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변호사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사업자등록 시키고 연대책임 지게 해
현직 변호사가 이런 문제로 진정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변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어소시에이트 변호사(associate attorney : 업계 통칭 어소 변호사라고 함)라 부르는 소속 변호사를 구성원 변호사(partner lawyer : 보통 파트너라고 함)로 강제 등록하는 관행에 강경 대응할 계획이다. 어소 변호사는 로펌이나 법률사무소에 채용돼 월급을 받고 일하는 변호사로, 주로 법조 경력이 짧은 청년 변호사가 맡는다.
박주희 서울변회 대변인은 “어소 변호사가 취업할 때 로펌에서 구성원 등록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 구성원 변호사가 되면 세무적 책임은 물론, 문제가 생겼을 때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 청년 변호사의 취업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강압적으로 계약을 하거나 로펌 측에서 구성원 등록을 하지 않으면 고용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어소 변호사는 불이익을 당해도 외부로 알리는 것을 꺼리거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진정을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이번 건은 A씨가 용기를 내서 알려질 수 있었다. 해당 로펌 관계자에 대해서는 변호사 품위유지의무 위반으로 고발장을 접수한 상태”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피해 당사자가 직접 진정을 내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말한다. 서울변회는 3월부터 변호사법 위반행위 관련 피해 사례를 접수받고 있다. 현재까지 어소 변호사의 근로권 문제를 비롯해 30여 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으나 구체적이지 않거나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는 고충처리위원회 등에 어소 변호사들의 피해 사례가 접수된 것이 없다고 답했다. 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상대적 약자인 어소 변호사들에게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2014년 2월 임신 등의 사유로 1년간 강제 휴직을 한 어소 변호사가 고용주를 상대로 낸 소송의 경우 항소심에서 고용주가 벌금형을 받았다. 2006년 KBS 계약직 사내 변호사로 일하다 해고되자 해고무효 소송을 낸 변호사는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근로자가 고용주를 대상으로 승소하기도 하지만 이는 드문 경우다. 서울변회 회장을 역임한 나승철 변호사는 “서울변회에서 지난해 청년변호사들을 대상으로 근로 문제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를 벌였으나 실제 문제 사례로 잡힌 건 1~2건에 불과했다. 법조계가 좁다 보니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고,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문제 삼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대형 로펌에서 일하는 어소 변호사에게는 장시간 근로, 휴가, 야근 수당 미지불 같은 문제가 주로 불거진다면, 퇴직금 미지급이나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 문제 등은 중소 로펌에서 빈번히 발생한다”고 말했다.
실제 어소 변호사의 삶은 어떨까. 중소 로펌에서 일하는 2년 차 어소 변호사 B씨는 “빨간 날(휴일) 제대로 쉬어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법원 휴정에 맞춰 잠깐 쉬지만, 그 외에는 휴일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대표변호사가 가져온 사건을 처리하며 의뢰인과 밤낮없이 만나고 통화하면서 일을 진행해간다. 당연히 대체휴가나 야근 수당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2009년 문을 연 법학전문대학원의 영향으로 변호사 수는 늘어난 반면, 일자리 수는 그대로라 젊은 변호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어소 변호사에게는 계약서라는 게 없어요. 저도 계약서 없이 다니고요. 어소로 로펌에 취업한 친구들 중 근로계약서를 쓰고 들어간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어요. 운 좋게 근로계약서를 써도 로펌 사정이나 변호사 실력 문제 등 이런저런 핑계로 금액을 깎죠. 저도 구두로 들은 금액만큼 받은 적이 없어요. 그전에 일하던 로펌에서 한 어소 변호사는 퇴직금을 못 받아 대표와 승강이를 벌이다 소송한다고 하자 그제야 돈을 받기도 했어요. 대표나 파트너 외에 어소들도 사건 수임을 하는데, 인센티브를 챙겨주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한 로펌에서 근무하는 어소 변호사 C씨는 “아무리 돈을 벌고 싶어도 법리적으로 검토해 부당한 사건이면 ‘이건 좀 아니다’ ‘힘든 소송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의인데, 일부 대표변호사는 당장 수임료에 급급해 어소 변호사의 견해를 무시한다. 