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北·러시아 新밀월시대

무역과 경제 등 잇단 협력 대내외 과시…국제사회 왕따 동병상련 행보에 주목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4-05-19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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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러시아 新밀월시대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 루스탐 민니하노프 대통령 일행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참관 소식을 전한 북한 ‘노동신문’ 3월 22일자 3면 사진(왼쪽). 방북한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의 평양 주체사상탑 참관 소식을 전한 ‘노동신문’ 4월 30일자 3면 사진.

    3월과 4월 러시아 고위 관료가 잇달아 평양을 찾았다. 3월 하순에는 러시아 연방 타타르스탄 자치공화국의 루스탐 민니하노프 대통령과 러시아 극동개발부 알렉산드르 갈루쉬카 장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4월 들어서는 22일부터 28일까지 러시아 에너지·안전센터 대표단이 방문했고, 24일에는 사할린 주정부 대표단이 방북해 무역·경제협조의정서를 조인했다.

    4월 28일에도 여러 행사가 이어졌다. 북한 무역성이 러시아연방 아무르 주정부와 무역·경제협조에 관한 합의서를 조인했으며, 북한 철도성은 러시아 ‘모스토비크’ 과학생산연합체와 철도운수 부문 협조에 관한 문건에 서명했다. 이날 평양에선 북·러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행사도 열렸다. 러시아 정부가 북한에 소방차 수십 대를 기증하는 행사였다. 여기에 러시아 극동지역 개발 총책임자인 유리 트루트네프 러시아 부총리 겸 극동연방지구 대통령 전권대표와 노두철 북한 내각 부총리 등 양측 고위 인사가 참석했다. 트루트네프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찾아 현오석 경제부총리와 면담하기도 했다.

    러시아서 빌린 돈 110억 달러 탕감

    4월 말 북한과 러시아는 무역결재 방식을 기존 유로화에서 루블화로 대체하는 방안에도 합의했다. 양측은 또 무역·경제·과학기술 협력과 관련한 회담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상원 격인 연방회의는 북·러 두 정부 간 협약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이 옛 소련으로부터 빌린 돈 110억 달러를 탕감하는 내용이었다.

    북한과 러시아가 가까워지는 시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의 집중 견제에 양측 모두 강력 반발하는 상황이기 때문. 북한은 새로운 형태의 4차 핵실험을 예고한 가운데 미국을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 외무성은 4월 29일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조선반도 비핵화 실현의 가능성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었다”며 “올해 11월에 진행되는 국회 중간선거에서도 오바마는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최근 미국 등 서방 세계와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크림공화국 ‘접수’에 성공한 러시아는 여세를 몰아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까지 흡수하겠다며 연일 강공을 펼치고 있다. 세력 확장에 놀란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비난 목소리를 높이며 가능한 모든 제재를 동원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확실하게 러시아 편을 들어줬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4월 말 방북한 트루트네프 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미국과 서방이 배후에서 조종해 촉발한 것”이라며 “러시아는 미국과 서방의 반(反)러시아 움직임에 맞서 자신의 이익을 위엄 있게 지켜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동안 북한과 중국 간 교류는 상대적으로 뜸해졌다. 이제 북한 우방은 중국이 아닌 러시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北·러시아 新밀월시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체육관 부근 해변에서 북한 노동자 5명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2012년 8월 촬영한 사진이다.

    “인력 송출에 관심이 크기 때문”

    北·러시아 新밀월시대

    4월 29일 중국의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북한 평안남도 순천 공군기지. 러시아제 전투기 10여 대가 활주로 옆에 줄지어 서 있다.

    4월 30일 이양구 주(駐)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가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북한과 러시아 관계를 언급한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총영사는 “최근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는 이유는 인력 송출에 관심이 크기 때문”이라며 “현재 러시아에 있는 북한 근로자 2만여 명 가운데 벌목공 5000여 명을 제외한 대부분은 건설현장에 종사하며 하루 최대 16시간씩 노동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며 필자는 베이징 특파원 기간 만났던 북한 고위급 인사의 말을 떠올렸다.

    2012년 11월 중국에서 만난 북측 인사는 대화 도중 북한 인력의 러시아 파견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들이 ‘이번에’ 러시아와 정부 간 계약을 체결했으며, 북한 인력 2만 명 정도가 러시아로 진출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이 인사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다.

