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자가 목의 경동맥 부위를 보여주는 건 호감의 표시랍니다.”
“꿀팁이넹.”
“오늘 점호는 총기점호이니 21시에 다들 좀 빼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당직사관 보급관님입니다. 이상.”
“아흐, 꿀잼이었는데.”
“아 XX, 갑자기 뭔 총기점호야”
최근 한 페이스북에 올라와 화제를 모은 카툰의 한 장면이다. 내무반에서 종합편성채널(종편) 채널A ‘하트시그널’을 재미있게 보던 군인들이 갑작스러운 총기점호에 TV 시청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해당 페이지에는 300개 이상 ‘좋아요’가 달렸다.
일반인의 ‘연애’를 소재로 한 관찰예능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이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6월 2일 첫 방송된 ‘하트시그널’은 청춘 남녀 8명이 ‘시그널 하우스’에서 한 달 동안 동거하며 벌어진 애정 전선을 꾸밈없이 보여줬다. 이들의 러브라인을 추론하는 ‘예측단’ 6인방(가수 윤종신, 이상민, 그룹 슈퍼주니어 신동, 작사가 김이나, 모델 심소영, 정신과 전문의 양재웅)의 활약도 재미를 더했다.
종편 JTBC 대표 예능프로그램 ‘효리네 민박’과 비교하면 시청률은 낮지만 화제성 측면에서는 ‘하트시그널’이 훨씬 높았다. 팬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하트시그널’과 ‘효리네 민박’ 페이스북 페이지를 비교해보면 ‘하트시그널’ 팔로어 수가 ‘효리네 민박’보다 배 이상 차이가 난다. ‘하트시그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어 수는 18만 명을 넘어섰다.
“제대하면 꼭 여친 만들래요”
‘하트시그널’ 출연자들에게는 ‘매주 한 사람과 데이트할 수 있다’ ‘합숙 기간 이성에게 직접적인 고백은 할 수 없다’ ‘매일 밤 단 한 명의 이성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단 발신자 표시 제한)’ ‘입주 기간 개인 연락처를 공유할 수 없다’ 등의 조건과 미션이 따라붙었다. 방송만 봐서는 누가 누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는지 알 수 없기에 시청자는 8월 25일 마지막 방송 전까지 출연자가 각자 누구와 커플을 이뤘을지 궁금해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당초 12회로 예정됐던 ‘하트시그널’은 시청자의 성원에 힘입어 9월 1일 1회 연장 방송될 예정이다. 이날 방송에서는 시그널 하우스가 아닌 스튜디오에 출연한 출연자들을 만나볼 수 있다.‘하트시그널’은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카페를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군인 남자친구가 강력 추천한 프로그램이라 봤더니 꿀잼’ ‘군인인데 휴가 나온 날 다 몰아서 봤다’ ‘생활관에 다 모여서 본다더라’ 등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큰아들이 군복무 중인 직장인 최모(50) 씨는 “얼마 전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요즘 ‘군발이’는 다른 건 못 봐도 ‘하트시그널’은 꼭 챙겨본다고 하더라. 아들이 생활하는 곳은 동기들끼리 내무반을 쓰는데, ‘하트시그널’을 보면서 가상으로 커플 매칭도 하는 등 즐겁게 시청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자 출연자 가운데 군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사람은 뮤지컬배우 강성욱(33).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군인에게서 받은 여러 개의 메시지를 공개해 그 인기를 짐작게 했다. 메시지는 ‘군인인데 매주 보면서 설레고 있어요’ ‘2소대는 형님의 행복을 응원합니다’ ‘하트시그널 보면서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등 격려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처럼 군인들이 ‘하트시그널’에 열광하는 첫 번째 원인은 ‘대리 설렘’이다. 물리적으로 연애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보니 ‘데이트’ ‘썸’ 같은 단어만으로도 마음이 설렐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전역한 20대 박모 씨는 ‘하트시그널’이 왜 인기를 끄느냐는 질문에 “군인 신분상 연애가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TV 프로그램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아직 군복무 중인 친구 한 명은 ‘하트시그널’ 덕에 한동안 죽어 있던 연애세포가 되살아나고 있다면서 제대하면 꼭 연애부터 하겠다고 다짐하더라”며 웃었다.
출연자의 출중한 외모와 남다른 스펙도 군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트시그널’ 첫 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다 봤다는 직장인 김모 씨는 “군인이 대부분 20대 초반이다 보니 향후 진로나 직업에 대해 고민이 많을 텐데, ‘하트시그널’ 남성 출연자들은 뮤지컬배우, 카레이서, 변호사, 셰프 등 요즘 젊은 친구들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고 있어 그들에 대한 동경심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다”고 평했다.
