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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이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는 사실상 북·미 협상 테이블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관건은 문서화된 합의문보다 비핵화 협상에 대한 양국의 실천과 신뢰 구축이다. 미국이 CVID를 양보한 만큼 북한은 이에 상응하는 현실적인 비핵화 조치를 선행해야 할 것이다. 동창리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엔진실험시설과 발사대 파괴 조치가 기대된다. 현실적 비핵화의 첫 단계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급했던 20% 비핵화에 상응하는 조치다. 아무리 위협적인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다 해도 이를 쏠 미사일 발사대와 시험장이 없으면 위협은 반감된다. 북한 처지에서는 핵탄두를 보유하면서도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다.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은 한미연합훈련 중단과 종전 선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미 정상회담 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한국, 일본 외교부와 협상을 가졌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나 회담했다. 대북제재 단계별 완화와 종전 선언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을 테다. 양국 협상 과정이 ‘북한의 비핵화 조치 실행→미국의 체제 보장 절차’의 선순환 국면에 진입하는 것이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따라 이르면 7월 27일 역사적 종전 선언이 나올 수 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5년 만이다.
지정학적 리스크 줄어든다
코스피는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효과로 밸류에이션 리레이팅(주가수익비율 상향 조정)이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증시의 저평가 원인으로 꼽히던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게 됐다.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는 기업 처지에서 이익이나 투자 심리, 자산 가치 등을 안정화해 주가 할증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코스피 전체로도 마찬가지다.
지정학적 위험은 한국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과 신흥시장채권지수(EMBI+) 스프레드를 활용해 수치화할 수 있다. EMBI+ 스프레드에서 CDS 프리미엄을 차감한 수치가 상승하면 한국이 상대적으로 금융시장에서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고 있다는 뜻이다(그래픽 참조).
둘 사이 격차 축소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진행 중이다. 2016년 이후 빠르게 하락했는데, 이는 곧 한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고 있었음을 뜻한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냉각된 북·미 관계는 북한의 6차 핵실험으로 절정에 달했다. 그러다 올해 초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해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극적인 변화를 꾀하게 됐다. 이는 결국 EMBI+와 CDS 간 격차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2015년 이후 평균 수준까지 격차가 확대되면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은 3% 상승할 수 있다. 평균 대비 +1 표준편차까지 격차가 커지면 PBR는 9% 상승도 가능하다. 이 둘의 평균인 5% 내외가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따른 코스피 PBR 상승 여력이라 볼 수 있다.
종전 선언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나면 시장은 다시 수혜주 찾기에 분주해질 것이다. 방대하고 중·장기적인 경협 프로젝트 가운데 우선순위를 판별해야 하며, 해당 프로젝트로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높은 기업과 섹터 중심으로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와 더불어 2007년 10·4 남북정상선언 합의가 우선적으로 이행될 개연성이 높다. 당시 경협 관련 합의 사항은 크게 4가지로 압축된다.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서해평화특별협력지대 조성 △개성-평양 고속도로 및 평양-신의주 철도 개·보수 △백두산 및 개성관광 협력과 서울-백두산 직항로 신설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경협 사업은 평양-남포지역 개발이다. 평양-남포지역은 북한 최대 경제구역으로 북한 경제 재건의 핵심 축이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경제 개방을 추진할 경우 외부 투자는 최우선적으로 이 지역에 집중될 개연성이 높다.
우선순위가 높은 프로젝트는 대부분 접경지역 주변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접경지역 도로·항만 관련 기업의 수혜를 예상할 수 있다. 건설업종은 전반적인 리레이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 있으나 수주의 직접적 수혜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에 대한 대응은 건설 상장지수펀드(ETF·건설과 시멘트를 두루 포함)가 적합하다.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축 과정에서 고속철 연결 사업은 현 정부에서 궁극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다. 다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의 긴밀한 협력, 사업권 확보 경쟁 등 장애 요소도 공존한다. 따라서 접경지역에서 우리 기업들이 지리적 경쟁력을 갖추고 추진할 수 있는 프로젝트보다 후순위로 진행될 전망이다.
