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커십
신인철 지음/ 한스미디어/ 384쪽/ 1만6500원
잘 굴러가는 조직을 얘기할 때 대부분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성과를 좌우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조직원에게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빠르게 결정하며, 목표 달성을 위해 적절한 방법으로 후배를 이끌어가는 카리스마형 리더십이 주목받았다. 그런데 이게 너무 성과 위주로 흘러간다는 비판을 받자 솔선수범하고 후배들을 다독거리며 조직의 화합을 중시하는 서번트 리더십이 각광받았다.
하지만 리더의 역량에만 의존하는 것이 조직을 더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최근엔 조직원들의 소임을 강조하는 팔로어십이 급부상했다. 조직원의 분발과 각성을 촉구하는 팔로어십도 등장했다. 좋은 팔로어는 이런 게 필요하고 등등…. 하지만 이런 조직 이론 발전 과정에서도 조직 문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국내 유명 제약회사가 한때 특별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외국계 회사에서 최고 실적을 내던 젊은 팀장에게 임원 겸 사업팀장을 맡기고, 각 영업소에서 역시 최고 성과를 내던 사원 등 젊은 직원을 일종의 별동대로 만들어 기존 영업조직이 뚫지 못한 새 시장을 개척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들의 성과는 기존 조직에서 거뒀던 성과를 단순히 합친 것보다 못했고 1년 반 만에 ‘대실패’로 막을 내렸다. 이 팀은 내부 역할분담도 명확히 했고, 팀 내의 지나친 경쟁이 독이 된다는 사실도 잘 아는 똑똑한 조직이었는데도 실패를 면치 못했다. 최고 리더와 최고 팔로어들이 합쳤는데 왜 실패했을까. 저자는 이들 팀원 10명을 인터뷰한 뒤 부족했던 점 하나를 발견했다. 그건 바로 ‘링커’, 즉 조직에 기름칠을 하고 다리 구실을 하는 중간관리자의 부재였다.
저자가 말하는 링커의 소임은 이렇다. 리더에겐 믿음직한 참모이자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고 공감할 수 있는 동료이며,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지지자다. 팔로어에게는 또 다른 스타일의 리더이자 리더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안방마님이며, 때로는 팔로어들을 대표해 리더에게 그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대변인이다. 여기에 한때 링커였던 기자가 덧붙이자면, 리더가 어려운 과제를 놓고 고민할 때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팔로어의 개인 사정을 속속들이 파악해 엇나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일도 해야 한다. 저자는 링커가 조직의 안정적 운영과 건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존재임을 부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팔방미인의 조건을 갖춘 링커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업 조직을 기준으로 고참 대리에서 차장까지 전국에 3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링커들은 쓴웃음을 지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항변도 들어보자. ‘책임만 있고 권한은 없다’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밀리고, 숨이 막힌다’ ‘누가 우리를 인정하나. 그냥 일반 팀원들이랑 같은 취급이지’ ‘말이 좋아 중간관리자지, 일만 더 많고 신경 쓸 일도 허다하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한 번쯤 들어봤을 얘기들이다.
저자는 바로 이런 링커의 존재 조건 때문에 링커가 리더와 팔로어만큼이나 조직에서 중시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링커가 가져야 할 자질로 경청, 통역, 관계경영, 중계, 반대, 응원 등 6가지를 들고 있지만 이는 링커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한 덕목이니 패스.
이 책이 돋보이는 건 5장에 있다. 최고 링커가 되기 위한 본인의 노력과 최고 링커를 만들어내는 조직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다. 본인의 노력은 본인에게 달려 있다 쳐도, 팔로어에서 올라와 어색한 위치에 있는 링커를 적절히 교육하고 권한을 부여하며 영역을 만들어주는 조직의 역할은 링커에게 결정적일 수 있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링커 99명을 인터뷰한 뒤 그 핵심을 새로운 내용이 시작할 때마다 2개씩 보여준다는 것이다. 바쁜 독자는 이것만 읽어도 격한 공감에 무릎을 칠 수 있다.
저자가 쓰는 ‘최고의 링커’라는 표현이 좀 거슬리긴 한다. 최고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제몫을 해내는 링커가 되고 싶다면, 그리고 링커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왔다면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아무리 뛰어난 조직 이론과 최고 사례를 들이대며 본받으라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깨닫고 움직여야 하는 법이다.
영어는 3단어로
나카야마 유키코 지음/ 최려진 옮김/ 인플루엔셜/ 276쪽/ 1만3500원
실제로 이렇게 물어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What’s your job?’에 어떻게 답하면 좋을까. ‘My job is an English teacher’로 답한다면 한국식(혹은 일본식)이다. ‘I teach English’가 쉽고 영어답다. 책 제목처럼 동사(be동사는 예외)를 적극 활용해 주어, 동사, 목적어의 3단어로 깔끔하고 실수 없이 영어 문장을 만들자는 내용이다. 실제 영어 사용자는 회화에서 이런 식의 문장을 많이 구사한다. 3단어 구사를 위해 버려야 할 숙어, 수동태, 부정문, 문법 등과 함께 동사를 활용한 올바른 예문을 소개한다.
조선반역실록
박영규 지음/ 김영사/ 332쪽/ 1만3000원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으로 역사 대중화를 이끌고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저자의 신작. 깊이는 없지만 반역의 역사만 모은 콘셉트가 흥미롭고 사실(史實)의 전후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고려를 멸망시킨 태조 이성계, 아버지를 배신한 태종 이방원, 조카를 내쫓은 세조 수양대군 등도 반역의 범주에 넣은 것이 특이하다. 임금 3명을 포함해 이시애, 남이, 정여립, 허균, 이괄, 이인좌 등 12개의 반역 사건을 담았다. 다만 조선 후기 큰 반역 사건이던 홍경래의 난이 빠진 점은 의아하다.
은유의 힘
장석주 지음/ 다산책방/ 292쪽/ 1만3800원
시인 장석주가 은유를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월간 ‘시와 표현’에 연재했던 ‘권두시론’ 24편을 다듬어 냈다. 시인은 시가 생성되는 비밀의 핵심을 은유라 보고, 그것에 대한 사유와 영감을 문장으로 풀었다. 이 책엔 세 가지 재미가 있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국내외 유명 시인의 시를 읽는 즐거움과 장자, 니체, 라캉 등 철학자의 시각을 통해 본 시의 의미, 이 둘을 통해 장석주라는 시인이 전하는 새로운 은유의 세계가 그것이다. “은유는 빛을 흩뿌리지만 윤리의 맥락에서 포획되지 않는다. 포획되는 것이 아니라 불꽃처럼 창조된 것이다.”
에이다, 당신이군요. 최초의 프로그래머
시드니 파두아 지음/ 홍승효 옮김/ 곰출판/ 336쪽/ 2만 원
부제는 ‘컴퓨터 탄생을 둘러싼 기이하고 놀라운 이야기’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말을 남긴 영국 시인 바이런의 딸 에이다와 천재 발명가 찰스 배비지의 이야기를 담은 그래픽노블이다. 이 두 사람은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만한 계산기를 만들고,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의 주요 개념을 최초로 제시했다. 완성하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매력적인 삶을 잘 그려낸 책이다. 만화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책을 보면 안다. 왜 그런지. 지난해 영국 ‘가디언’이 선정한 올해의 책이며, 각종 상을 수상하거나 후보에 올랐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