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7일 현대자동차는 내년 초 출시 예정인 ‘차세대 수소연료전기자동차’(FCEV·수소전기차)를 세계 최초로 공개했다. 미래 자동차가 전기차냐, 수소전기차냐를 두고 갑론을박이 뜨거운 상황에서 현대차가 수소전기차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원천기술을 세계 완성차 업체 가운데 가장 먼저 확보했음에도 그동안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이번에는 내년 2월 강원도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운영 차량을 목표로 막바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한 차세대 수소전기차는 1세대 ‘투싼ix’보다 성능 면에서 월등히 우수하다. 연료전지 성능과 수소이용률을 높였고 부품 성능도 향상시켜 차량 전체의 시스템 효율을 기존 55.3%에서 약 9% 상승한 60%대로 끌어올렸다. 지금까지 쌓아온 친환경차 전기동력시스템과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기술력을 집대성한 결과인 셈. 현대차 측은 “수소전기차의 핵심 기술인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의 효율, 성능, 내구성, 에너지 저장 등 4가지 부문에서 모두 기존 투싼ix에 비해 획기적인 개선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수소전기차가 진정한 친환경 자동차라는 점에는 이견을 내기 힘들다. 수소전기차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차의 엔진이 없고, 전기차와 달리 외부의 전기 공급 없이 연료전지스택에서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생산된 전기로 모터를 움직여 주행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물질과 온실가스가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에 의해 ‘물’만 배출될 뿐이다.
수소전기차의 공기 청정 능력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다. 현대차는 6월 프랑스 에너지회사 에어리퀴드의 연구소에서 투싼ix를 이용해 의미 있는 실험을 시연했다. 수소전기차의 미세먼지 저감 효과를 시각적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자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가득 들어 있는 애드벌룬과 속이 비어 있는 애드벌룬을 차량 앞뒤에 장착한 것. 차 시동을 걸자 차량 앞쪽 공기 흡입구와 연결된 애드벌룬은 부피가 작아지고 배기구와 연결된 애드벌룬은 점점 팽창했다. 차량 뒤 애드벌룬은 미세먼지가 완벽히 걸러져 투명했다.
미세먼지 저감 효과도 있어
현대차 관계자는 “만약 공기 필터가 걸러내지 못하는 미세먼지가 있다면 가습 과정에서 추가로 씻겨 내려가고, 스택 내부 미세기공 구조의 탄소섬유 종이로 된 기체확산층(공기를 연료전지 셀에 골고루 확산하는 장치)을 통과하면서 또 한 번 걸러진다. 2중, 3중의 공기 정화 기능을 갖춘 셈”이라고 자신했다.
수소전기차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먼저 수소탱크에 보관된 수소는 수소공급시스템에 의해 고압 상태에서 저압으로 바뀌어 배관을 타고 연료전지스택으로 이동하고, 차량 전방에서 빨아들인 공기는 고성능 공기필터를 통과해 순수한 산소로 변신한 뒤 연료전지스택에서 수소와 결합해 폭발을 일으킨다. 이때 발생한 전기에너지는 전용 배관을 따라 배터리시스템으로 이동해 자동차를 달리게 한다. 1회 충전 시 주행 가능 거리는 국내 기준 580km. 경우에 따라서는 이보다 더 길어질 수 있다.
또한 연료전지시스템 압력 가변 제어 기술을 적용해 차량의 최대출력을 기존 대비 20% 이상 향상시켰다. 동급 내연기관차와 동등한 163마력(PS)을 확보했다는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현대차는 수소전기차 연료전지시스템의 핵심 기술인 막전극접합체(MEA)와 금속분리판 기술을 독자 개발해 가격 경쟁력도 확보했다. 수소전기차에 최적화된 핵심 부품 생산 체계를 구축한 덕이다.