의뢰인에게도 승산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 이는 일종의 의뢰인 기망인 셈이다. 덜컥 사건을 수임하고 나면 그때부터 어소들에게 ‘되게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진다. 패소하면 ‘무능력하다. 네가 못해서 그런다. 해보지 않고 안 된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직군이든 초년생은 미숙할 수밖에 없는데, 트레이닝을 하기보다 그걸 빌미로 ‘법적 논리력이 떨어진다, 리걸 마인드가 부족하다’며 어소 변호사들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지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여자 어소 변호사들은 결혼이나 연애, 임신과 출산과 관련해 인신모욕적인 언사를 듣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대한변협에 등록된 변호사 수는 2006년 1만 명을 돌파한 이후 8년여 만에 2만 명을 넘어섰다. 변호사 수가 급증한 데는 2009년 문을 연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의 영향이 컸다. 대한변협이 2012년 6월 변호사의 구직활동을 돕고자 개설한 취업정보센터(http://career.koreanbar.or.kr)의 방문자 수는 개설 3년 만에 980만 명을 넘어섰다. ‘을’의 위치에 있는 어소 변호사 사이에서도 로스쿨 출신과 연수원 출신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려야 섞이기가 쉽지 않다. 사상 최대 청년 취업난 속에서 고용시장의 불안정성이 이런 분위기에 일조하고 있다.
사법시험(사시) 출신으로 중견 로펌에서 일하는 3년 차 어소 변호사 D씨는 “로펌시장에서 연수원 출신 인력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모든 로펌이 그런 건 아니지만 주위 로펌들을 보면 연수원 출신보다 로스쿨 출신 어소 변호사를 2~3배 더 뽑는다.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연수원 출신과 달리 로스쿨 출신 어소 변호사는 초임이 연수원 출신의 절반 수준이다. 로펌을 운영하는 처지에서는 비용 절감이 되니 로스쿨 출신을 많이 뽑지만, 당장 송무에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의뢰인을 위해서도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인격모독은 다반사, 수형자 접대까지
로스쿨 출신으로 중소 로펌에 취업한 1년 차 어소 변호사 E씨는 “사시 출신 못지않게 로스쿨 출신의 애환도 만만찮다”고 말했다. 그는 “연수원 출신에게는 로스쿨 출신 변호사가 밥그릇을 뺏어간다는 생각에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로스쿨 출신 어소들은 어렵게 변호사가 됐지만, 로펌에서는 연수원 출신 어소들과 배가 차이 나는 월급에 박탈감을 느끼고, 외부에서는 ‘변호사’가 아닌 ‘변호조무사’라는 비하에 시달린다. 대형 로펌은 상황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사시 출신 파트너나 어소 변호사가 많은 상황에서 로스쿨 출신이 소속감을 느끼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몇몇 로펌에서 면접을 본 F씨는 “구인광고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면접장에서 ‘구성원 변호사로 등록할 건데 괜찮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못 하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구직 중인 주위 사람들도 그런 제안을 많이 받았다. 그 사람들은 나를 면접장에서 처음 봤는데, 뭘 믿고 그런 제안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는 곳마다 사업자등록을 종용하는 분위기다 보니 열 받아서 직접 개업한 변호사들도 있다”고 말했다.
F씨는 “일종의 ‘접대’를 하는 어소 변호사도 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구치소에 남자 수형자가 많다 보니 이들이 돈을 모아 여자 변호사를 들여보내달라고 한다. 그래서 일부 로펌에서 그런 목적으로 젊은 여자 변호사를 뽑는다. 물론 뽑을 때는 그런 일을 하게 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여자 어소 변호사는 구치소에 가서 상담을 빙자한 수형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동무를 하는 대가로 수백만 원씩 받는다”며 “그런 이유로 구치소에 접견을 가는 변호사는 등이 파인 드레스를 입는 등 복장부터가 다르다”고 귀띔했다.
어소 변호사들이 극단으로 내몰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노동시장의 균형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나승철 변호사는 “변호사 공급은 과잉인데 일자리는 없는 상황이다. 일본이나 미국 같은 경우만 봐도 변호사가 프로야구 에이전트로 활동할 수 있지만, 국내에는 그런 제도 자체가 도입돼 있지 않다. 변호사들이 일할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야 고질적인 갑을 문제도 해결 가능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