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이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한 이후 1월 8일 현재까지 426만 명을 넘어서면서 1000만 관객 돌파가 점쳐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영화를 관람한 후 출연 배우들과 감독을 격려하고 흥행 성공까지 기원했다.
1987년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잔혹성을 고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연세대 학생이던 이한열 군이 시위 도중 머리에 직격 최루탄을 맞아 결국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이 기폭제가 돼 제5공화국 정권이 무너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단면이기도 하다.
필자도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 도중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꽤 많았다. 당시 피 끓는 젊은 세대였던 50, 60대 중년층은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열정에 감탄했고, 힘의 논리에 타협하지 않는 한 검사와 부검의의 정의로움에 안도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교도소 간부에게서 인간다움을 확인했고, 무엇보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두 남녀 대학생의 순수함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틋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 없이 계속 고문하는 경찰관들의 냉혹함에 기가 막혔고, 정권 유지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 고위직 인사와 정권 실세의 언행에 분노가 치밀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치안감의 폭력성과 맹목적인 애국심에는 분노를 넘어 슬픔이 느껴졌다. 관객 역시 당시 트라우마 상황을 지켜보면서 공포와 무력감, 그러한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슬픔과 혐오, 민주화 세력이 지배 권력층으로 오르게 된 기쁨과 안도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돼 구속되고 문 대통령이 당선된 후인 지난해 8월 2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1218만6327명을 기록하며 흥행 역대 9위에 오른 작품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1426만2498명으로 역대 2위에 올랐다. ‘국제시장’은 6·25전쟁 이후 파독(派獨) 광부·간호사 이야기와 베트남전쟁 등을 상기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그린 영화였다.
그리고 ‘연평해전’은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 북한 도발에 맞서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다 순직한 해군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600만 명이 관람했다. 2016년 7월 개봉한 ‘인천상륙작전’도 705만 명이 관람해 흥행을 이어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는 산업일꾼의 삶을 상기하고 안보를 강조하는 내용이 흥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산업화와 보수세력이 집권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시장’을 보면서 감동하던 많은 국민이 지금 ‘1987’을 보면서 감동한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이런 현상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보편적으로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양면성은 본래 한 사람이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물론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착하다, 선하다, 나쁘다, 악하다 등의 표현을 쓴다. 하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차원에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100% 선행만 하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비록 주변에서 그렇게 평가할지언정 정작 본인은 ‘나도 나쁘게 행동한 적이 있어요’라고 양심고백을 할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가치관이나 사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수 또는 진보 가치관, 좌파 또는 우파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생각, 감정,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때로는 반대쪽의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극우’ 또는 ‘극좌’로 분류되는 사람조차 양면성을 지닌다. 양면성에서 어느 정도 비중인가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100% 왼쪽(0% 오른쪽) 또는 100% 오른쪽(0% 왼쪽)인 사람은 극소수이거나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이는 자연의 섭리요, 이치다. 100% 우뇌만 사용하거나 100% 오른쪽 신체만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따라서 우리는 평소의 생각 및 관점과 다른 시각의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오로지 일만 해왔고, 인간적 여유와 따뜻함이 전혀 없는 ‘꼰대’가 싫다’는 사람들도 노인의 일대기를 보고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셋째, 슬픔에 취약하고 한(恨)이 깃든 정서 때문이다. 중국의 침략과 지배를 겪고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오면서 일반 백성은 대물림되는 가난으로 춘궁기(보릿고개)를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왔다. 60여 년 전에는 같은 민족끼리 좌우로 대립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고, 심지어 서로 총구를 겨누면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도 겪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도 마찬가지다. 결국 외국의 수탈, 지배계급으로부터 핍박, 만성적 가난, 그리고 골육상쟁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한이 깃들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역사를 꺼낸 영화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슬픔과 한을 되살린다.
넷째, 궁극적 통합을 위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은 치유 능력이 있다. 슬픈 감정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된다. 충분히 슬퍼한 다음에도 이어지는 눈물은 희망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과 잘 어울려 화합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품게 한다. 분열하는 것 같다가도 마침내 통합을 이루어내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기도 하다.
‘1987’을 보면서 마음껏 울자. ‘국제시장’을 다시 보더라도 또 한 번 울자. 그렇게 울고 난 뒤 미래를 향한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1987년 발생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군부독재 정권의 인권 탄압과 잔혹성을 고발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연세대 학생이던 이한열 군이 시위 도중 머리에 직격 최루탄을 맞아 결국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두 사건이 기폭제가 돼 제5공화국 정권이 무너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단면이기도 하다.