한편 수소전기차는 전기화학적 반응을 하는 연료전지의 특성상 일정 온도 이하에서는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그동안 수소전기차가 상용화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현대차가 이번에 개발한 수소전기차는 영하 30도에서도 시동이 걸릴 수 있도록 ‘냉시동성’을 크게 개선했다. 또한 1세대 수소전기차 연료전지스택의 수명은 4~5년밖에 되지 않는 반면, 차세대 수소전기차의 스택은 10년 이상 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수소탱크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저장 밀도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첫 양산될 예정인 수소전기차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위치한 ‘수소전기하우스’를 방문해보길 권한다. 현대차는 서울시와 함께 수소전기차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해 집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100% 충당하는 수소전기하우스를 만들었다(11월 17일까지 무료로 운영). 실제로 수소를 연료전지에 주입해 생산한 전기에너지는 대규모 발전, 가정 등 다양한 곳에서 이용 가능하다. 특히 가정에서는 주택의 발전, 냉난방 등 전력 공급에 활용하고, 소비되고 남은 전기는 배터리저장장치인 ESS(Energy Storage Saver)에 보관했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도 있다.
자동차로 만든 에너지로 에어컨·TV 작동?
8월 22일 방문한 수소전기하우스에는 총 4대의 수소전기차가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맨 처음 놀란 건 집 안(건물 내부)에 자동차가 들어와 있는데도 소음이 거의 나지 않다는 점이었다. 차량에 엔진이 없기 때문이다. 230㎡(약 70평)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일반 가정집의 거실과 주방 같았으며 스탠드형 에어컨 5대와 대형 TV 4대, 전등 90개, 노트북컴퓨터 등이 켜져 있었다.
수소전기차 한 대가 시간당 생산해내는 전기량은 10kW로, 이 정도 양이면 수소전기하우스를 10시간가량 가동할 수 있다고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수소전기차는 배터리에 저장된 전기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차와 달리 직접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비상 시 산업 또는 가정에 전력을 공급하는 발전소 및 ESS 기능도 할 수 있다. 실제 수소전기차 10만 대로 생산할 수 있는 전기에너지는 원자력발전소 1기의 전력량과 맞먹는다”고 말했다.
또한 수소전기차에서 전기를 만들고 나온 물은 싱크대로 통하도록 해놓았다. 이 물을 인간이 먹을 수 있는지에 대해선 구체적인 연구가 아직 없지만, 식물을 키우거나 청소하는 용도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수소전기하우스 창가에는 자동차에서 나온 물로 키우는 화초들이 매달려 있었다.
수소전기하우스에서는 AR(증강현실) 기기를 활용한 도슨트 투어도 진행 중이다. 수소전기하우스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도슨트 투어를 예약한 뒤 시간에 맞춰 방문하면 된다. AR 기기를 수소전기차에 가져다 대면 화면에는 해당 부위의 차량 내부가 뜬다. 차량 후방부에는 수소탱크가, 전방부에는 연료전지스택이 뜨는 식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차량 전방을 비추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먼지가 차량 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구현된다. 반대로 차량 후방을 비추면 맑은 공기를 뜻하는 연둣빛 연기와 그 밑으로 흘러나오는 물길 주변을 따라 토끼가 노니는 장면이 등장한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과학체험교실’에서는 수소와 산소가 만나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수소전기차의 원리 등 체험으로 알게 된 내용들을 실험키트를 활용해 다시 한 번 익힐 수 있다.