방송에서 ‘예측단’으로 활약한 양재웅 정신과 전문의(W진병원 원장)는 ‘하트시그널’의 ‘연애 학습 효과’를 또 다른 인기 요소로 꼽았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을 20대 초반 군인들에게 ‘하트시그널’이 일종의 ‘연애 참고서’로 사용됐다는 것. 양 원장은 “TV를 보면서 여자는 남자의 어떤 말에 감동하는지,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을 것 같다. 남자 출연자 중에는 서주원 씨가 유독 눈길을 끌었는데, 배윤경 씨와 데이트하던 중 차 안에서 ‘서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해주는 게 좋은 거 같아’라고 말해 스튜디오에서 촬영 비디오를 보던 예측단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군대 내무반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서주원 씨의 멘트를 수첩에 적어놓은 군인이 꽤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일반인 연애라 더 설레”
‘하트시그널’ 공식 페이스북에도 출연자들의 커플 매칭을 응원하는 글이 많이 올라와 있다. ‘하트시그널’ 제작진이 올린 ‘최종 커플 예측 이벤트’ 페이지에는 2800개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댓글에서 한 누리꾼은 ‘서주원♥배윤경 커플, 서로 질투하는 게 너무 귀여워요. 서로 좋아하는 게 제일 잘 느껴지는 것 같아서 응원합니다. 제가 더 설레고 보면서 웃음이 계속 나요’라고 썼고, 또 다른 누리꾼은 ‘강성욱♥신아라 커플은 같이 자전거 타는 거 보는 순간 너무 잘 어울렸어요. 강성욱, 술 마시면서 얼굴 빨개지는 모습이나 여자한테 표현하는 거나 진심이 느껴져서 좋아요. 신아라는 반전 매력’이라며 흥미진진한 결론을 예측했다.
‘하트시그널’은 무엇보다 출연자 대부분이 일반인이라는 점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연예인끼리 짝이 되는 가상연애에 비해 일반인의 출연은 현실성이 높아 시청자의 감정이입이 쉽고 공감도 잘 되기 때문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요즘은 시청자가 연예인의 리얼리티를 사실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아무리 리얼리티라 해도 현실 속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순간의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떨리거나 설레는 감정이 들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하트시그널’은 시청자도 덩달아 설레게 했고 이것이 가장 큰 강점으로 다가온 듯하다”고 말했다.
예측단 ‘추리’가 극의 재미 배가
또한 다양한 미디어 채널의 등장으로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가 모호해진 점도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기를 끌어올리는 요소로 작용한다. 하 문화평론가는 “유튜브 등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를 즐겨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일반인의 활약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가 하루아침에 스타급 팬덤을 형성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말했다.1990년대 후반 MBC ‘사랑의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강호동의 천생연분’ ‘자유선언 토요대작전-산장미팅 장미의 전쟁’ 등 연예인이 출연하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다. 5월 폐지된 ‘우리 결혼했어요’도 연예인 부부라는 설정으로 9년 동안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반인의 연애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2011년부터 3년 동안 방송돼 큰 화제를 모았던 SBS ‘짝’을 비롯해 ‘하트시그널’, 8월 초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채널 Mnet ‘내 사람친구의 연애’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늘 ‘출연자 검증’으로 자주 구설에 오른다. ‘하트시그널’도 6회 방송이 전파를 탄 뒤 ‘대본 논란’을 겪어야 했다. 당시 방송에서 배윤경과 장천이 퇴근길에 우연히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제작진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인 것.
그에 앞서 페이스북 ‘한양대학교 대나무숲’에 해당 프로그램 출연을 제안받았다는 이가 ‘출연자 가운데 이미 여자친구, 남자친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연예인이 되려고 출연한 것이다. 제작진이 리얼 같은 대본으로 상황극을 만든다’고 주장해 진정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이에 대해 ‘하트시그널’ 제작진은 “대본은 절대 있을 수 없고, 이성 친구 문제도 방송 촬영을 마친 뒤부터 사귀기 시작한 걸로 안다”고 밝혔다.
또한 ‘하트시그널’은 예측단을 통해 출연자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는 평을 얻는다. 스스로 ‘연애 경험이 풍부하다’고 밝힌 예측단 6명이 출연자들의 연애 패턴을 분석하고 때로는 이들을 대변함으로써 시청자의공감지수도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 이에 대해 양재웅 전문의는 “예측단은 일반인의 모습을 한 단계 걸러주는 ‘여과 장치’로 활용됐다”고 말했다.
‘추리’라는 신선한 요소도 방송의 재미를 살렸다. 예측단은 첫 방송에서부터 출연자들이 누구에게 첫 끌림을 느끼는지 추리하고자 각 출연자의 표정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청자를 화면 속으로 끌어들였다. 남녀의 어떤 행동이 이성에게 매력적인지를 설명하거나 출연자의 단서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모습이 웃음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기에 예측단의 활약이야말로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젊은 남녀의 애정전선을 ‘서스펜스’ 장르로 승화한 ‘하트시그널’ 종영과 동시에 벌써부터 2탄 제작을 요구하는 이가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