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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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닌 분단”

평화체제 구축되면 흡수통일 포기해야…남북 받아들일 수 있을지 관건

  •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8-04-30 17: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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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몰려든 시민들. 서독과 동독은 1972년 통일을 포기하고 별개의 독립국가가 되는 기본조약을 맺은 뒤 18년 후인 1990년 통일됐다. [동아DB]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몰려든 시민들. 서독과 동독은 1972년 통일을 포기하고 별개의 독립국가가 되는 기본조약을 맺은 뒤 18년 후인 1990년 통일됐다. [동아DB]

    한 국가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면 경쟁국도 같이 국방비를 증액해 결국 안보 환경이 개선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안보의 딜레마’라 한다. 4·27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안보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없는 살림을 쥐어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했지만, 남한보다 더 가혹한 상대인 미국과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20배 이상 국력이 큰 대한민국에 맞서 세력 균형을 잡고자 핵을 개발했다. 그 결과 국력이 150배(중국), 250배(미국) 큰 나라의 정상들과 마주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그만큼 부담도 커졌다. 핵을 완성한 후 이를 포기하는 비핵화와 체제 안정을 교환해 생존한다는 것을 ‘전가(傳家)의 유훈’으로 알고 실천해온 김 위원장으로서는, 이 전략이 과연 금과옥조(金科玉條)였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평화체제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을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 [뉴시스]

    1972년 동독은 동방정책을 추진한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의 제의를 받아들여, 평화체제를 만드는 기본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의 주요 내용은 동·서독이 통일을 포기하고 별개의 독립국가가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동·서독은 독립국가로 유엔에 가입했고, 동독은 이듬해 미국과 수교했다. 서독과 소련은 55년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붙잡은 독일군 포로를 돌려주고 서독이 경제지원을 하는 조건으로 수교했다. 동·서독은 상주대표부를 두는 것으로 외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동독과 서독은 각각 바르샤바조약기구(WTO)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 적대정책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 양국 정보기관인 슈타지(국가보안부)와 BND(연방정보부)는 각각 블랙과 그레이 요원을 침투시켜 상대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다. 이 공작전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방송의 교류였다. 서독 방송은 질과 양에서 동독 방송을 압도했기에, 동독은 서독에 휘둘리는 종속변수로 전락해갔다. 그 결과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성직자와 신자들이 일으킨 촛불집회(1989년 9월)가 순식간에 확대돼, 10월 18일 에리히 호네커 정권이 와해되고,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대역사가 이뤄졌다. 그리고 동독에서 서독과 통일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해 1990년 5월 18일부터 통일협상에 들어갔다. 

    당시 동독을 이끈 로타어 데메지에르 총리는 ‘동독이 서독 연방에 들어가는 형태로 통일’을 제의해 양측은 합의안을 만들었다. 이 합의안을 8월 23일 동독 의회가 동의했고, 8월 31일 양측은 통일조약을 맺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 분단을 결정한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는 9월 12일 ‘독일 통일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긴 ‘독일문제에 관한 최종 해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동·서독은 10월 3일 평화통일(서독 입장에서는 흡수통일)을 할 수 있었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종전 선언이 나오고 북·미 정상회담 후 북·미 평화협정과 남북평화조약 체결이 이어진다면, 남북한은 동·서독과 같은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즉 동·서독처럼 서로 흡수통일을 포기하고 상대를 별도의 국가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군사분계선인 휴전선도 국경선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이는 남북한 내부에서 심각한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평화조약은 남북 모두에 ‘毒이 든 성배’

    문재인-트럼프의 한미정상회담, 트럼프-시진핑의 미·중 정상회담, 문재인-시진핑의 한중정상회담에서는 항상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뉴시스]

    문재인-트럼프의 한미정상회담, 트럼프-시진핑의 미·중 정상회담, 문재인-시진핑의 한중정상회담에서는 항상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뉴시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 ‘대한민국은 (중략)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고, 이어 제3조에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영토로 한다(영토조항)’, 제4조에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중략)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통일조항)’고 돼 있으니,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분단을 인정하면 바로 위헌 시비에 휘말린다. 

