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윤 기자]
11월 14일 오후 구미시청 북카페에서 만난 남유진 구미시장(사진)은 “시간이 흐른다고 모두가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며 “그 시간 속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뤄냈는지가 바로 역사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역사에서 살아 있는 영웅”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평가했다. 그러나 “오늘 탄생 100돌을 맞은 만큼 그를 기리되, 평가는 훗날 역사가에게 맡기고 산업화·민주화 세력 간 대화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와 일문일답.
▼오늘 행사를 보니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을 많이 준비한 거 같다.
“탄생 100돌 기념사업을 위해 각계각층 사회단체 대표로 구성된 ‘구미시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받아 기념사업을 선정했다. 5월엔 기념메달과 우표첩, 9월엔 사진·휘호 전시회를 열었고 11월 기념 주간(11월 11~14일)에는 연극 공연, 명사 초청 토론회, 뮤지컬 공연, 산업화 주역 인사 초청 강연 등을 했다.”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제작은 무산됐다. 남 시장은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는데.
“발행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기념우표로 선정됐는데 일부 반대여론이 있다는 이유로 정당한 근거 없이 결정을 뒤엎었다. 마땅히 대통령 고향도시의 시장으로서 나서야 할 일이었다.”
“박정희를 기념하는 건 의무”
남유진 구미시장이 7월 12일 정부세종청사 우정사업본부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뉴시스]
“박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5000년 동안 이어진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탁월한 리더십은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전 분야에 발전의 초석을 놓은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 당연한 의무다. 다른 어느 나라를 봐도 전직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인 기념사업이다.”
▼쿠데타에 성공한 지도자는 많지만 쿠데타 성공 후 경제발전을 이룬 유일한 지도자라는 평가도 있다.
“독일은 국정교과서를 통해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칭찬하고 있고, 미국 ‘뉴욕타임스’는 ‘박정희는 신화를 만든 한국 경제의 건축가였다’고 언급했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잡긴 했지만 당시 한국은 인재도, 기술도, 정보도, 자본도 하나 없는 척박한 땅에 불과했다.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을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만나주지도 않았고, 외교적으로 한국을 고립시키려 했다. 그때 박 대통령은 서독(현 독일)으로 날아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임금을 담보로 1억5000만 마르크를 빌려왔다. 나라를 세우려고 제 손으로 ‘인질’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는데, 박 대통령도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나. 그 돈으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산업화에 불을 놓았다. 일본에서 돈을 구해와 포항제철도 짓고.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2006년 당선 이후 내리 3선(選)을 했다. 박 전 대통령 고향의 시장이라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하나.
“당연하다. 나도 시정을 운영하다 보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자주 되묻곤 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좇지 않고 후손에게 이득이 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그게 쉽지가 않더라.”
“시간 흐른다고 역사 되겠나”
경북 구미시는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식’에 맞춰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기공식을 가졌다.[박해윤 기자]
“혼자 생각하기도 하고, 박 전 대통령 관련 책을 볼 때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이 1962년에 쓴 책 ‘우리 민족의 나아갈 길’을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우리 겨레에게 진정 갱생의 길은 없는 것일까. 비틀린 민족성을 바로잡고 건전한 복지 민주국가를 세우는 길은 없는 것일까. 거짓말과 몸에 밴 무사안일주의를 청산하여 부지런한 생활인으로 탈바꿈하고, 그 인간 혁명을 기반으로 사회개혁을 통해 굶주리는 사람이 없는 나라,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길은 어디 없는가’라고. 박 전 대통령은 공업과 농업, 내수와 수출 주도, 경공업과 중화학공업을 놓고 무엇부터 발전시켜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린 판단은 모두 옳았다. 덕분에 우리는 조선, 자동차, 전자, 철강, 석유화학, 원자력 등 환상적인 산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른다고 역사가 되지는 않는다. 그 시간 속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뤄냈는가가 역사를 만든다. 박 전 대통령은 그런 역사에서 살아 있는 영웅이다.”
▼오늘 축사에선 그런 ‘영웅’을 ‘이제 놓아드리자’고 했다.
“그렇다. 놓아드리되, 잊지는 말자고 했다. 그분에 대한 평가는 훗날 역사가에게 맡기고 지금은 산업화와 민주화 세력 간 대화해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자고 제안한 거다.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윌리엄 오버홀트 미국 하버드대 박사는 ‘보수 진영은 박정희 업적만큼 김대중 업적이 크다는 걸 인정하고, 진보 진영 또한 김대중의 민주화가 박정희의 성과로부터 덕을 봤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위대한 대한민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외국인도 아는 너무 당연한 걸 우리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다. 오늘 행사에서는 역사자료관 건립 반대시위가 있었고, 10월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37주기 추도식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묘역 한쪽으로 치워졌는데.