해외 항로 측면에서도 인천항이 유리하다. 북한 서해항은 해외로 연결된 항로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48개 항로를 가진 인천항이 북한 서해권역 항만의 환적항 역할을 할 수 있다. 국내 기업 중 해상 운송, 인천항 항만 하역 업체, 항만 소프트웨어 업체 등에 실질적인 수혜가 가능하다.
개성공업지구는 남북 최대 규모의 민간 경협 사업이다. 개성공업지구가 가동되기 전인 2002년까지 400만 달러에 불과하던 민간 경협 규모는 개성공업지구 가동이 중단되기 직전인 2015년 말 기준 2700만 달러(약 299억7000만 원)로 확대됐다. 현재 개성공업지구 개발은 총 3단계 2000만 평(약 6600만㎡) 개발 계획(800만 평 공업단지, 1200만 평 배후도시 개발) 중 1단계 100만 평 개발에 머물고 있다.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1단계 재가동과 함께 2단계 개발이 진행될 것으로 예측된다.
1단계는 경공업단지로 노동집약적 중소기업 공단 조성이다. 현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으로, 남북 정부의 이해관계에 공통으로 부합한다. 2단계 개발은 기술집약형 기업 중심으로 수도권과 연계된 산업단지 조성을 목표로 한다. 서울 금융시장, 인천 물류 기능과 협력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
금강산 관광은 대북제재 문제만 해결되면 빠른 시일 내 정상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관광 사업 재개 의지가 강하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재개 없이는 남북경협 재개도 없다”는 일관된 의견을 표명해왔으며, 금강산 관광 재개 여부를 남한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척도로 활용하고 있다.
현대아산 · 현대엘리베이터 수혜 예상
종전 선언과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이 되살아나면서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진은 북한 개성시 봉동리 개성공업지구(왼쪽)와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해 관광버스들이 비무장지대를 지나는 모습. [뉴시스, 사진 제공 · 현대아산]
개성공단 재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의 최대 수혜 기업은 현대아산이다(비상장주식 장외 매매시장·K-OTC). 상장기업 중에서는 현대아산 지분 70%를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의 간접 수혜가 예상된다. 현대아산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및 북한산, 개성 관광 사업권, 여타 사회간접자본(SOC) 개발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한국주택토지공사(LH공사)는 북한의 대남 협상 전담 공식 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개성공업지구 건설운영 합의서를 체결했다. 합의에 따라 현대아산은 2052년까지 개성공업지구 토지이용권을 확보한 뒤 이를 LH공사에 양도했다(2002년 12월). 현대아산과 LH공사 간 역할 분담이 목적이었다. 공통적으로 대북 업무 협의, 사업 계획 수립 및 인허가 권한을 갖고 LH공사는 자금 조달과 설계, 분양에, 현대아산은 개발 및 시공에 주력하는 합의서를 체결한 것이다.
당시 현대아산의 대북 투자 규모는 14억 달러 수준(금강산 사업권 대가 4억9000달러, 금강산 관광시설 투자 3억8000달러, 7대 SOC 독점 사업권 대가 5억 달러, 개성공업지구 투자 3300만 달러 등)이었으며 투자 대가로 얻어낸 개발 사업권의 유효 기간은 30~50년이다(개성공업지구 토지 이용 50년, 7대 SOC 개발 사업권 30년). 2000년대 초반에 체결된 합의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유효한 계약 조건이다.
기존 사업과 별개로 새롭게 시작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프로젝트는 서해평화특별협력지대 조성이다. 군사적 긴장이 첨예한 접경지역을 평화 경협지역으로 전환하는 상징적 의미와 함께 수도권 연계 개발의 경제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단절된 교통망 연결을 통해 접경지역의 물리적 기반을 강화하는 효과 역시 기대된다. 개성공업지구 개발 경험과 지리적 이점을 갖춘 우리나라 기업들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에 가장 유리한 지역이다.
