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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마약에 맛들이면 이런 기분일까

나의 오디오 라이프 체험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마약에 맛들이면 이런 기분일까

마약에 맛들이면 이런 기분일까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오디오갤러리 쇼룸.

자주 다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연이 올라왔다. 남편이 사온 보급형 카메라를 실수로 떨어뜨렸단다. 남편이 알기 전에 수리를 맡겨야 하는데 카메라 가격은 얼마이고 수리 견적은 얼마나 나오겠느냐는 거였다. 문제는 그 카메라가 ‘보급형’이 아니었다는 것. 라이카 한정품. 실제 가격은 1000만 원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사연을 본 남편들이 대동단결, ‘몇십만 원이면 사니까 남편에게 맡기세요’ 식의 댓글을 달았다. 아내 몰래 고가 취미용품을 지른 남자들의 동병상련이랄까. 하지만 게시판 분위기가 수상하다는 걸 직감한 작성자는 결국 인터넷 검색을 했고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다음 날 작성자는 퇴근한 남편을 집에서 쫓아냈다는 후기를 올리며 거짓말에 동조한 다른 사용자들을 질타했다.

그렇다. 남자의 취미는 대체로 비싸다. 요즘 붐인 캠핑만 해도 제대로 갖추려면 웬만한 수도권 원룸 전셋값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중에서도 자동차, 카메라, 오디오에 빠지면 답이 없다는 게 현대 사회의 속담처럼 돼버렸다. 이른바 ‘장비병’에 걸려 자신의 장비를 수시로 바꾸거나 마치 데이 트레이더가 된 듯 중고 장터를 하루 종일 기웃거리는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다행히 면허도 없고 사진에도 별 재주가 없는 내게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오디오다. 처음 오디오에 입문했던 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펌프질’이었다. 특히 음악 듣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펌프질을 당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심지어 술을 사주면 오디오를 지르라는 이도 있었다. 그리하여 유혹에 넘어갔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괜찮은 수준의 시스템을 질렀다.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그건, 음악을 듣는 느낌이 아니었다. 공연을 보는 기분이었다. 양쪽 스피커 사이에 입술이 둥둥 떠 있는 듯한 착시를 느낄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건 착시가 아니라 하이파이(hi-fi) 시스템의 효과 중 하나였다. 사운드의 해상도가 높아 소리가 맺히는 지점이 명확해져 마치 사람이 눈앞에서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익숙한 음악에서 그동안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렸다. 심지어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동안 밖에서 술을 마시다 얼큰해지면 집으로 달려가 음악을 들으며 소리의 신천지에 빠져든 후 다시 나가기도 했다. 마약에 맛을 들이면 이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음악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늘 하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음악과 술이야말로 국가가 허용한 유일한 마약이라고.

몇 번의 바꿈질로 비교적 취향에 맞는 소리를 갖춘 후 오디오의 세계에서 빠져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더는 장비에 욕심이 없어졌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음악을 듣는 것이니, 더 많은 음악을 좋은 소리로 듣는 데 전념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쓴 금액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에 비하면 천문학적인 액수였던 건 분명하다. 하지만 더욱 확실한 건 영업사원이 ‘갑’에게 접대하느라 룸살롱에서 쓰는 돈보다는 적었다는 거다. 사회생활이란 명목 하에 건강을 해쳐가며 무의미하게 흩뿌리는 돈과 비교하면 이런 ‘남자의 취미’는 오히려 돈이 적게 든다. 카메라는 평생 잊지 못할 가족과의 사진을 남기고, 자전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건강을 가져다준다. 오디오는 음악이 갖고 있는 치유와 기쁨의 기능을 극한으로 끌어 올리는 도구다. 그러니 부디 가정의 평화를 위해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설득의 기술을 발휘해 취미에 관한 당당한 투자협약을 이끌어내기를.



주간동아 2015.06.15 992호 (p78~78)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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