    “우리는 당초 해외 파견 노동자 임금을 월 500달러 이상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요구 금액이 높아 실제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협상 과정에 금액이 자꾸 내려가서 최종적으로는 월 350달러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도 모스크바에 보내는 북한 인력은 월 820달러를 받는다. 모스크바 건설회사 8곳에 모두 이 조건으로 파견 나갔다. 그 대신 조건이 있다. 숙식 문제를 모두 자체적으로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 1인당 월 820달러를 선불로 받은 뒤 그 돈으로 거주할 아파트를 임대하고 요리사와 출퇴근버스 기사 등 필요한 일꾼을 고용하는 것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2007년 8월 ‘상대방 국가 영토 안에서 일방 국가 공민의 임시 노동활동에 관한 정부 간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이후 양측은 상호 해외에 파견한 노동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실무회의를 정례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012년 10월 초엔 평양에서 제3차 실무회의를 열고 양측이 의정서를 조인했다. 2012년 11월 북측 인사가 ‘이번에’ 북한 인력 2만여 명 파견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한 점으로 봐서, 이 실무회의 즈음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北·러시아 新밀월시대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4월 23일부터 28일까지 북한 평양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의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 인력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많다. 아마도 북한이 외국에 파견한 근로자 가운데 가장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외교부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 현황 추정치’자료를 보면 북한 인력은 중국과 러시아, 몽골, 아프리카 등 40여 개 나라에 4만6000여 명이 파견된 것으로 나타난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조봉현 수석연구위원은 “월 820달러는 상당히 높은 임금에 해당한다. 사실이라면 러시아가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매우 적극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수년 전만 해도 러시아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가 가져가는 돈은 매월 50달러 내외에 불과했다는 것. 조 연구위원은 “해외에 파견되는 북한 인력은 숙식을 포함하는 조건이라도 통상 200~300달러 를 받는다. 러시아가 이처럼 좋은 조건을 수용했다는 건 그만큼 북한과 경제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 지원 성격이 포함된 것이자 북·러 간 경제협력 강화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북·중·러 3자 미묘한 심리전

    북한과 러시아의 교류가 긴밀해지던 4월 말 중국에서 나온 이례적인 보도도 눈길을 끌었다. 관영 신화통신의 인터넷 웹사이트인 신화망 등 상당수 중국 매체가 러시아제 전투기로 가득한 북한 평안남도 순천 공군기지 사진 20여 장을 공개한 것. 이들 사진은 구글어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므로 기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북한 관련 소식, 특히 군사문제를 중국 관영매체가 다룬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북·중·러 3자 간 미묘한 심리전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이 사건을 두고 필자가 생각한 시나리오는 이렇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젊은 지도자의 존재감을 과시하려고 갈수록 도발 강도를 높이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후견국으로 불리는 ‘세계 넘버 2’ 중국은 ‘더는 북한을 감싸기만 하지 말라’는 압박을 국제사회는 물론 중국 내부로부터도 받고 있다. 북한이 자신들과 소통창구 구실을 했던 장성택 라인까지 처단해버리고 도발을 이어가자 중국은 ‘눈엣가시 북한’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은 곧바로 러시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부동항 나진항이 절실한 러시아는 단번에 북한이 내민 손을 부여잡았다. 이를 지켜보던 중국은 러시아제 전투기로 가득한 북한 공군기지 모습을 언론에 공개해 ‘물을 먹인다’.

    4월 하순 평양에서는 러시아어로 진행된 국제회의가 열렸다. 23일부터 28일까지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회의였다. 이 회의에는 최연혜 코레일(KORAIL·한국철도공사) 사장이 참석했다. 평양 회의에서 OSJD 대표단은 내년 OSJD 물류 분야 회의와 2019년 OSJD 대표단 정례회의를 서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코레일 측은 최 사장이 이번 방북 기간 남북한 철도협력 방안과 교류 활성화에 대해 의견교환을 했다고 전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 어떤 내용의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필자는 ‘주간동아’ 935호에서 최 사장이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김기석 위원장과 전길수 철도상(장관급)을 별도로 만나 남북 철도협력 문제를 논의할 계획을 가지고 출국했다고 전한 바 있다. 최 사장은 예정대로 평양에서 이들을 모두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최 사장은 북한이 중국 기업과 추진하는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남한 기업이 참여하는 방안 등을 장시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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