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8

2015.03.09

손해배상책임 더 커진다

간통 위헌 결정 후폭풍

  • 최강욱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3-09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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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해배상책임 더 커진다
    2월 26일 헌법재판소(헌재)는 형법 제정 이후 62년간 유지돼온 간통죄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1990년부터 1993, 2001, 2008년 등 이미 4차례에 걸쳐 합헌 결정을 했다 다섯 번째 만에 위헌으로 뒤집은 것이다. “성매매는 간통이 아니다” “혼인빙자간음죄와 더불어 간통죄도 이미 위헌으로 폐지됐다”는 일각의 주장은 이전까지 분명 ‘잘못된 상식’이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법률상식을 확인해보자.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핵심 이유는 “성도덕에 맡겨야 할 내밀한 성생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처벌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이다. 그간 학계에서도 국가가 시민의 ‘이불 속’까지 일일이 들여다보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학설이 다수였다. 간통은 대부분 나라에서 개인의 자유권이 확대되면서 처벌하지 않는 쪽으로 바뀌었다. 우리나라에선 유교에 기초한 전통적 가치관으로 비교적 늦게 폐지된 셈이다.

    과거에는 간통죄 처벌이 이혼소송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이 사회·경제적 약자였고, 남편이 간통하면 아내가 고소해 남편을 구속시킨 후 고소 취하 조건으로 위자료나 재산 분할을 받아내는 경제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불구속 재판 원칙이 강화되면서 간통죄의 이런 ‘기능’은 현저히 약화됐다.

    하지만 위헌 결정으로 간통이 완전히 법적으로 허용되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비난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며 민사상 명백한 이혼 사유가 되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책임도 지금보다 무거워질 것이다. 간통은 성매수나 일시적 격정 내지 유혹에 따른 행위, 다른 사람과 연인관계를 맺는 행위 등도 해당된다. 배우자와 불륜관계를 맺은 제삼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도 여전히 가능하다.

    이번 헌재 결정으로 직전 합헌 결정이 내려졌던 2008년 10월 30일 이후 유죄가 확정되거나 현재 재판 중인 3000여 명(대검찰청 추산)이 구제된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라 유죄가 확정된 이들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 무죄를 선고받고,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라면 검찰의 공소취소에 따라 공소기각 결정을 받게 된다. 2, 3심이 진행 중이라면 형사소송법상 검찰이 공소취소를 할 수 없어 법원이 무죄로 판결한다. 수사 중인 사건은 ‘혐의 없음’으로 종결되며, 구속된 사람은 즉시 석방되고 구속 일수만큼 형사보상금을 받을 수도 있다.



    TV 드라마에서 보듯 경찰관이 간통 현장을 덮쳐 사진을 찍는 일도 앞으론 있을 수 없다. 다만 간통 피해 당사자가 심부름센터 직원을 고용해 물증을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은 간통의 책임을 묻는 민사소송에 필수적이지 않다. 간통 현장을 덮치지 못했어도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밤 또는 새벽에 장시간 통화하거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애정 표현을 하는 등 부부 사이에 신뢰가 깨졌다고 할 정도의 상태만 입증하면 충분히 부정행위로 인정될 수 있다. 헌재 결정에 고무돼 바람난 배우자가 먼저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민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간통을 했으니 무조건 이혼 청구를 못 한다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간통에 이르기까지 상황과 부부 양쪽 책임을 모두 따지는 게 요즘 법원의 태도다.

    법과 재판은 결국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간통죄 폐지로 무작정 환호할 일도, 비탄에 빠질 일도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늘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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