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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20년 전 4월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20년 전 4월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

20년 전 4월 시애틀의 잠 못 이룬 밤

록밴드 너바나. 맨 앞이 커트 코베인이다.

1994년 4월 1일, 하루 전날 미국 시애틀 레이크시티 총포점에서 권총을 구매한 스물일곱 살 커트 코베인은 로스앤젤레스 호텔에 있는 아내 코트니 러브에게 전화를 걸었다. “코트니,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당신이 정말 좋은 음반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이혼하자는 말이야? 아니면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인 거야?” 일주일 전 코트니는 지인들에게 커트와의 결혼 생활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던 차였다. “아냐.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기억해줘.” 커트와 코트니의 마지막 통화내용이다. 커트의 약물 의존 증상이 극에 달했고 그 이유로 건강 악화설이 끊이지 않을 무렵이었다.

그다음 날 코트니는 사립탐정을 고용했다. 커트는 다시 행방을 감췄다. 4월 4일 시애틀 경찰에 커트 어머니가 실종 신고서를 접수했고, 다음 날 시애틀 음악지 ‘더 로켓’은 너바나가 해체됐다고 전했다. 커트는 집으로 돌아가 약을 복용한 후 붉은색 잉크로 코트니와 딸 프랜시스에게 보내는 편지 한 장을 휘갈겨 썼다. 그 직후 커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세상은 사흘이 지나서야 알게 됐다.

비가 내리던 4월 8일 금요일, 모든 신문과 방송은 그의 자살 소식을 전했다. 안전 시스템을 점검하려고 오전 8시 40분 커트 집을 방문한 전기기술자 게리 스미스가 최초발견자였고, ‘…I love you. I love you’는 그가 유서에 남긴 마지막 문장이었다.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라디오 방송국에는 ‘나도 자살하고 싶다’는 수많은 사람의 사연이 쏟아졌다. 커트의 집 앞은 흐느끼는 젊은이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닐 영의 ‘My, My, Hey, Hey’ 가사에서 따온 ‘기억해주길 바란다. 서서히 사라져버리기보다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것이 낫다는 것을’이라 적힌 유서가 이틀 후 장례식에서 코트니에 의해 낭독됐다. ‘난 너바나가 싫다. 더는 멤버들과 연주할 수 없다…. 난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낭독이 끝나자 ‘Heart Shaped Box’가 흘러나왔고 젊은이 500여 명이 분수대에 뛰어들어 옷을 벗어던졌다. 다른 젊은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커트에게 보내는 팬들의 마지막 경의였다.

4월 14일 접수된 사망진단서에는 커트의 직업이 시인이자 뮤지션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시대의 시인이자 뮤지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혁명가이기도 했던 커트의 죽음이 친지와 팬들에게만 애도 대상이 된 것은 아니다. 1960년대 모드족(Mods·영국의 저항적 청년계층)을 대표했던 더 후의 피트 톤젠드는 커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꺼지지 않는 록의 불꽃’ 뭐 이런 말이 꽤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록의 불꽃을 지피는 연료는 바로 인간의 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커트 코베인은 지미 헨드릭스, 짐 모리슨, 재니스 조플린이 지펴왔던 록의 불꽃을 다시 피워 올리며 1990년대 록의 만신전에 이름을 올렸다. 커트가 지핀 불꽃은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 인디신을 태동하게 했다. 다음 호엔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78~78)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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