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가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8·27 국민의당 전당대회(전대)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 씨의 취업 특혜 제보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모든 걸 내려놓겠다”며 ‘자숙 모드’로 전환한 그가 8월 3일 ‘선당후사’를 내세우며 당대표 선거전에 뛰어든 것이다.
앞서 “대선 패배 후 책임의식 없이 친안(친안철수) 패권주의에 기대 벌써 당권 도전에 나서는 건 상식에 어긋난다”(이훈평 전 의원), “출마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뜻을 단호하게 전했다. 안 전 대표가 심각성을 인식하는 듯했다”(박지원 전 대표)고 말한 당 지도부는 머쓱해졌다.
親安 vs 非安 갈등 수면 위로
그의 출마 선언으로 전대 ‘판’은 커졌지만, 호남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비판 목소리가 나오면서 당내 갈등 양상이 엿보인다.
안 전 대표 출마를 종용한 원외지역위원장 등은 “내년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앞두고 제3당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려면 ‘안철수 카드’가 최적”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이번 전대에서 선출되는 지도부가 내년 지방선거를 이끄는 만큼 당 조직의 뿌리인 기초·광역의원을 대거 배출하고, 호남·중진그룹으로 쏠려 있는 당의 ‘무게 추’도 중도·보수 쪽으로 옮겨놓아야 한다고 부연한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대선 패배와 ‘제보 조작’ 파문으로 위기에 처한 당을 수습하는 게 시급한 마당에 안 전 대표 출마는 명분이 없고 당내 분란만 촉발할 수 있다는 것. 국민의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 출마 지지자들은 ‘당 정체성’ 운운하지만, 안 전 대표 출마로 ‘안철수냐, 아니냐’가 당의 정체성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대가 정책과 혁신 대결장이 아니라 친안계 대 비안계의 세(勢) 싸움의 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는 뜻. 안 전 대표가 이런 우려를 알면서도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면 우려는 현실이 될 공산이 커 보인다.
먼저, 이미 출마를 선언했거나 의사를 내비친 당권 주자들은 안 전 대표에게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리는 게 떨떠름한 표정이다. 특히 안철수계 일각에서는 “현 당권 주자들로는 당 살리기에 역부족”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 당권주자 측 관계자는 “결국 안 전 대표의 출마 명분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건데, 그 자체가 과거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친문(친문재인) 패권 세력의 논리”라며 “안 전 대표는 대선 패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인 만큼 더 자숙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권 도전에 나선 천정배 전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국민께도, 우리 국민의당에도, 안 전 후보 자신에게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최악의 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고, 앞서 정동영 의원은 ‘정치인은 물고기고 민심은 물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는데, 지금 국민들이 과연 안 전 대표에게 국민의당 대표로 나오라고 떠밀거나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며 에둘러 비판했다.
안철수 출마 이유
어쨌든 기차는 달린다. 당내 찬반이 엇갈리지만 안 전 대표의 출마에 맞춰 전대 구도도 급격히 재편되는 모양새다. 일단 안 전 대표와 ‘한 팀’임을 강조하는 이언주 의원과 문병호 전 최고위원은 당대표 출마 의사를 접고 최고위원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안 전 대표와 당대표-최고위원 ‘러닝메이트’를 이뤄 전대를 치른다는 전략이다.
이 의원은 “안 전 대표가 출마한다는 건 스스로 대권 행보보다 당을 우선시한다는 의미 아니겠나. 주변에서 힘을 모아 도와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출마 쪽으로 기울었던 김한길 전 상임선대위원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는 안 전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을 공동창당했던 인물로, 당권 경쟁에 뛰어들 경우 자칫 ‘한때의 동업자’끼리 ‘세 싸움’을 벌이는 모습으로 비칠까 봐 고민이다.
