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7

2015.05.11

4만6000명의 영혼에 심어진 전설의 우주

5월 2일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5-11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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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만6000명의 영혼에 심어진 전설의 우주
    갈 때 생각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 않을까. 올 때는 달라졌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는 증폭하고 예상은 빗나갔다. 많은 뮤지션이 한국을 찾았다. 분명 음악 역사에 거대한 획을 그은 이들도 있었다. 폴 매카트니에 버금가는 이름값을 가진 아티스트들 또한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폴 매카트니만한 감동을 안겨주지 못했다. 그만큼의 열정을 공연 내내 보여준 이도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폴 매카트니의 첫 내한공연이 열린 5월 2일을 비틀스의 노래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분명 ‘A Day in the Life’였다.

    현실이자 비현실의 그 무엇

    공연이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공연티켓 사진과 객석에서 찍은 무대 사진이 넘쳐났다. 4만6000여 장 티켓이 대부분 팔렸고, 지난해 한 차례 취소된 후 1년 만에 열린 공연이었으니 기대의 양과 질도 여느 이벤트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게 분명할 터.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비장한 마음도 있었다. 1942년생인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이번 내한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드디어 폴 매카트니의 육성을 듣는다는 기대감 이면에는 확실히 걱정 비슷한 감정도 섞여 있었다.

    정확히 8시 23분, 조명이 꺼졌다. 올림픽주경기장에는 함성이 울렸다. 폴 매카트니가 무대에 올랐다. 단도직입, 비틀스 초기 히트곡 ‘Eight Days a Week’로 공연이 시작됐다. 내한 직전 일본 투어 첫 곡이던 ‘Magical Mistery Tour’가 서막일 거라는 예상이 단박에 깨졌다. 뭔가 다를 것이라는 또 다른 기대가 밀려왔다. ‘Save Us’ ‘Can’t Buy Me Love’ ‘Jet’ ‘Let Me Roll’ 등이 이어졌다. 비틀스와 윙스, 솔로를 넘나드는 히트곡의 향연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었다. 1라운드부터 연타를 날리는 인파이터의 복싱을 보는 듯했다. 준비해온 한국어 멘트를 어눌하게 말하고, 영어로 이야기할 때는 동시통역으로 양쪽 스크린에 자막을 띄우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감정의 동요가 일어난 건 그때까지 베이스와 기타를 번갈아 연주하던 폴 매카트니가 그랜드피아노에 앉았을 때였다. 그리고 비틀스의 마지막 발매작 ‘Let It Be’에 담긴 ‘The Long and Winding Road’가 흘렀다. 예고됐던 대로 비도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플로어석에 앉아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하트가 그려진 종이를 들어 올렸다. 종언을 고해가던 비틀스를 바라보는 20대 후반 폴 매카트니의 심경이 고스란히 담긴 곡, 그 노래에 대한 한국 팬의 마음이 하트라는 아이콘이 돼 바다를 이뤘다. ‘내가 폴 매카트니 공연을 보고 있구나’라는 단순한 문장이 울렁거릴 정도로 큰 파도가 돼 마음을 휩쌌다.



    바람의 갈대밭처럼 흔들리는 하트 카드들과 올림픽주경기장을 가득 채우는 ‘떼창’에 파도 같던 마음은 순식간에 해일이 됐다. 그 순간은 분명히 비현실적인 무엇이었다. 음악을 음악으로 인식하기 이전부터 산소처럼 주변에서 귓속으로 스며들던 음악이었다. 음악을 음악이라 인식했던 때부터, 음악을 능동적으로 찾아 듣고 빠져들던 때부터, 결국 음악 듣기를 업으로 삼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일이 됐던 때까지, 늘 녹음된 소리로 듣거나 남이 재현하는 소리로 접했던 그 노래들의 원본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비현실적인 기분으로 다가왔다.

