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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현대판 한정식 ‘뷔페’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현대판 한정식 ‘뷔페’

현대판 한정식 ‘뷔페’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뷔페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배경에는 한 상 위에 다채로운 음식을 차려내는 한정식 문화가 있다.다양한 음식을 한꺼번에 접할 수 있는 전형적인 남도 한정식 상차림.서울 힐튼 호텔 뷔페식당 전경. (왼쪽부터 시계 방향)

미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죽 자란 손자가 한국을 찾아 할아버지와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손자는 시금치 나물 무침을 한 번에 다 먹더니, 멸치를 남김없이 해치우고는 다시 고기만 계속 먹는 것이 아닌가. 이것저것 골고루 함께 먹으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이 손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먹는 것이 좋은데 왜 그러시는 걸까’ 하는 표정으로 한 음식씩 먹어치우는 것이다. 예전에 어느 칼럼에서 읽은 ‘문화적 충격’에 대한 이야기다.

음식을 먹는 방식에서 한국은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모든 음식이 한곳에 차려져 한꺼번에 나오기 때문에 여러 음식을 동시에 접하게 되는 반면 서양에서는 시간 순으로 음식이 나오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음식을 접하게 된다. 그래서 포크, 나이프, 스푼이 한꺼번에 10여개씩 놓이기도 한다. 앞에 맛본 음식의 맛이 뒤에 나온 요리에 섞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여러 음식이 나오는 한정식 차림에서도 숟가락과 젓가락은 한 벌뿐이다.

몇 년 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우환 화백을 부산 공간화랑 전시회에서 뵌 적이 있다. 와인과 음식문화에 해박한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음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양 음식은 주방장이 재료들을 한데 섞어 내보내는 요리이고, 일본 음식은 재료의 순수성을 살린 요리입니다. 이에 반해 한국 음식은 눈앞에 펼쳐진 음식 중에서 자신의 취향에 맞는 찬을 골라 입 안에서 재조합해 먹는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상에 차려진 음식을 개인의 기호에 따라 선택해 입 안에 넣으면 각각의 음식들이 서로 섞여 재조합돼 새로운 형태의 음식이 되는 것이죠.”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면 사람에 따라 주문하는 메뉴가 다르다. 메뉴판 앞에서 자신의 맛의 철학을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전통 한정식 집에 가면 누구나 똑같은, 공통의 반찬이 놓인 상을 받게 된다. 모든 사람 앞에 같은 반찬이 놓여 있는 것이니 우리는 아무런 개성도 없는 것일까. 이우환 화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판 한정식 ‘뷔페’
“한국 음식 문화에서 개개인의 자유는 제각기 받은 상 안에서 보장됩니다. 개별적으로 완성된 반찬들이지만 자기 젓가락, 숟가락 가는 대로 골라 입 안에서 전혀 다른 맛의 음식을 재창조해내는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겁니다. 이것을 한국인만의 특별한 에고(ego)라고 할 수 있죠. 주방장의 존재가 절대적인 서양 음식보다는 완성된 음식들을 나름의 취향대로 골라 자기 마음대로 재창조하는 우리네가 실제로는 더 강한 에고를 가졌다고 할 수도 있지요.”

한정식이 한국인이에게 있는 평등지향성을 충족시키면서도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이 지적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그런데 요즘의 한정식들, 특히 고급 한정식 집에서 내는 한정식은 대부분 코스별로 요리가 나온다. 시간 순으로 펼쳐지는 이 방식은 사실 서양적인 것이다. 한 상 가득 차려놓고 푸짐하게 골라 먹는 전통적인 우리 것이 아니다.

현대적인 한정식은 오히려 뷔페가 아닐까 싶다. 사실 외국에 가면 뷔페가 그렇게 인기 있는 메뉴가 아니다. 호텔 투숙객을 위한 아침 뷔페 정도가 흔히 보는 형태고 저녁에 뷔페를 먹으러 가는 일은 드물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워낙 뷔페가 인기가 있어 특급호텔마다 뷔페 식당 없는 곳이 없다.

잘 관찰해보면 뷔페에도 종류가 많다. 크게 종합형과 전문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종합형은 한식, 일식, 중식, 양식이 모두 나오고 디저트로 떡, 식혜에 아이스크림, 티라미수까지 제공하는 형태를 말한다. 파스타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갖가지 초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모든 것’이 나오는 뷔페는 역시 음식 맛은 조금 떨어진다. 예를 들면 서울 H호텔 테라스의 양고기는 너무 익어 질기기까지 한 반면 S호텔 프렌치 레스토랑 브런치 뷔페의 양갈비는 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깔끔하다. 다양성이냐 질이냐의 문제인 셈인데 뷔페는 그 특성상 완벽한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잘 찾아보면 예상외로 훌륭한 요리들이 꽤 있기도 하다.

한정식 집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뷔페의 문제점은 먹다 남기는 음식이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상을 물리는 것을 통해 이 같은 음식 낭비를 해결할 수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이 문제다. 1인용 미니 한정식 같은 형태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정식 특유의 그 시각적 화려함과 회화적 디스플레이를 낭비 없이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주간동아 398호 (p88~89)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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