안 전 대표의 출마로 의원들의 때아닌 ‘고심’도 커졌다. 한 초선의원은 ‘주간동아’에 현실적 고민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 당권 도전을 하려는 분이 ‘도와달라’고 부탁했는데 안 전 대표 출마설이 나돌아 적당히 고사했다. ‘줄서기’ 정도는 아니어도, 자칫 특정 ‘주자’의 편에 섰다 누가 당대표가 되든 ‘서운하다’는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이미 의원 12명이 안 전 대표 출마 반대 성명을 냈으니 선거전이 격해질 거 같다. 분위기를 보고 있다.”
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안 전 대표는 당의 소중한 자산이고, 당의 소중한 자산이 전대에 나오겠다는데 ‘떨어뜨려서 흠집이 나게 둬야 하느냐’는 현실적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겠다”던 안 전 대표가 왜 전격 출마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까.
안 전 대표는 8월 3일 당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선당후사’와 ‘다당제’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출마의 변을 밝혔다. “당 자체가 사라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엄습하고 절망과 체념이 당을 휩싸고 있다. 원내 제3정당인 국민의당이 무너지면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는 빠르게 부활한다. (중략) 다음 대선에 나서는 것을 우선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지만 내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이 소중한 가치를 위해 내 모든 것을 던지겠다.”
이에 대해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은 “결국 안 전 대표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것도 출마 의사를 밝힌 분들(천정배, 정동영)이 당대표가 되면 바른정당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며 “원내 3, 4당이 힘을 합쳐 ‘파이’를 키워야 한국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게 안 전 대표의 기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른정당과 연대에 대한 안 전 대표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8·27 전대에서 바른정당과 연대 논의도 이슈로 떠오를 조짐이다.
당장 안 전 대표는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 김동철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와 접촉하면서 바른정당과 정책연대 필요성을 설파하고 있고, 초·재선그룹 가운데 일부는 이미 바른정당과 정책 공감대를 찾기 위한 연구모임을 추진 중이다.
“잊히는 데 대한 두려움 컸다”
물론 전대 과정에서 바른정당과 정책연대 공감대가 형성되면, 내년 지방선거 전체 구도는 바뀔 수 있다. 호남의 지방자치단체장 후보군을 다수 보유한 국민의당과 경기·제주의 광역단체장을 보유한 바른정당이 손을 잡으면 적잖은 파괴력과 시너지 효과가 예상된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도 바른정당과 막판 연대 논의가 있었고 연대 가능성을 이미 열어둔 만큼 논의가 시작되면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그러나 과거 ‘책임 정치’와 자강론(自强論)을 강조하던 안 전 대표의 출마 명분으로는 궁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전 대표 측 핵심 인사의 분석은 이렇다.
“안 전 대표는 당대표 자리는 얻겠지만 잃는 게 더 많아 보여 걱정이다. 제보 조작 사건 당시 ‘정치인으로 살아온 5년 동안의 시간을 뿌리까지 돌아보겠다’던 그가 20여 일 만에 성찰을 끝내고 출마하겠다는 건 평소 그가 강조한 ‘책임 정치’와 거리가 멀다. 친안계 의원들은 ‘당 정체성 회복’을 주장하며 출마를 종용하지만, 중도·개혁노선은 안 전 대표만 할 수 있는 전매특허도 아니다.
‘자강론 신봉자’ ‘정치공학 반대론자’인 안 전 대표가 왜 갑자기 ‘연대론자’가 됐는지도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아마도 ‘국민에게 잊히는 데 대한 두려움’과 정치인으로서의 영향력 감소, 정치 일선에 머물며 2015년 당대표에 등극한 후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 등이 영향을 미친 거 같다.”
이와 관련해 호남권 의원들은 바른정당과 연대 과정에서 이른바 ‘호남당’ 논란이 재현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전국 정당화를 목표로 보수 정당과 연대는 자칫 당 최대 기반인 호남 민심을 거스를 수 있다는 것. 호남에서 국민의당 지지율이 최저치인 만큼 지금이 바른정당과 연대를 본격적으로 모색할 적기라는 반론도 있다. 어쨌든 밋밋해 보이던 국민의당 전대는 안 전 대표의 출마로 관심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