    현실이자 비현실의 순간은 연속됐다.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도 조금도 갈라지지 않는 목소리로 폴 매카트니는 히트곡, 아니 명곡을 끊임없이 부르고 연주했다. 2명의 기타 겸 베이스, 혼자서 피아노부터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소화하던 키보드, 링고 스타의 드럼을 완벽히 재현해낸 드럼으로 이뤄진 4인조 밴드는 공연 막바지 폴 매카트니로부터 ‘세계 최고 밴드’라는 칭찬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때로는 폴 매카트니 혼자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Black Bird’, 이어 존 레넌 사망 후 발표했던 추모곡 ‘Here Today’ 같은 곡을 부르기도 했다.

    그렇게 공연은 차츰차츰 정점을 향해 올라갔다. 아니, 점이 아닌 선이었다. “조지(해리슨)를 위한 노래”라며 혼자 우쿨렐레를 연주하면서 시작해, 2절에는 밴드와 함께 오리지널 편곡으로 들려줬던 ‘Something’이 시작이었다. 뒤이어 ‘Ob-La-Di, Ob-La-Da’ ‘Band on the Run’ ‘Back in the U.S.S.R.’가 연주될 때 마침내 4만6000여 명 관객이 모두 일어섰다.

    두 번째 내한을 기다리며

    4만6000명의 영혼에 심어진 전설의 우주

    5월 1일 폴 매카트니가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히말라야의 험준고령 같은 위대한 노래가 계속되는 가운데 마침내 칸첸중가와 K2, 그리고 에베레스트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Let It Be’에서 플로어부터 3층까지, 관객들이 켠 스마트폰 플래시에 올림픽주경기장은 은하수처럼 빛났다. 영화 ‘007 죽느냐 사느냐’ 주제가로 인기를 끌었던 ‘Live and Let Die’와 함께 무대 위에서는 계속 불꽃이 치솟았다. 폴 매카트니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시작했다. ‘Hey Jude’였다.

    세계 어디서나 폴 매카트니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이 노래 후반부, 모든 관객이 무대 스피커 음량 못지않은 크기로 ‘나나나 나나나나 나나나나 헤이 주드’를 합창했다. ‘The Long and Winding Road’에서 흔들리던 하트들 뒷면에 인쇄된, 한글과 영어로 쓰인 ‘나’와 ‘NA’를 다시 흔들며. 수만 명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우주 안에 내 목소리도 있었다. 밤새도록 이 단순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외칠 수 있을 거라고, 아니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이 노래를 끝으로 폴 매카트니는 퇴장했다. 합창은 멈추지 않았다. 앙코르를 위해 그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감동한 듯 그 소리에 귀 기울이던 그는 객석의 선창에 맞춰 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리고 밴드가 함께 다시 ‘Hey Jude’ 후렴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국 공연은 그렇게 폴 매카트니 공연 사상 처음으로 이 노래가 두 번 연주되는 기록을 남겼다.

    ‘I Saw Her Standing There’로 마무리한 첫 번째 앙코르, (드디어!) ‘Yesterday’로 시작해 ‘애비로드 메들리’라는 제목으로도 잘 알려진 ‘Abbey Road’의 마지막 3곡으로 끝난 두 번째 앙코르까지, 그는 2시간 40분이란 시간이 얼마나 짧을 수 있는지 보여주고 들려줬다. 고령의 건강? 웬만한 젊은 뮤지션도 그렇게 오랜 시간 멈춤 없이 노래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다음에도 꼭 투어를 할 거고, 한국 관객의 반응을 기억한다면 두 번째 내한도 마냥 꿈은 아닐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2시간 40분의 감동과 여운, 그리고 새로운 기대에 그냥 잠자리에 들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한자리에 있었던 뮤지션, 비틀스 팬클럽 등이 모여 이날의 공연을 복기하고 이야기했다. 모든 히트곡을 다 연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듣고 싶은 노래가 많이 남아 있었다. 다시 한 번 그의 두 번째 내한을 염원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5월 2일, 한 위대한 뮤지션의 인생이 있었다. 대중음악의 위대한 역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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