    절대 다수의 국민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이 문구를 없애는 개헌을 통해 평화조약을 맺으면 된다. 개헌할 때까지 일시적 위헌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이 반발한다면 위헌 시비와 함께 대한민국의 국시(國是)인 통일을 어겼다는 시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우리의 소원은 분단’이었느냐는 이념 논란 등에 휩싸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이 4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개헌 철회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3차 남북정상회담 후 개헌 철회 여부를 확정하겠다고 밝혔으나, 개헌을 포기하면 평화체제를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개헌을 추진하면 통일 포기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이 딜레마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 셈이다. 

    북한도 유사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 북한 헌법도 전문에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나라의 통일을 민족지상의 과업으로 내세우시고’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께서는 공화국을 조국통일의 강유력한 보루로 다지시는 한편 조국통일의 근본원칙과 방도를 제시하시고 조국통일운동을 전민족적인 운동으로 발전시키시여’라며 통일을 선대의 유훈으로 해놓았기 때문이다. 

    또 ‘(김정일 동지께서는) 우리 조국을 불패의 정치사상 강국, 핵보유국, 무적의 군사강국으로 전변시켰으며’라는 내용도 싣고 있다.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라고 해놓은 것이다. 북한에서는 헌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조선노동당 강령과 규약인데, 여기에도 통일을 의미하는 ‘남반부 혁명 완수’와 핵보유국 지위 유지가 담겨 있다. 따라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북한은 헌법과 조선노동당 강령을 모두 바꿔야 한다.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조국통일’도 선대의 유훈이라는 사실이다. 

    평화체제 구축, 즉 영구 분단은 핵보유국 지위 유지와 조국통일이라는 선대의 유훈을 모두 무시하는 것이 된다. 인민군 수뇌부는 남반부 혁명 달성(통일)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이는 김 위원장에게 큰 숙제가 된다. 

    뒤늦게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을 알고 회군해, 평화조약 체결을 무산시킨다면 김 위원장의 고립은 가속화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 국력을 소진하는 코피 작전을 감행할 수도 있다. 

    동·서독도 기본조약 체결 후 이 문제에 부딪혔다. 동독은 호네커 총리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기에 1974년 영토 조항을 없애는 개헌을 함으로써 이 문제를 돌파했다. 동독의 강경파들이 독재자 호네커에 감히 도전하지 못한 것이다. 서독은 달랐다. 브란트에 반대하는 정당이 집권해 있던 바이에른주는 즉각 위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심각한 논쟁에 들어갔다.

    트럼프 “1년 안에 쌍궤병행 이행하라”

    남북 베트남은 파리협정(정전협정)을 통해 열전을 끝냈으나 북부 베트남이 베트콩을 통한 봉기에 성공해 공산주의로 베트남을 통일했다.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호찌민 기념관. [동아DB]

    남북 베트남은 파리협정(정전협정)을 통해 열전을 끝냈으나 북부 베트남이 베트콩을 통한 봉기에 성공해 공산주의로 베트남을 통일했다. 사진은 베트남 하노이에 있는 호찌민 기념관. [동아DB]

    이 갈등은 서독 헌법 제23조가 ‘(이 헌법은) 우선 서독 지역에서 유효하고 다른 지역(동독)에서는 편입을 시킨 후 발효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위헌 문제를 간신히 피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는 계속 용공(容共) 시비에 직면했고, 기본조약 체결 2년 뒤엔 그의 수행비서인 귄터 기욤이 슈타지가 오래전에 침투시킨 블랙 요원인 것이 밝혀져 사임했다. 기욤은 양국 합의에 따라 1981년 동독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주변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을 반기고 있다. 중국은 “북핵 폐기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통한 한반도의 영구적 분단을 동시에 하라”며 이를 ‘쌍궤병행’이라 불러왔다. 6월 24일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을 가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영구 평화가 싹트기를 바란다”고까지 밝혔다. 중국은 주변에 작은 나라가 있는 것이 좋기에, 한반도가 비핵화된 상태에서 영구 분단 상태로 있기를 원한다. 

    쌍궤병행에 반대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북한과 중국이 바라던 대로 일괄 타결로 급작스럽게 돌아섰다. 그런데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쌍궤병행 완료를 1년 내로 하라”는 역(逆)제의를 했다. 이는 초단기로 북핵 폐기를 하라는 얘기인데, 이것이 ‘만만디 전략’을 생각하고 있던 북한과 중국의 허를 찔렀다. 