“오늘은 문 대통령이 보낸 화환이 처음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웃음) 나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을 담당한 적이 있다. 2000년 8월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이 확정됐을 때 김대중 정부에서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을 하겠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정사업본부의 정당한 절차에 따라 발행이 결정된 ‘박정희 대통령 100주년 기념우표’도 정당한 근거 없이 무산됐다. 이건 아니다. 정치 선배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는 탁자에 놓인 식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더니 재킷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이면지에 뭔가를 썼다. 연도와 주제어를 써가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구미는 굉장히 성숙하고 열린 곳이고, 우리를 극우보수로 몰아붙이는 건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오늘 행사 후 단체 식사를 한 장소도 호남향우회 분이 하는 곳이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이 찾아와 박정희 대통령 역사자료관 건립 반대시위를 했는데, 역사자료관 건립은 2014년 전남·경북 국회의원들이 동서화합 방편으로 결정한 사안이다. 당시 전남에는 하의도와 연결하는 대교를 만들고, 경북에는 구미에 박정희 대통령 유품전시관을 짓는 것으로 결정했다. 오래전 합의된 일을 이제 와 문제 삼는 건 말이 안 된다.”
▼최근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탈당시키면서 친박(친박근혜) 단체의 반감을 샀다. 보수 내부의 분열은 어떻게 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양한 분파와 논쟁이 있어왔지만 결국 화쟁(和諍)을 통해 화합의 길로 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언뜻 2년 전 그의 기사가 떠올랐다. 남 시장은 2013년 11월 14일 박정희 대통령 탄생 기념행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란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고 해 한동안 세간의 입길에 오르내렸다.
▼당시 박정희 우상화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박 전 대통령의 위대한 성과를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 ‘우상화’ 내지 ‘신격화’한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1960년대 인력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앞세우기 위한 표현이었다. 그래서 나라 곳간을 채웠는데 오히려 지금은 분배만 강조하는 거 같아 걱정이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한 지방자치단체는 청년수당을 주고 무상교복을 지원한다는데, 국민이 낸 세금으로 부잣집 아이 교복까지 책임져야 하나. ‘퍼주기’ 시정(市政)은 누군들 못 하겠나. 정당한 노동과 노력에 대한 대가라면 모를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돈은 의미가 없다. 청년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비전을 제시하는 게 더 중요하다.”
끊어진 ‘경제고리’ 이어 붙이기
“나도 시정을 운영하다 보면 큰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할까’라고 자주 되묻곤 한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좇지 않고 후손에게 이득이 되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박해윤 기자]
“그렇다. 끊임없이 국가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바꿔야 하는데 그런 게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에 반도체, 자동차 말고 뭐가 있나. 그나마 원자력 기술이 최고 수준이었는데 현 정부 들어 원자력 폐기 쪽으로 방향을 틀어 걱정이 크다. 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에 입주한 외국 기업은 한국의 저렴한 전기요금이 큰 유인책이었고, 전자산업은 마음만 먹으면 생산라인 전체를 한 번에 철수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전기 부족 상황이 왔을 때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한 번 끊어진 경제고리를 이어 붙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주식회사 최고경영자(CEO)는 당장 1년 치 배당에 신경 쓰지만,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라면 10년, 100년을 내다봐야 한다. 이제라도 ‘박정희 사다리’를 새로 만들어야지….”
▼‘박정희 사다리’라면.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에게 끊임없이 무역자유화를 요구하는데, 언뜻 보기에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협상 같지만 본질은 개발도상국의 도약을 위해 필요한 사다리를 걷어차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글로벌 경제의 불공정성을 단적으로 지적한 말이다. 박 전 대통령은 그 옛날에 ‘지붕(선진국)’으로 오르는 사다리를 직접 만들어 10대 경제대국으로 변모시켰다.”
▼박 전 대통령이 조성한 구미국가산업단지는 어떤가.
“구미의 미래를 결정지을 대형 프로젝트들이 다 잘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구미 국가5단지와 확장 단지 조성을 통해 우리나라 내륙 최대 공단(37.7k㎡)을 만들었고, 12년 동안 국내외에서 15조 원을 유치했다. 현재 3200여 개 기업과 11만 명 근로자가 매일 대한민국의 먹을거리를 만들어낸다. 1970~80년대는 섬유·전자, 지금은 국방·탄소섬유·자동차 부품·전자의료기기 등 시대에 따라 업종을 바꿔가며 산업화를 이끌었다. 산업 다각화라는 게 말이 쉽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미국가산업단지의 경험을 살려 한강의 기적을 넘어 낙동강의 기적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