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36

2014.05.07

“우리도 큰 대회에서 메달 따라우”

스포츠광 김정은 지시로 북한 내 ‘스포츠 열풍’…인천아시안게임 참여 여부 주목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입력2014-05-07 10:2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리도 큰 대회에서 메달 따라우”

    2013년 7월 동아시안컵 대회에 출전하려고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이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이들은 평양을 출발해 중국 베이징을 거쳐 인천에 도착했다. 북한 여자 축구대표팀이 한국에 온 것은 2005 동아시안컵 대회 출전 이후 8년 만이다.

    김정은 체제 들어 북한에서 돋보이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스포츠 열풍’이다. 이는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 스포츠광이라는 점과 연관 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유명한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에서 10대 시절 김정은에 대해 운동실력이 뛰어났고 농구를 각별히 좋아했다고 묘사했다. 김정은이 자신에게 “나는 매일 제트스키를 타고, 해양 스포츠를 즐기고, 롤러블레이드와 승마를 하는데 일반 국민은 어떻게 하고 있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도 전했다.

    김정은은 최장신 농구선수인 이명훈 등과 팀을 만들어 경기를 즐기는가 하면, 이명훈의 미국프로농구(NBA) 진출을 추진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농구 사랑은 NBA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지난해와 올해 모두 네 차례나 초청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최고지도자의 이러한 스포츠 사랑이 북한 사회 전반에 스포츠 열풍으로 이어진 것이다.

    김정은 집권 첫해인 2012년 여름 런던올림픽에 참가한 북한은 금메달 4개와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이후 20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다. 북한 매체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김정은 체제 찬양으로 연결했다. 북한은 이어 열린 런던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에도 대표단을 보냈다. 패럴림픽에 대표단을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그해 11월 북한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발족했다. 위원장은 지금은 처형돼 사라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이때부터 북한은 ‘체육강국 건설’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체육강국 건설’ 소리 높여 외쳐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발족 이후 북한 측 관련 인사들은 실적을 얻으려고 분주하게 뛰었다. 지난해 초 중국 베이징 특파원 시절 필자는 이러한 움직임을 취재했다. 당시 중국 내 취재원 한 사람은 “김정은 제1비서가 ‘우리 동포(남한)도 축구와 양궁에서 메달을 잘 따는데 같은 민족인 우리는 왜 못 하고 있나. 우리도 할 수 있다. 큰 대회에서 메달을 따도록 노력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지시는 런던올림픽 이후 내려졌다고 한다.



    런던올림픽에서 북한 성적은 우수했지만, 한국이 양궁에서 금메달 3개를 따고 축구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데 비해 북한은 이들 종목에서 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했다. 김정은은 “우리 민족은 예부터 활을 잘 쏘는 민족인데 왜 남쪽은 되고 우리는 안 되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당시로부터 가장 가까운 국제 체육행사인 인천아시안게임을 언급하며 메달에 도전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특히 2010년 남아공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남북 간 축구 실력 격차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이 대회에는 북한도 참가했다.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 이후 첫 본선 진출이었다. 북한 대표팀은 잉글랜드월드컵 당시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8강에 올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북한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남아공월드컵에 대한 관심이 뜨거울 수밖에 없었다. 공식 슬로건 역시 ‘또다시 1966년처럼, 조선아 이겨라!’였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브라질과 포르투갈 등 세 팀에 12골을 내주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와 달리 한국 대표팀은 원정 대회 첫 16강 진출이란 성과를 거뒀다. 희비가 엇갈린 것이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로 발족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의 지상과제는 양궁과 축구에서 괄목할 만한 실력 향상을 통해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었다. 위원회 측은 스포츠 전문가들도 자문했다. 그 결과 첨단 체육시설과 장비를 갖추고 세계적 수준의 교육 및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북한 선수의 기본기와 정신력은 뛰어나지만 체육시설과 장비가 워낙 수준이 뒤떨어져 기량 향상을 막고 있다는 얘기였다. 위원회는 외국 첨단 체육장비를 확보하는 것을 구체적인 목표로 세웠다. 김정은 앞에 가시적 성과로 내놓기에도 좋았다.

    북한 양궁팀 한국산 장비 사용

    “우리도 큰 대회에서 메달 따라우”

    2002년 9월 29일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북측 응원단이 환한 표정으로 남북선수단 동시입장을 축하하고 있다.

    지난해 초 외국에 나가 있던 장성택 라인 일꾼들에게 첨단 체육장비를 확보하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장성택 본인의 지시였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인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필자에게도 이러한 제안이 간접적으로 전달됐다. 일부 한국 측 인사는 북측과 직접 접촉하기도 했고, 북측이 성과를 얻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국산 활과 화살이다.

