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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재의 중국 속 북한

죽으로 아침 때우고 혹사당해도 말 못 하고

투먼과 훈춘 북한 근로자 2000명가량 근무…열악한 근로 환경에 인권 침해도 늘어

  •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죽으로 아침 때우고 혹사당해도 말 못 하고

죽으로 아침 때우고 혹사당해도 말 못 하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유시간을 즐기는 북한 여성 근로자들.

지난해 12월 중순 필자는 1년여 만에 중국 투먼을 찾았다. 투먼은 2012년 5월 중국에서 처음으로 북한 인력을 공식 수입한 곳이었고, 그해 9월 투먼과 이웃 훈춘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300여 명 선이었다. 그사이 북한 근로자는 얼마나 늘었고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일하고 있을까. 그게 무엇보다 궁금했다.

그런데 예전에 도움을 줬던 취재원이 갑자기 필자를 피했다. 장성택 처형 이후 심상찮은 분위기 때문이었다.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누비는 동안 북한 인력의 윤곽이 파악됐다. 지난해 12월 기준 투먼에 1100여 명, 훈춘에 800여 명 등 총 2000명 가까이 됐다. 1년 남짓 만에 6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투먼에서는 봉제와 완구, 자동차부품, 애니메이션 등 5개 업종에서, 훈춘에서는 봉제와 수산물 가공업 분야에서 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1년 남짓 6배 이상 급증

북한 인력 고용 업체가 모인 투먼 경제개발구 정부청사 주변도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었다. 못 보던 건물이 꽤 들어섰고 곳곳에서 새로운 건설공사도 한창이었다. 특히 북한 인력 전용 기숙사 건물 왼편에 투먼 공안의 파출소가 새로 들어선 게 눈에 띄었다. 급증하는 북한 인력을 관리하려고 공안당국이 별도로 설치한 것이었다. 파출소 주변은 인기척 없이 조용했다.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을 어렵사리 찾아갔다. 내부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다. 북한 인력 수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작업 공간이 겉보기와 달리 상당히 넓은 데다, 이곳을 북한 여성 인력 수백 명이 꽉 메우고 있었다. 모두 작업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인력 관리를 담당하는 북측 인사가 수시로 공장 사무실에 찾아와 공장 관리인과 의견을 나눴다. 해당 업체와의 약속 때문에 내부 촬영을 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내부를 찍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들 모습을 촬영하는 것을 아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 북한 근로자들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기숙사 건물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는 순간을 포착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전 11시 투먼 경제개발구 정부청사 정문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렸다. 12시가 가까워지자 북한 근로자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동일한 근무복 차림의 여성들이 줄을 맞춰 식당으로 걸어갔다. 행렬에는 모두 인솔자가 있었다.

기숙사 정문 쪽으로 차를 움직였다. 파출소에서도, 투먼 경제개발구 정부청사에서도 우리 차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북한 근로자들 모습과 표정을 생생히 관찰할 수 있었다. 춥다며 어깨를 움츠린 채 종종걸음을 하는 사람, 삼삼오오 팔짱을 끼고 미끄러운 길 위를 조심조심 걷는 사람…. 식당에서 멀리 떨어진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오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들 역시 버스에서 내리자 어김없이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식당 입구에 차를 붙여 세워 놓으려니 아무래도 이상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누군가와 통화하는 척 연기했다. 그래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였을까. 앞뒤에서 사람이 모여들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통로를 막아선 채 전화통화를 하는 남자가 영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특파원 신분도 아닌 데다, 이미 투먼 공안당국에 ‘요주의 인물’로 등록된 필자로선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요한 촬영만 마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죽으로 아침 때우고 혹사당해도 말 못 하고

줄을 맞춰 식당으로 들어서는 북한 근로자들. 바닥에 놓인 찜통에서 바로 배식을 받을 만큼 식사환경이 형편없어 보였다(작은 사진).

북한 근로자들은 혼잡을 피하려고 시간대별로 식당을 찾았다. 그래도 1100명을 수용하기엔 너무 협소했다. 점심시간 내내 식당 안팎이 사람으로 북적였고, 식사 환경도 엉망이었다. 이런 풍경은 한 중국 식당업체가 투먼시 정부로부터 식당 운영 독점권을 따낸 뒤 생겼다고 현지 취재원은 전했다. 그러나 북한 근로자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정작 따로 있었다. 매일 아침식사가 밥이 아닌 죽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밥을 줬지만 한족 중국인이 식당 운영 독점권을 따낸 뒤 바뀐 모양이었다. 보통 죽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중국인의 식습관을 그대로 따른 것이다. 그야말로 가장 심각한 민원사항이라고 했다.

열악한 환경, 열악한 식사였지만 불만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오히려 포만감 때문인지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팔짱을 끼고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얼음조각을 이리저리 발로 차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빙판 길에서 기차놀이를 하며 빙빙 돌다 한 명이 넘어지자 모두 한꺼번에 넘어져버렸다. 까르르르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얼굴마다 천진난만함이 묻어났다. 20대 여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푸릇푸릇한 젊음이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힘들게 일해도 청춘은 어쩔 수 없는 청춘이었다.

하루 16시간 살인적 노동 강요도

하지만 늘 즐거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이들은 일과를 마치고 수시로 소집돼 집단 정신교육을 받았다고 현지 취재원은 전했다. 교육 내용은 장성택에 대한 비판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에 대한 절대 충성.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게 하려는 사상 단속이었다.

장성택이 처형된 다음 날, 중국의 한 취재원은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 전역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에게 오늘밤 10시 TV 앞으로 모이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또 무슨 긴급발표를 하는 거 아니냐며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당시 집합이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장성택 처형 이후 이런 종류의 소집이 잦았던 것은 분명해 보였다. 물론 공장주 처지에서 보면 갑자기 야간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이지만, 싼값에 좋은 인력을 고용한 ‘행운’을 얻은 대가이기도 하다.

현지 취재원들은 북한 인력의 중국 파견이 올해 들어서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업체가 이들을 혹사시키며 부당하게 대우해 문제가 불거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북한 근로자들은 아무리 힘들어도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한다는 소문이 나자 하루 16시간씩 살인적인 노동을 강요한 업체도 있었다. 이 업체 공장주는 “조선 사람은 이렇게 부리는 것”이라며 주변에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북한 인력이 더 많이 나올수록 이들의 인권 침해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을 터.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건 과연 누구일까. 중국일까, 아니면 북한일까.



주간동아 2014.03.17 929호 (p50~51)

김승재 YTN 기자·전 베이징 특파원 sj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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