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농익은 과일향 … 주말 저녁에 잘 어울려

伊 발폴리첼라의 아마로네

  • 김상미 와인 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4-05-19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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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익은 과일향 … 주말 저녁에 잘 어울려

    농익은 과일향을 지닌 아마로네.

    옛날 사람들이 마시던 와인은 어떤 맛이었을까. 그리스와 로마시대에는 와인에 허브와 향신료를 잔뜩 넣거나 꿀 또는 포도주스를 섞어 와인이 진하고 찐득거렸다고 한다. 이는 와인이 잘 상해 시고 텁텁한 탓에 그냥은 마시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당시엔 포도 재배와 양조법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와인을 보관하는 용기가 더 큰 문제였다. 고대에는 암포라(amphora)라는 토기를 주로 이용했고 중세에는 나무통이나 가죽부대를 많이 이용했는데, 비위생적이었을 뿐 아니라 와인을 일정량덜어내고 나면 빈 공간의 공기가 남은 와인을 급속도로 상하게 만들었다. 18세기 중반 유리병과 코르크 마개를 이용하기 전까지 지금처럼 신선한 와인을 맛볼 수 있는 때는 포도 수확 직후뿐이었다. 왜 포도 수확철에 각 지방마다 큰 축제를 벌이는 전통이 있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시금털털한 와인만 마셨던 걸까. 그건 아니다. 고대 그리스인은 말린 포도로 와인을 만들면 당도가 높고 알코올도수도 높아 일반 와인보다 더 오래 보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와인은 날씨가 따뜻하고 건조한 지중해 연안에서만 생산됐기 때문에 귀족과 부유층 전유물이었다. 이후 발효 과학기술과 용기의 발달로 와인을 신선한 상태로 오래 보존할 수 있게 되면서 말린 포도를 이용한 와인 생산이 많이 줄었지만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아직도 그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이탈리아 발폴리첼라(Valpolicella) 지역은 말린 포도로 다양한 와인을 생산한다.

    발폴리첼라는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 북쪽에 위치해 있다. 과거에는 포도를 짚으로 짠 자리 위에 널어 말렸지만 지금은 현대화한 건조실을 주로 이용한다. 약 120일간 건조한 포도는 수분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면서 포도액이 농축된다. 신맛이 줄어들고 타닌 성분이 중합돼 떫은맛이 부드러워지며 향도 풍부해진다. 말린 포도는 수분이 적기 때문에 발효가 더디고 상하기 쉽다. 발효된 뒤에도 작은 오크통으로 옮겨져 3~4년간 긴 숙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 포도로 만든 와인보다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하는 길고 어려운 작업이다.

    농익은 과일향 … 주말 저녁에 잘 어울려

    이탈리아 노바이아 와이너리의 포도 건조실로, 아마로네의 재료가 된다.

    발폴리첼라에서는 말린 포도로 3가지 종류의 와인을 만든다. 아마로네(Amarone)는 그중 가장 잘 알려진 묵직하고 드라이한 와인으로 알코올도수가 15도 이상인 것이 많고 진한 색깔과 함께 농익은 과일향을 뽐낸다. 레치오토(Recioto)는 풍부한 보디와 향을 지닌 달콤한 와인인데 당도를 높이려고 아마로네보다 포도를 한 달 더 건조해서 만든다. 리파소(Ripasso)는 아마로네와 레치오토를 만들고 난 찌꺼기에 일반 레드 와인을 부어 한 번 더 발효한 와인이다. 일반 와인보다 강한 보디감과 향을 자랑하지만 타닌의 쓴맛이 두드러지는 단점 때문에 요즘은 찌꺼기보다 덜 말린 포도를 이용해 세컨드급 와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파워풀하면서도 향미가 풍부한 아마로네나 리파소는 양념을 진하게 한 소갈비찜이나 스테이크 또는 소시지구이와 잘 어울린다. 당도가 높은 레치오토는 향이 강한 고르곤졸라 치즈나 아몬드 쿠키 또는 다크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디저트로 즐기기에 좋다.

    주말 저녁식사에 고대의 향을 간직한 와인을 곁들여보는 것은 어떨까. 한 주의 피로를 푸는 느긋한 시간이 더욱 아름답게 장식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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