이날 수소전기하우스를 방문한 50대 남성은 “현재 전기차 ‘아이오닉 일렉트릭’(현대차)을 타고 있는데 내년에 수소전기차가 나오면 그걸로 바꿀까 생각 중이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전기차 충전소가 설치돼 있긴 하지만, 완충하는 데 4~5시간가량(급속 충전은 25~30분 소요) 걸려 급하게 차를 써야 할 때 누가 먼저 충전하고 있으면 난감하다. 그에 비해 수소전기차는 3~5분이면 충전이 가능하니 훨씬 편할 것 같다. 단, 충전소 확보 문제가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충전소, 정부보조금 지원 필수
이 남성의 말처럼 수소전기차 양산화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충전소 설치 등 인프라 확충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위해 신고리 원전 1호기를 중단한 데 이어 건설 중이던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준공도 취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명이 다 된 원전도 가동 기간 연장 없이 폐쇄할 예정이라 전력 공급난이 우려되는 상황. 그 대신 정부는 2020년까지 수소전기차 10만 대 보급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인프라 구축 면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수소전기차 1만 대를 운영하려면 충전소가 적어도 100기가 필요한데 정부는 아직 충전소 설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환경부는 올해 총 195억 원을 투자해 수소충전소 13기를 건립할 계획이다. 올해 예산으로 편성된 10기(150억 원)와 지난해 이월된 3기(45억 원) 등으로 울산, 경남 창원, 광주 3곳을 중심으로 들어설 전망이다. 수소충전소 건립 비용은 기당 30억 원으로 환경부가 50%, 지방자치단체가 50%를 지원한다. 하지만 수소충전소 설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소전기차가 환경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려졌지만 아직 연 판매량이 100여 대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구체적인 추가 지원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다. 소비자들은 수소전기차를 편하게 몰려면 수소충전소 기반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전기차는 충전인프라가 뒷받침된 결과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점차 보급 대수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집계한 전국 전기차충전소는 1168개(충전기 1528기)에 달한다. 정부 보조금도 수소전기차 양산화에 큰 구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정부는 수소전기차 대당 보조금 2750만 원을 지급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보조금도 있지만 울산과 광주 등 일부에서만 동참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일단 지원 방침은 일반 소비자로 하여금 차세대 수소전기차를 3000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소, 위험하다’는 불안감 없애줘야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수소경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주요 국가들은 수소경제 구현의 핵심인 충전 인프라를 늘리고, 수송용 수소전기차 보급 확산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4월 ‘2016~2020년 신에너지차량확대보급사용’ 관련 발표를 통해 전기차(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PHEV)에 대한 보조금을 2020년까지 지금보다 40% 줄이는 반면, 수소전기차 보조금은 현 20만 위안(약 3400만 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수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수소전기차가 극복해야 할 걸림돌 가운데 하나다. 수소 하면 흔히 ‘수소폭탄’이 떠오를 만큼 수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했을 때 일어나는 폭발력은 상당하다. 하지만 수소전기차의 안정성은 이미 입증됐다. 현대차 역시 이번 차세대 수소전기차의 안전성 시험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현대차 관계자는 “흔히 교통사고가 났을 때 수소탱크가 파괴돼 폭발할 것을 우려하지만, 수소탱크는 특수 강판으로 만들어져 교통사고 같은 외부 충격으로는 결코 깨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백운봉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에너지소재표준센터장 역시 “수소는 도시가스나 액화석유가스(LPG)처럼 가연성 기체라 안전관리 요령을 숙지하고 잘 관리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빨리 전문가의 입을 통해 수소폭탄 원리와 수소전기차의 원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밝혀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독일 글로벌 가스회사는 수소전기차를 시범운행하면서 일반 대중이 쉽게 수소를 체험하고 일상에서 받아들일 수 있게끔 했다. 독일 주요 도시를 기점으로 수소충전소를 설치하고, 수소에너지를 일상으로 끌어들여 수소에 대한 국민 인식을 개선한 것. 과학적 이론 설명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확보된 기술을 바탕으로 국민이 수소에너지 관련 기술을 직접 체험해보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아이슬란드 역시 수소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시민의 불안감이 높아 이용객이 몇 명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소버스 모니터링을 위해 사람 수에 맞게 벽돌을 버스에 채운 뒤 시험운행하고 소방서 등 사고 대처 가이드라인을 확실하게 한 결과 지금은 국민의 불안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다. 백 센터장은 “결국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