필자도 이 영화를 봤는데, 상영 도중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꽤 많았다. 당시 피 끓는 젊은 세대였던 50, 60대 중년층은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동아일보’ 기자들의 열정에 감탄했고, 힘의 논리에 타협하지 않는 한 검사와 부검의의 정의로움에 안도감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진실을 밝히는 쪽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교도소 간부에게서 인간다움을 확인했고, 무엇보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두 남녀 대학생의 순수함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틋함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사람을 죽이고도 죄책감 없이 계속 고문하는 경찰관들의 냉혹함에 기가 막혔고, 정권 유지를 위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 고위직 인사와 정권 실세의 언행에 분노가 치밀었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치안감의 폭력성과 맹목적인 애국심에는 분노를 넘어 슬픔이 느껴졌다. 관객 역시 당시 트라우마 상황을 지켜보면서 공포와 무력감, 그러한 시대를 살아갈 수밖에 없던 슬픔과 혐오, 민주화 세력이 지배 권력층으로 오르게 된 기쁨과 안도감 등 복합적인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1987’ ‘택시운전사’ vs ‘국제시장 ’ ‘인천상륙작전 ’
영화 ‘국제시장’(위)과 ‘1987 ’. [네이버 영화]
박근혜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보면영화 ‘국제시장’은 2014년 12월 17일 개봉해 누적 관객 수 1426만2498명으로 역대 2위에 올랐다. ‘국제시장’은 6·25전쟁 이후 파독(派獨) 광부·간호사 이야기와 베트남전쟁 등을 상기하며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그린 영화였다.
그리고 ‘연평해전’은 한일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2002년 6월 북한 도발에 맞서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다 순직한 해군 영웅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600만 명이 관람했다. 2016년 7월 개봉한 ‘인천상륙작전’도 705만 명이 관람해 흥행을 이어갔다. 박근혜 정부 시절 영화는 산업일꾼의 삶을 상기하고 안보를 강조하는 내용이 흥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른바 산업화와 보수세력이 집권한 시대적 상황과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국제시장’을 보면서 감동하던 많은 국민이 지금 ‘1987’을 보면서 감동한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이런 현상을 분석해보면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인간은 보편적으로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양면성은 본래 한 사람이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됐다. 물론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착하다, 선하다, 나쁘다, 악하다 등의 표현을 쓴다. 하지만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차원에서 전혀 ‘죄’를 짓지 않고 100% 선행만 하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비록 주변에서 그렇게 평가할지언정 정작 본인은 ‘나도 나쁘게 행동한 적이 있어요’라고 양심고백을 할 것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고 천사도 아니다. 가치관이나 사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수 또는 진보 가치관, 좌파 또는 우파 사상을 지닌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들의 생각, 감정, 행동을 하나하나 분석해보면 때로는 반대쪽의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극우’ 또는 ‘극좌’로 분류되는 사람조차 양면성을 지닌다. 양면성에서 어느 정도 비중인가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100% 왼쪽(0% 오른쪽) 또는 100% 오른쪽(0% 왼쪽)인 사람은 극소수이거나 이론적으로만 존재한다. 이는 자연의 섭리요, 이치다. 100% 우뇌만 사용하거나 100% 오른쪽 신체만 사용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따라서 우리는 평소의 생각 및 관점과 다른 시각의 영화를 보면서도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오로지 일만 해왔고, 인간적 여유와 따뜻함이 전혀 없는 ‘꼰대’가 싫다’는 사람들도 노인의 일대기를 보고 들으면서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치유와 통합의 힘
둘째, 우리나라 고유의 동질성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한민족’을 유지해왔다. 물론 남방계 및 북방계 등으로 나뉘고, 이민족의 유입도 있었고, 현재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체로 비슷한 외모와 언어, 문화적 습성을 공유한다. 민족의 개념은 가족이라는 개념의 확장선상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 속 주인공이 모두 우리의 가족임을 잘 안다. 영화를 보면서 관객은 나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고모 등 가족을 떠올린다. 외국 영화를 보면서는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다.셋째, 슬픔에 취약하고 한(恨)이 깃든 정서 때문이다. 중국의 침략과 지배를 겪고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오면서 일반 백성은 대물림되는 가난으로 춘궁기(보릿고개)를 삶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왔다. 60여 년 전에는 같은 민족끼리 좌우로 대립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고, 심지어 서로 총구를 겨누면서 죽고 죽이는 끔찍한 일도 겪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도 마찬가지다. 결국 외국의 수탈, 지배계급으로부터 핍박, 만성적 가난, 그리고 골육상쟁이 많은 사람의 가슴에 한이 깃들게 한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역사를 꺼낸 영화는 가슴에 묻어두었던 슬픔과 한을 되살린다.
넷째, 궁극적 통합을 위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은 치유 능력이 있다. 슬픈 감정은 눈물을 흘림으로써 어느 정도 해소된다. 충분히 슬퍼한 다음에도 이어지는 눈물은 희망의 의미를 갖는다.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과 잘 어울려 화합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품게 한다. 분열하는 것 같다가도 마침내 통합을 이루어내는 우리 민족의 저력이기도 하다.
‘1987’을 보면서 마음껏 울자. ‘국제시장’을 다시 보더라도 또 한 번 울자. 그렇게 울고 난 뒤 미래를 향한 힘찬 날갯짓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