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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다시 부는 벤처 열풍 01

커져라 세져라, 벤처

벤처 창업 통한 경제 활력 불어넣기 총력 드라이브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커져라 세져라, 벤처

커져라 세져라, 벤처

인터넷 창업기업 지원을 위해 민관 협력으로 설립한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3월 18일 서울 삼성동에서 개소식을 열고 본격적인 출범을 선언했다.

‘창업, 그냥 한 번 해봐.’

산업통상자원부가 주최하는 ‘청년창업 토크 콘서트’ 제목이다. 4월 3일 경기 수원에서 시작해 4월 14일 서울까지 6회에 걸쳐 이어지는 이 콘서트 제목은 지금 정부가 국민을 향해 전하려는 메시지, 그 자체다.

출범 초기부터 ‘창조경제’를 강조해온 정부는 최근 구체적 실현 방안으로 ‘창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특히 ‘고위험 고수익’을 특징으로 하는 ‘벤처’ 창업 활성화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이 분야에 2017년까지 투입하겠다고 밝힌 자금만 4조 원대. 지원정책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내고 있다.

총 7600억 원 자금 지원

커져라 세져라, 벤처

1998년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벤처 마트 전시장에 입장하기 위해 관람객이 줄지어 서 있다. 2000년 9월 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벤처기업 전국대회’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2000년 12월 권력형 비리사건에 연루된 벤처기업인 진승현씨(왼쪽)가 변호사와 함께 서울 서초구 서울지검 청사에 출두하고 있다(위부터).

목표는 분명하다. 활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에 ‘벤처’로 돌파구를 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29세 이하 청년 취업자 수는 379만 명, 청년 고용률은 39.7%에 그쳤다.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청년실업률도 10.9%로 2000년 1월(11%)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이런 현실을 개선하려고 정부가 내놓은 정책 중 먼저 눈에 띄는 건 자금 지원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청년창업펀드와 에인절(angel)투자펀드에 4600억 원을 투입한다. 여기에 민간재원 3000억 원을 합쳐 총 7600억 원 규모로 만들 방침이다. 청년창업펀드는 창업 3년 이내 기업 중 대표이사가 만 39세 이하이거나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 만 29세 이하인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 에인절투자펀드는 창업 7년 이내 기업에 에인절이 투자할 경우 정부가 같은 금액을 매칭 투자하는 펀드다. 에인절은 기술은 있지만 초기 자금이 부족한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개인을 말한다.

정부는 또 해외 자본이 국내 벤처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2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요즈마펀드’를 만들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젤형 기업’(매출액 또는 고용자 수가 3년 연속 평균 20% 이상 고성장하는 기업)을 선정해 총 1조1900억 원을 지원하는 등 이미 창업한 벤처의 성장도 도울 방침이다.

벤처 M·A(인수합병) 활성화 정책도 내놨다. 기업인이 성공한 벤처기업을 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는 구조를 마련한 것.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기대하는 효과는 우리나라에 ‘창업→성장→자금 회수→재도전’의 벤처 선순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민화 한국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벤처는 기본적으로 다산다사(多産多死) 속성을 갖고 있다. 많이 생기고, 또 많이 망한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 발전하고, 고용이 창출되며, 경제가 성장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건 이 과정이 역동적으로 진행되는 벤처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명예회장이 ‘복원’을 언급한 건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 탄탄한 벤처생태계가 형성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벤처업계는 1990년대 중반 인터넷 사용이 본격화하면서 태동했다. 이후 95년 벤처기업협회 설립, 96년 코스닥 개장, 97년 벤처기업특별법 제정 등이 이어지며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를 누렸다. 창의력 있는 인재가 앞다퉈 창업에 뛰어들고 돈도 넘쳐났다. 98년 600대에 그쳤던 코스닥지수는 2000년 2830선을 돌파할 만큼 급등했다. 이민화 명예회장은 “미국이 50년 걸려 만든 벤처생태계를 불과 5년 만에 따라잡은 것이라 당시 한국 벤처업계에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세계 경영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고(故) 피터 드러커 교수는 한국을 기업가정신 1위 국가로 지목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호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벤처업계가 연루된 권력형 비리사건, 이른바 ‘게이트’가 잇달아 터진 것. 세계적인 닷컴버블 붕괴로 경영 환경도 악화했다. 이후 벤처기업 수는 2001년 1만1392개에서 2002년 8778개, 2003년 7702개로 2년 만에 32%나 급감했다. 1999~2000년 주가 상승률이 2만123%에 달했던 벤처기업 리타워텍 등 코스닥 열풍을 이끈 기업도 줄줄이 퇴출당했다.