    지난해 3월 북한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4·25국방체육단과 압록강국방체육단의 양궁 경기를 관람한 뒤 선수들이 사용하는 활과 화살을 살펴보는 장면을 공개했다. 당시 공개한 활과 화살이 바로 한국 업체 제품이었다. 김정은은 이날 “활쏘기 경기에서도 어떤 기재를 이용하는가에 따라 경기 성과가 크게 좌우된다. 선수들에게 제일 좋은 기재들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터키 안탈리아에서 열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는 남한 감독이 북한 선수의 멘토 구실을 하기도 했다. ‘연합뉴스’는 이 대회에서 장영술 한국 양궁대표팀 총감독이 북한 선수에게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줬다며 자세한 기사를 전했다. 이 대회에서도 북한은 한국산 장비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북한은 양궁에서 괄목할 만한 실력 향상을 보이고 있다. 4월 말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양궁연맹(WA) 월드컵에서 북한은 사상 첫 월드컵 메달 목전까지 다가갔다. 세계 랭킹 33위인 북한 여자 대표팀이 4위를 기록한 것. 특히 랭킹 11위인 미국과 5위인 우크라이나를 잇달아 격파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에 인천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사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이던 장성택은 처형됐고, 최근 남북관계는 북한이 과연 인천아시안게임에 참여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할 정도로 악화됐다. 잇단 미사일 발사와 4차 핵실험 예고,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향한 포탄 발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원색적 실명 비난 등 남북관계를 꽁꽁 얼어붙게 하는 강경행보의 연속이다.

    북한은 현재 인천아시안게임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 의사를 전하지 않은 유일한 국가다. 물론 참여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2차 연평해전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02년에도 북한은 부산아시안게임 참여를 막판에 결정했기 때문. 다만 당시는 ‘북한이 참여하는 아시안게임’을 김대중 정부가 적극 추진했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인천시는 부산아시안게임 이상으로 한반도 평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남북 공동의 아시안게임을 개최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여기에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고조된 화해무드도 한몫했다. 인천시는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선보였던 한반도기를 든 남북선수단의 동시입장 외에 북한 예술단이 참여하는 개·폐회식 공연, 북한 예술단의 문화공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계획했다. 이랬던 분위기가 남북관계 급랭으로 급반전한 것이다.

    핵·스포츠 병진 추구

    통일부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4월 초 통일부는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 참가 의사를 공식적으로 통보하면 필요한 지원을 할 것이라면서도, 남북 단일팀 구성이나 한반도기 사용, 동시입장 등에 대해서는 “현 상황에서는 부적절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일단 인천시는 북한이 아시안게임에 참여할 것으로 보고 모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스포츠 분야 종사자에게도 ‘유혹의 땅’이다. 베이징 특파원 시절 한국의 유명 스포츠계 인사들이 베이징을 찾아 북측과의 교류에 대해 논의한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대북정책을 실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면서 스포츠 분야에서도 공동 이벤트를 기획하는 물밑접촉이 늘었다. 경평(京平)축구 유치 경쟁도 치열했다.

    하지만 대부분 성사되지 못했다. 이유는 역시 풀리지 않는 남북관계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가 경평축구를 추진하는 것에 대해 통일부가 “비슷한 경기를 하자는 곳이 너무 많아 경쟁이 될 것 같고 축구 교류는 파괴력이 있는 것이라서 현재는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많은 이가 남북 체육교류에 매달리는 이유 역시 ‘통일은 대박’이라는 믿음과 연결된다. 공동경기가 잘만 성사되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동시에 후원과 광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것이다. 이런 경제적 이익과는 상관없이 순수하게 북한 체육발전을 위해 뛰겠다는 이도 있다. 필자가 만난 한 체육계 인사는 아직 척박하지만 가능성 있는 북한에서 자신의 스포츠 기술과 노하우를 펼쳐보겠다는 여생의 꿈을 지니고 있었다. 북한 정치는 그의 관심 밖이었다.

    최근 평양이 쏟아내는 말들을 감안하면 북한의 도발수위는 앞으로도 당분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력시위를 하는 동시에 ‘체육강국 건설’을 위한 움직임도 이어질 것이다. 북한은 4월 말 상하이에서 열린 WA 월드컵에 참가한 데 이어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도 참가했다.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은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에도 참가할 것이라고 전해왔다. ‘핵·경제 병진’에 이어 ‘핵·스포츠 병진’을 추구하는 분위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