 부티나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요원들의 연락처 등을 찾아냈다.
뉴욕의 팜파탈, 애나 채프먼
FBI가 과거 체포한 러시아 스파이 중에는 영화 ‘007시리즈’에 나오는 ‘본드걸’만큼 미모가 뛰어난 여성도 있었다. 2010년 체포된 애나 채프먼은 온라인 부동산회사 최고경영자(CEO)로 신분을 위장했다. 채프먼은 밤에는 각종 파티는 물론이고 레스토랑과 고급 클럽을 드나들며 뉴욕 사교계의 거물로 활동하면서 각종 정보를 수집했다. 미국 언론들은 붉은 머리에 푸른 눈동자의 채프먼을 ‘뉴욕의 팜파탈(치명적 매력의 요부)’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채프먼은 러시아 볼고그라드 출신으로 본명은 안나 쿠스첸코였다. 모스크바 러시아인민우호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이 여성은 스파이 교육을 받은 뒤 2002년 러시아에서 심리치료사 과정을 수습 중이던 영국인 알렉스 채프먼을 만나 결혼해 영국에서 살다 2006년 이혼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채프먼은 2010년 러시아 스파이 9명과 함께 체포됐다. 이후 미국과 러시아 정부 간 스파이 맞교환 방식으로 미국에서 추방돼 러시아로 돌아갔다.스파이는 매춘에 이어 두 번째로 인류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온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 스파이가 수집한 정보는 한 국가의 운명이나 국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도 미인계는 스파이 세계에서 가장 유용한 수단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