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8

2014.05.19

뇌·장기 손상 줄이려 인위적 ‘동면상태’

심근경색 치료 ‘저체온요법’ 생존율 크게 높지만 주의 깊게 실시해야

  •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입력2014-05-19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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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뇌·장기 손상 줄이려 인위적 ‘동면상태’

    스텐트 시술 과정(왼쪽)과 한 병원에서 저체온요법을 받고 건강을 되찾은 환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입원하면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회장이 받은 ‘저체온요법’에 대한 관심도 높다. 심근경색이란 어떤 증상일까. 그리고 사람을 동면상태로 만든다는 ‘저체온요법’은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가 있는 것일까.

    북한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원인은 모두 심근경색이었다. 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 임성훈 씨와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 씨의 사망 원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돌연사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바로 심근경색이다.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 지속

    심장은 사람의 몸 곳곳에 혈액을 보내는 장기다. 하지만 심장 역시 살아 있는 세포로 이뤄져 있다 보니 피가 흘러야 움직인다. 이렇게 심장이 자기 자신에게 피를 흘려 보내는 혈관을 ‘관상동맥’이라 하는데, 이 혈관이 갑자기 막히거나 좁아지면 결국 심장이 멈추고, 따라서 온몸에 피를 보내지 못해 죽게 된다.

    심근경색을 치료하려면 먼저 정지한 심장을 제세동기(전기충격기) 등으로 되살려야 한다. 그다음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하는데, 큰 수술이 필요 없고 효과도 좋기 때문에 ‘스텐트’라는 금속코일을 넣는 방법을 많이 쓴다. 스텐트는 스프링이 내장돼 혈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벌어지는 장치로 혈관이 다시 막히는 것을 막아준다. 스텐트 처치를 하기 곤란할 때는 ‘바이패스 수술’을 하기도 한다. 자기 몸에서 뽑아낸 정맥을 심장에 이식해 대체 혈관을 만들어주는 방법이다.



    관상동맥이 막힐 때 전조 증상은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30분 이상 지속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체한 것처럼 메스껍거나 호흡 곤란을 느끼는 것도 전조가 될 수 있다. 증상이 시작되면 2시간 이내가 흔히 말하는 ‘골든타임’이다. 이 시간 안에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실제 환자가 병원까지 가는 데 걸린 시간은 평균 140분이다.

    저체온요법은 심정지(心停止·심장이 효율적으로 수축하는 데 실패해 피의 일반적인 순환계가 멈추는 현상) 후 생기는 뇌와 장기의 손상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사람을 동면상태로 만드는 처치법이다. 특히 심장박동이 멈췄던 사람을 제세동기 등으로 치료해 심장박동이 돌아온 경우 주로 사용한다.

    인체는 심장박동이 멈추면 갑자기 줄어든 혈액량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적응한다. 뇌는 산소 사용량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가수면 상태에 돌입한다. 이때 갑자기 심장박동이 돌아오면 많은 양의 피가 갑자기 공급되면서 뇌나 장기가 붓거나 손상될 수 있다. 심폐소생술로 심장박동이 다시 돌아와도 사망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저체온요법을 실시할 때는 먼저 전신에 물을 뿌리고 바람을 쏘여준다. 차가운 쿨링매트를 깔기도 하고, 섭씨 4도 정도로 차가운 식염수를 정맥에 주사해 체온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얼음주머니를 머리와 양쪽 겨드랑이에 넣어 뇌로 가는 혈관을 식혀줄 수도 있다.

    저체온요법의 효과는 의학계에서 이미 검증됐다. 2010년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저체온요법을 실시한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23.2%였다. 일반적인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2.5%)에 비해 9배나 높다. 심정지 후 뇌부종이나 저산소성 뇌손상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환자의 뇌파와 심장박동 상황을 살펴보며 체온 조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체온을 조금만 잘못 조절하면 저체온증 때문에 다시 심장이 멎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저체온요법을 실시할 때는 통상 24시간 동안 체온을 32~34도로 낮게 유지한 뒤 다시 24시간 동안 체온을 서서히 올린다. 의료진이 환자 뇌파나 심장 상태를 보면서 회복시간을 면밀히 조절하기 때문에 개인마다 몇 시간 정도 차이가 난다. 보통 한 시간에 0.25도씩 체온을 올려준다. 이 과정에서 환자가 정상 체온을 회복하면서 의식을 되찾게 된다.

    5단계 ‘생존 고리’ 공식 각광

    뇌·장기 손상 줄이려 인위적 ‘동면상태’

    심근경색은 관상동맥이 막히거나 좁아져 심장이 멈추는 질환으로, 심장이 멈추기 전 가슴이 조이는 듯한 통증이 30분 이상 지속되거나 체한 것처럼 속이 메스꺼운 전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의식을 되찾은 환자는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억 혼란 등을 겪기도 하는데, 보통 과거 기억부터 역순으로 되돌아온다. 어릴 적 기억만 갖고 있다 의식이 또렷해지면서 점점 성인기의 기억이 돌아오는 식이다. 예를 들어 저체온요법 치료를 마치고 회복 중인 환자에게 “지금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으면 ‘노무현’부터 대답하다가 ‘이명박’ ‘박근혜’ 식으로 바꿔가며 답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알츠하이머 증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알츠하이머를 겪는 사람은 최근 기억부터 잊기 시작해 차츰 어린 시절 기억만 갖게 된다. 원인은 사람의 뇌 부위에서 최근 기억을 만들고 활용하는 ‘해마’가 먼저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오래된 기억을 저장하는 뇌 부위는 늦게 파괴되는 경향이 있어 기억을 되찾을 때도 과거 기억부터 재생된다. 물론 저체온요법은 알츠하이머와 달리 일시적인 기능장애에 불과하므로 완전히 회복한 다음에는 거의 모든 기억이 문제없이 되돌아온다.

    이건희 회장은 이런 여러 부작용을 최소화하려고 60시간 정도 장시간 저체온요법을 실시했으며, 저체온요법이 끝난 후에도 장시간 진정제를 투여하면서 안정 치료를 병행한 것으로 보인다.

    저체온요법의 효과가 밝혀지면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5단계로 연결된 ‘생존 고리’ 공식이 최근 각광받고 있다. 먼저 △심장이 정지된 환자를 빨리 알아채고 119 등을 통해 도움을 요청한 다음 △인공호흡과 가슴 압박을 통해 응급처치를 실시하고 △병원에 옮긴 환자를 전문 의료진이 제세동을 실시하며 △이후 스텐트 시술이나 수술을 포함한 전문적인 치료를 병행하고 △환자 상태를 살펴 저체온요법을 포함한 통합 치료를 실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앞의 네 가지는 2010년 이전의 심폐소생술 표준치료법이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2010년 국제공용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에서 강조하는 것으로, 최근에는 표준치료(치료 효과가 가장 높은 방식)로 간주된다. 분당차병원 심장센터 흉부외과 김시호 교수는 “저체온요법을 포함한 통합 회복 치료를 사용하면 생존율을 크게 높일 수 있지만, 전문 의료진이 환자 상태에 따라 주의 깊게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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