당시 정보기술(IT) 벤처기업을 운영하다 부도를 맞은 한 기업인은 “사회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벤처에 호의적이던 정부가 각종 규제정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를 ‘1등 신랑감’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비리 주범’보듯 바라봤다”고 회고했다. 그는 “벤처에 뛰어들었던 인재 가운데 상당수가 그런 분위기에 충격을 받아 업계를 떠났다. 그 후에도 한동안 우리 사회 엘리트가 벤처 쪽에는 얼씬도 안 하지 않았나”라며 “다 당시 학습효과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모바일 창업환경 구축

그러나 최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창업 법인 수는 2008년 5만855개에서 2012년 7만4162개, 지난해에는 7만5574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벤처펀드 투자액도 1조3845억 원으로, 벤처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2조211억 원)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업 의향 설문조사에서 ‘창업할 뜻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 역시 2010년 14.5%에서 지난해 39.6%로 크게 높아졌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면서 구축된 모바일 환경도 이런 변화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페이스북, 트위터처럼 모바일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갖춘 벤처기업이 글로벌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면서 벤처 창업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분위기를 잘 활용하면 우리나라가 2000년대 초반에 이어 또 한 번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벤처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선결과제로 거론되는 건 ‘민간 부문 육성’이다.

3월 19일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2014 창조경제글로벌포럼’에서 일카 키비마키 핀란드 알토대 ‘스타트업 사우나’ 대표는 “벤처 산업이 활성화하려면 실제로 사업을 하는 민간 부문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 필요에 따라 정부 개입이 허용된다 해도 단기 개입에 그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타트업 사우나’는 핀란드의 대표적인 에인절투자재단이다.

국내 전문가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3월 25일 창조경제연구회와 코스닥협회, 벤처기업협회 등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코스닥 재건을 통해 민간 자금이 자유롭게 벤처에 투입되는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996년 개장한 코스닥은 벤처기업의 ‘금융동맥’으로 각광 받으며 급성장해 2000년에는 거래금액이 증권거래소(거래소)를 넘어섰다. 미국 나스닥에 이은 세계 2위 벤처 금융 시장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벤처 열풍이 꺼진 뒤 ‘거품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2005년 거래소에 통합된 상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위험 고수익 신시장’(코스닥)을 ‘투자자 보호를 바탕으로 운영하는 전통시장’(거래소)에 통합함으로써 코스닥이 기능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벤처생태계가 활성화하려면 민간 투자자가 투자금을 쉽게 회수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는 기업 상장요건과 공시규정 등이 까다로워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경우 벤처캐피털이 투자금을 회수하는 수단은 주로 M·A와 상장(IPO)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M&A 비중 1%, IPO도 18%에 그치고 있다. 이민화 명예회장은 이에 대해 “벤처생태계는 투자시장과 회수시장의 순환으로 형성된다. 회수시장 정비 없이 자금 공급만 확대하는 건 먹기만 하고 배설하지 않는 것과 흡사하다”며 “4조 원 투자보다 더 시급한 건 코스닥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커져라 세져라, 벤처

3월 19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2014 창조경제글로벌포럼’ 개회식에서 정홍원 총리가 축사를 하고 있다(왼쪽). 개방형 혁신생태계의 발전 방향에 대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는 크리스 앤더슨 3D로보틱스 최고경영자.

‘도전과 혁신’ 기업가정신 확산

벤처기업이 일정 기준을 충족해야만 각종 지원을 하는 현행 ‘벤처인증제’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남민우 한국벤처기업협회장은 “2002년 ‘무늬만 벤처’를 걸러내겠다는 취지로 기준을 만든 탓에 미래 가능성보다 현재의 재무건전성을 중시한다”며 “기술력과 도전정신 등을 중심에 두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경제 체질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80년대 미국 스탠퍼드대 유학 중 원자현미경 기술을 상용화해 실리콘밸리에서 벤처기업을 창업했고, 97년 같은 기술로 국내에 파크시스템스를 창업한 벤처기업인 박상일 대표는 “우리나라 벤처기업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축구장에서 ‘인재 올스타팀’ 격인 대기업과 맞서 싸운다. 심지어 심판도 편파적이다. ‘올스타팀’ 은 반칙해도 좀 봐주지 않나. 이런 환경에서 벤처기업이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며 “이제는 정부가 경제 성장을 주도하겠다는 자세를 버리고, 벤처와 대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평평한 운동장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중소기업 편에 서서 필사적으로 대기업을 감시, 견제해야 비로소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밝혔다.

사회 전반에 기업가정신을 확산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기업가정신의 핵심은 ‘도전과 혁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자세’다. 최근 정부는 청소년 대상 창업프로그램인 비즈쿨(Bizcool)을 전국 초중고교의 5% 수준인 500개 학교에 만들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대학에서 학업과 창업을 병행할 수 있는 창업특기생제도를 확대하고, 대학 간 공동으로 체험형 창업 강좌를 운영하는 공동창업대학 등도 설치할 방침이다.

1990년대 말 벤처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벤처 열풍 속에서 신기술이 탄생하고, 산업 체질이 현대적으로 바뀌었다. 저성장, 저고용 늪에 빠진 한국 경제가 또 한 번 ‘벤처’를 통해 일어설 수 있을까. 정부의 지원 드라이브와 더불어 많은 이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간동아 2014.04.08 932호 (p14~16)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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