서해평화특별협력지대 프로젝트는 해주경제특구 개발이 핵심이다. 해주-개성-인천 연계 개발을 통해 생산과 물류 복합 특구를 구축하는 것이 목적이다. 총 사업비는 4조~5조 원 규모다.
경제특구 개발은 일반적으로 도로망 구축 → 전력시설 구축 → 공업단지 조성 순으로 진행된다. 해주경제특구 개발도 서해 남북평화도로를 구축하는 도로망 사업에서부터 시작될 전망이다.
서해 남북평화도로는 영종도에서 해주지역까지 총 3단계 개발 계획을 거친다. 1단계 영종도-강화도 15km 구간(6394억 원), 2단계 강화도-개풍-개성 45.7km(1조2000억 원), 3단계 개성-해주 52.5km(9432억 원)로, 예상 사업비는 2조8000억 원 수준이다.
프로젝트 총 사업비의 상당 부분이 도로망 구축에 할당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내 증시에서는 도로망 구축과 관련된 기업들의 1차 수혜가 예상된다. 즉 건설, 시멘트, 레미콘, 아스콘, 아스팔트 업체가 수혜를 볼 전망이다. 접근성이 중요한 사업 특성을 고려하면 수도권에 기반을 둔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수혜 가능성이 높다.
10·4 남북정상선언 합의 사항 중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162km·1085억 원)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 규모는 작지만 평양-남포-개성 지역 경제개발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 기업들 처지에서는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작업과 더불어 주변 지역 개발 과정에 기회 요소가 잠재해 있다.
특히 평양-남포는 북한의 핵심 경제지역으로 북한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가장 크다. 그만큼 북한의 개발 의지가 강한 지역이다. 남북경협 사업 우선순위는 우리 측 의지보다 북한 측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북한 측 개발 수요가 강할수록 경협 우선 사업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세부적으로는 평양을 동서남북으로 연결하는 도로망 구축이 우선 사업이 될 전망이다. 평양-남포(서축), 평양-개성(남축), 평양-원산(동축), 평양-안주(북축) 도로시설 현대화 작업이 먼저 진행될 듯하다. 해주경제특구 개발과 마찬가지로 건설과 여타 도로망 구축 관련 업체들이 지리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혜가 예상된다.
인천항 - 남포항 등 항만 교류 부각
북 · 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서해5도 어민들이 평화를 상징하는 한반도기를 어선에 달고 다시마 조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현재 북한에는 총 8개 무역항이 있는데 3개가 서해(남포항 1070만t, 해주항 240만t, 송림항 160만t), 5개가 동해(청진항 800만t, 흥남항 450만t, 원산항 360만t, 나진항 300만t, 선봉항 300만t)에 위치한다. 1960년대 개방된 남포항은 2만t급과 3만t급 등 5개 부두를 보유 중이며 24시간 하역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북한 서해 최대 무역항이다.
남포항 개발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인천항과 연계 사업이 지니는 경제적 효과 때문이다. 남포항-인천항 연계 개발 추진은 2005년 합의한 바 있다(항만·해운 분야 교류 사업). 인천항과 남포항 사이에 정기 컨테이너선 항로가 개설돼 있는데, 각각 서울과 평양의 관문항 기능을 해 교류에 따른 부가가치가 크다.
실제 2000년대 초 인천항은 남포항과 무역으로 대북 교역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했다. 2006년 인천항의 대북 컨테이너 물동량은 7945TEU(TEU·컨테이너 전용선의 적재 용량 단위)로 대북 컨테이너 물동량의 64.4%를 차지했다.
인천-남포 항로 운영이 재개되고 인천-해주 항로가 신설되면 개성과 해주지역이 인천항 배후권으로 형성된다. 북한 서해항만은 수심이 얕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며 겨울철 연간 45일 동안 해빙이 발생한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하고자 남포, 해주, 송림항의 컨테이너 운송 기능이 일부 인천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높다. 남포항-인천항 연계 개발에 따른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분은 연 200만~400만TEU 수준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