    초단기로 핵 폐기를 하려면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대규모로 북한에 들어가 집중 사찰을 해야 한다. 이는 북한 전략시설을 미국에 낱낱이 공개하는 것이 된다. 과거 한국이 전략무기 개발을 시도할 때 미국과 IAEA가 한국을 사찰한 것을 보면, 그들은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곳을 급습하는 식으로 사찰했다. 

    시간이 짧은 만큼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강도 높은 사찰을 진행할 것이다. 이것이 전략자산을 감추고 싶어 하는 북한 보수파의 자존심을 건들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이들과 김 위원장 사이에 긴장이 높아질 수 있다. 평화협정 체결을 믿고 문고리를 풀어준 북한이 지나친 사찰에 반발한다면, 한반도는 순식간에 전운에 휩싸인다. 트럼프는 군사옵션을 만들어놓고 사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국은 사찰을 통해 핵을 포함한 북한의 전략시설에 대해 상당한 정보를 얻었으니, 자신감을 갖고 군사옵션을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그로 인해 북한에서 ‘왜 평화협정 체결에 응해 우리 비밀을 공개했느냐’는 책임 추궁이 일어난다면, 북한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일 수 있다. 김 위원장이 이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한다면 북한은 급변을 맞을 수 있다.

    평화체제 구축 후 패망한 월남

    보수파의 반발을 피해가고자 김 위원장이 상황 전환을 시도할 경우 한국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정전협정은 지상 군사분계선과 서해 5도에 대한 유엔군의 점유만 확정 지었다. 해상 군사분계선은 긋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북한 보수파를 달래려고 김 위원장이 평화조약을 맺기 위한 협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부정하고 그들이 만든 서해해상군사분계선을 고집한다면 서해 5도는 생존이 불투명해져 한국에서는 심각한 반발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평화협정 체결은 물 건너간다. 김 위원장은 미국의 사찰이 아니라 한국의 반발을 핑계로 평화협정 체결을 무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무산되는 것인데, 외교 실패는 종종 전쟁으로 치닫는다는 것이 문제다. 이 위기에 대처하고자 김 위원장이 다시 핵무장으로 달려간다면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북·미 정상회담 후 1년 사이에 벌어질 경우 한국 경제는 ‘셀(sell) 코리아’ 상황 등이 일어나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이 주도한 평화체제 구축 노력은 종전 선언을 할 때까지만 축제가 될 개연성이 높다. 문 정부는 종전을 통일로 가는 과정으로 밝혀놓았으니 누구도 종전 선언을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전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은 한반도의 분단을 영구화하고 북핵의 완전한 파기를 대전제로 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미국과 중국,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은 반복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약속해왔고, 북한 역시 평화체제 보장 후 비핵화를 선대의 유훈으로 주장해왔으니 북핵 파기는 피할 수 없는 목표다. 그러나 이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 대한 합의는 쉽게 이룰 수 없기에 평화를 향한 장정은 쉽게 열전(熱戰)으로 변환될 수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베트남 사례다. 

    베트남(남베트남)은 미국을 통해 월맹(북베트남)과 열전을 끝내는 정전협정(파리조약)을 맺었지만, 그 후 친공(親共) 게릴라인 베트콩의 전복 활동이 활성화되는 위기를 허용해 결국 월맹에 합병돼버렸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사태를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가 설정한 1년 안에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하니, 오히려 미국에 종속된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의 열쇠는 결국 미국과 북한이 쥐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한 문재인 정부는 ‘을(乙)’이다. 이러한 을이 영구 분단 전제로 평화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 밝혀지면, 국민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이 모순을 극복하고자 문재인 정부가 ‘서독은 영구 분단을 수용한 후 통일로 갔다’는 설명을 하면, 보수파들은 그 반대 결과를 낳은 베트남 사례를 거론할 것이다. 

    안보 위기를 극복하고자 평화를 위한 장정에 나섰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안보의 딜레마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4·27 판문점 합의는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함께 자신의 능력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는 절체절명의 무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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