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70

2009.01.20

Watch your back

  • 이형삼 hans@donga.com

    입력2009-01-13 13: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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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atch your back
    초등학교 1학년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학급 수는 많고 운동장은 좁다 보니 몇 개 반이 함께 체육수업을 했습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반 대항 계주 시합이 열렸습니다. 저도 키 큰 죄로 대표선수가 됐습니다. 우리 반 첫 주자는 1등으로 바통을 넘겼습니다. 하지만 다음 주자부터 하나하나 뒤처지더니 마지막 주자는 결국 꼴찌로 들어왔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로 들어서자 담임 여교사가 ‘선수’들을 불러냈습니다. 교사는 첫 주자를 ‘열외’시킨 뒤 나머지 아이들의 귀뺨을 모질게 후려갈겼습니다.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짜리 꼬맹이들이었습니다.

    중학교 시절 ‘장풍’이라는 별명의 수학교사가 있었습니다. 학생을 교실 앞으로 불러내 ‘풀스윙’으로 뺨을 때렸는데, 창가에서 뺨을 맞은 아이가 반대편 출입문까지 ‘날아갈’ 정도라 그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맞은 아이들의 여린 볼엔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돋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체육교사는 하키 스틱으로 학생들을 때렸습니다. 서너 대만 맞아도 엉덩이와 허벅지에 불에 덴 듯한 고통이 찾아옵니다. 엎드려뻗쳐 상태로 매를 맞다 자세가 무너지면 허리를 밟고 옆구리를 걷어찼습니다.

    1980년대 중반 신병훈련소는 ‘구타 근절’ 과도기였습니다. 훈련 중엔 대놓고 두들겨 패지 않았지만 밤엔 얘기가 달라졌습니다. 점호가 끝나고 중대장이 떠나면 내무반장의 주먹질, 발길질이 한동안 이어진 뒤에야 취침할 수 있었습니다.

    소년기와 청년기를 이렇듯 일상화한 폭력 속에서 보냈음에도 지금껏 참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온화한 부모, 우애로운 형제, 착한 친구들, 배울 것 많은 동료들 덕분입니다. 제도권의 혹독한 폭력에 시달리면서 폭력에 대한 반사적 거부감을 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무의식 속 어딘가에 잠재한 폭력성이 불현듯 고개 드는 걸 느끼며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위협적으로 차를 모는 운전자에게 순간적이나마 살의를 느낍니다. 주변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주사(酒邪)를 부리는 술꾼은 앞니 몇 개를 부러뜨리고 싶습니다. 상습 성폭행범은 화학적 거세가 아니라 ‘물리적 거세’로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이가 부당하고 비교육적인 체벌을 받는다면 당장 골프채를 꺼내들고 학교로 달려갈지도 모릅니다.

    야만의 시대, 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폭력적 환경에서 성장한 많은 이들의 가슴 한구석에 이런 폭력성이 숨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다들 성질 죽이고 삽니다. 그래야 우리 가정이, 이 사회가 굴러갈 수 있기에 일촉즉발의 폭탄 한두 개씩 껴안은 채 꾹꾹 참고 법 지키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겨우 잊어가던 제도권 폭력의 쓰라린 기억을 생생하게 되살려준 의원님, 보좌관님, 당직자 여러분. 경고하건대, 부디 이런 우리를 ‘욱’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인간폭탄들의 뇌관을 건드리지 마십시오. 우리라고 댁들만큼 ‘성깔’이 없어 참고 있는 게 아닙니다. ‘친구’에서 장동건이 내뱉던 말을 상기시켜 드리죠.

    “길에서… 내하고 만나지 마소.”

    이번 호 커버스토리에 걸맞게 영어로 옮겨볼까요?

    “Watch your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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