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개관한 강원 강릉 씨마크호텔은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설계로 오픈 당시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5성급 인증을 받았다. [박해윤 기자]
하지만 북측 사전점검단은 일정을 마친 뒤 인근 다른 호텔에 짐을 풀어야 했다. 주말이라 호텔 객실 90%가 예약이 완료돼 방이 없었다고. 통상적으로 국외 귀빈이 호텔에 숙박할 경우 경호와 안전상 이유로 한 개 층을 통째로 비운다. 그런데 북측 사전점검단이 예고 없이 급박하게 강릉을 방문했고, 당시 호텔이 거의 만실이라 방을 내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강릉의 여러 호텔 가운데 유독 이곳만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확인하고자 1월 30일 씨마크호텔을 찾아갔다.
“현송월, 감자전과 한우갈비찜 특히 칭찬”
5층 야외 수영장은 동해와 이어진 듯한 인피니티풀이 인상적이다(위). 씨마크호텔 개관 당시 항공 사진. [박해윤 기자, 사진 제공 · 현대중공업]
로비에서 1층으로 내려가자 비즈니스센터와 레스토랑이 있었다. ‘더 레스토랑’이란 이름의 레스토랑은 현송월 단장을 포함한 북측 사전점검단 7명이 식사를 한 곳이었다. 일반 투숙객이 이용하는 홀에는 테이블이 수십여 개 놓여 있었다. 직원에게 “현송월 코스로 나간 음식 가운데 주문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날 나간 코스는 메뉴에 없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북측 사전점검단 오찬 서빙을 총지휘한 김민석 레스토랑 매니저가 나왔다. 그는 “당일 제공된 코스요리는 호텔 측에서 특별히 준비한 메뉴다. 지금 있는 메뉴 가운데 12만 원 상당의 ‘코리안 메뉴’와 거의 비슷하다. 북측 사전점검단이 대부분 음식에 만족했다. 현 단장은 코스 가운데 ‘감자전’과 ‘한우갈비찜’을 칭찬했다. 긴 대화는 나눌 수 없었지만 음식 칭찬은 빠짐없이 해주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홀이 아닌 소규모 룸 ‘PINE’에서 따로 식사했으며, 식사 후 현 단장과 북측 인사들은 룸에서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날 북측 인사들과 대화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느냐고 묻자 김 매니저는 “한 분이 특이하게도 강릉 고도를 물었다. 우리가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를 위해 평창 고도와 올림픽 관련 내용들을 숙지하고 있었는데, 강릉 고도를 물어와 상당히 당황했다. 바로 답하지 못해 집에 가서 따로 찾아봤다. 해발 20m로 나와 있긴 하더라. 경포대가 약간 높아 그런 질문을 한 것인지, 해변의 고도를 왜 물었는지 지금도 의아하다”고 답했다.
5층으로 올라가자 씨마크호텔의 백미인 야외 수영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피니티풀과 자쿠지는 동해와 이어진 듯한 느낌을 줬다. 투숙객 전용 수영장을 보니 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온수풀에서 수영을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외국에 놀러 온 기분”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겨울철이지만 야외 수영장 온도가 35도가량으로 따뜻해 낮에 수영하는 데 무리가 없을 듯했다. 박창주 세일즈 마케팅팀 직원은 “야외 수영장에 대한 손님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예약이 꽉 차는 여름을 피해 겨울에 오는 손님도 적잖다. 1월은 비수기지만 주말이면 만실이고 주중에도 80% 예약이 찬다. 주말에는 가족, 주중에는 젊은 연인이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숙박료는 성수기에는 1박에 70만 원까지 올라가지만 비수기에는 40만~50만 원 선이다.
[뉴시스, 박해윤 기자, 사진제공·현대중공업]
2 1층 ‘더 레스토랑’은 1월 21일 현송월 단장과 북측 인사 7명이 오찬을 하면서 만족감을 드러낸 곳으로
화제를 모았다.
3 철거 전 호텔현대 경포대 모습.
4 씨마크호텔의 전신인 호텔현대 경포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자주 찾은 것으로 유명했다.
씨마크호텔 로비에는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금강산 방문 당시 사진이 걸려 있다.
5 한옥 별실 ‘호안재’는 숙박비가 1박에 1000만 원가량 하지만 호평을 받고 있다.
1971년 지은 낡은 호텔, 2015년 5성급 탈바꿈
씨마크호텔은 2년 전부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새하얀 건물에 통유리창의 객실, 인피니트풀 등을 찍은 사진이 20, 30대 젊은 층 사이에서 환상적으로 보인다며 인기를 끈 것. 씨마크호텔의 전신은 1971년 문을 연 ‘호텔현대 경포대’. 40여 년 동안 550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경포대의 명소였다. 당시에도 아름다운 해변 경관과 어우러진 곳으로 꼽혔다. 특히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아끼던 곳으로도 알려졌다. 강원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가 고향인 정 전 명예회장은 고향과 가까운 경포대를 자주 찾아 향수를 달랬다고 한다. 정 전 명예회장은 호텔현대 경포대에서 매년 여름 신입사원 수련대회를 개최했고, 호텔 인근 해변에서 젊은 직원들과 씨름을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85년부터는 인근 죽도해수욕장에서 열린 해변시인학교에 매년 참가해 시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한 뒤 호텔현대 경포대에서 묵고 갔다고 한다.현대중공업은 낡은 호텔현대 경포대를 철거해 새 호텔을 짓기로 하고, 2013년 7월 강릉시 강문동 신축 대지에서 첫 삽을 떴다. 현대중공업은 최고급 호텔을 지향하며 호텔 설계를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에게 맡겼다. 리처드 마이어는 푸르른 동해와 고즈넉한 호수, 찬란한 동해 일출과 태백산 절경을 양옆으로 조망할 수 있는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호텔을 설계했다. 특히 ‘흰색의 건축가’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내·외관을 대부분 흰색으로 마감했고, 나무 본연의 색감을 군데군데 포인트로 넣어 조화를 이루게 했다.
객실에도 신경 썼다. 많은 투숙객이 일출과 바다를 즐길 수 있도록 객실의 80%를 바다 전망이 가능하도록 설계하고 나머지 20%도 호수와 태백산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외국 정상이나 해외 VIP 등을 위해 한옥 모양의 전통 객실 ‘호안재’도 마련했다. 최대 숙박 인원은 8명, 1일 최대 숙박비가 1000만 원인데도 호평받는 곳이라고 한다. 경포해변과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원형의 공연장 ‘아레나홀’, 입구에는 신축 대지에서 발굴된 신라시대 문화재를 전시하는 전시관을 마련했다.
평창동계올림픽 특수 누려
2015년 6월 새로운 이름과 모습으로 개관한 씨마크호텔은 당시에도 화제였다. 그해 새로 마련된 등급평가제에서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5성급 인증을 받았기 때문. 당시 경포대 인근 상인들은 세련된 건축물이 들어서면서 경포대가 한층 더 아름다워졌다며 호텔 개관을 환영했다고 한다. 실제로 경포대 해변의 한 식당 직원은 “지금은 씨마크호텔 하면 강릉 사람은 다 안다”고 말했다.씨마크호텔은 평창동계올림픽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강릉아이스아레나와 하키센터 등이 위치한 강릉올림픽파크가 차로 5분 거리라 올림픽 관계자들이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 올림픽 주관 방송사 NBC는 씨마크호텔을 숙소로 택했다. NBC 측은 이번 올림픽 취재와 제작에 2400명을 투입할 예정이다. 직원들의 숙소 및 취재 장소 답사를 위해 평창과 강릉 곳곳에 20여 차례 시찰단을 보냈다. 이후 평창과 강릉의 주요 숙소 7곳을 선점했고, 그중 총 150실 규모의 씨마크호텔을 대부분 사용하기로 계약했다. 호텔 측 설명에 따르면 올림픽 기간 NBC가 사용할 객실은 연 2100실이라고 한다. NBC는 호텔 측에 방송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별도의 위성시설을 설치하고 온돌방에는 침대를 놓아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취재 당일 씨마크호텔에는 선발대로 먼저 온 NBC 직원들이 머물고 있었다. 박창주 직원은 “1월 20일 도착한 선발대가 호텔 일부를 쓰고 있다. 개막식 이틀 전부터는 NBC 측 VIP를 비롯한 직원 대부분이 전체의 60%를 사용할 예정이다. 나머지는 VISA 카드사 직원들이 계약한 것으로 안다. 일반 객실은 20%가량 있는데 이마저도 모두 예약이 마감됐다. 따라서 2월 한 달은 신규 손님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민석 매니저에게 NBC 직원들의 근황을 묻자 “아직까지 NBC 직원들을 식당에서 자주 보지는 못했다. 현지시각에 맞춰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해서 그런지, 식당에 내려오기보다 룸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 앞으로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외국 손님이 더 많이 방문할 것으로 보여 메뉴도 그분들 입맛에 맞게 수정했다”고 말했다.
아직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씨마크호텔에는 올림픽 분위기가 감돌았다. 취재하던 두 시간 남짓 동안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조직위) 관계자로 보이는 이들이 계속해서 드나들었다. 호텔 홍보를 담당하는 마케팅 팀장은 1시간 단위로 미팅이 있어 명함만 주고받고 제대로 대화도 나누지 못할 만큼 분주했다. 호텔 측은 올림픽 특수를 누리며 각계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호평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했다. 김정수 마케팅 팀장은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우리 호텔이 강릉의 랜드마크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