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7

2014.03.03

대한민국 LP 음악의 모든 것

‘대중가요 LP 가이드북’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4-03-03 10: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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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LP 음악의 모든 것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의 저자 최규성.

    한국에서 대중음악이 담론 영역으로 들어온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면서 정치·사회 영역에만 집중되던 운동 에너지가 문화로 향했다. 영화, 음악, TV는 감상과 소비 대상에서 분석과 탐구 대상으로 바뀌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 신(新)철학은 대중문화를 담론으로 승격시키는 새로운 도구였다. 더불어 대중음악의 화자는 ‘음악칼럼니스트’에서 ‘음악평론가’로 이동했다.

    그런 변화의 시기가 오기 전부터 꾸준히 음반을 모으던 사람이 있다. 사춘기 무렵 우연히 접한 딥 퍼플의 ‘하이웨이 스타(Highway Star)’로 음악에 빠져들어 40년간 음반을 수집해왔다. LP 2만 장, CD 2만 장 등 방대한 음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고 옛날 신문과 잡지, 인터뷰를 통해 막대한 정보를 축적했다. 그의 이름은 최규성. ‘한국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음악계에서 ‘절판 소장’이란 별명으로 널리 알려졌다. 절판된 가요 LP가 필요할 때 연락하면 100% 구할 수 있다는 전설 같은 일화 때문이다. 지독한 컬렉터이자 뛰어난 사진가, 음악평론가이기도 한 그가 생애 첫 책을 냈다.

    제목은 간결하다.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안나푸르나). 내용은 엄청나다. 신중현의 첫 밴드였던 애드포의 데뷔 앨범부터 조용필의 ‘헬로(Hello)’에 이르는 50년 한국 대중음악사를 오직 LP에 기반을 두고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음반은 2000장에 이른다. 저자는 이들 LP를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책에 담았다. 뮤지션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음악의 가치, LP의 판본, 시장 가격도 빼놓지 않고 서술한다.

    이 책은 모두 9개 장으로 구성된다. 일반적인 음악사 서적이라면 연도별 혹은 장르별로 장을 나누겠지만 최규성은 다른 방식을 취한다. 한 시대를 구분 짓는 대표적인 움직임마다 한 개 장을 할애하는 형식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독자성을 이끌었던 신중현의 작품이 첫 번째 장을 채웠다. 그리고 포크, 그룹사운드 등 장르 및 음악활동의 전기마다 각 장을 부여해 또 하나의 시간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 책의 특색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음악평론과 저술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트로트 역사를 통해 음반 포맷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조망하고, 한국에서 첫 LP가 언제 생산됐는지 옛 신문기사를 뒤져가며 심도 깊게 파고든다. 최초의 LP, 최초의 민간 제작 LP, 최초의 동요 앨범, 최초의 해외 진출 앨범 등 ‘최초’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김지하 시인의 옥중 앨범 등 희귀 음반을 거론하며 지난 시대의 사회상도 보여준다. 자신의 일생을 쏟아부어 만든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언컨대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이 정도 성과를 구축한 음악 서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다.



    약점 아닌 약점을 꼽자면, 오직 LP를 통해 음악사를 서술하다 보니, LP에서 CD로 음반산업 패러다임이 전환되던 시기나 그 이후에 대한 밀도가 상대적으로 헐겁다는 것이다. LP 생산이 사실상 중단된 1990년대 중반 이후 탄생해 CD로만 제작된 인디 음악이 다뤄지지 않았고, 아이돌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사실은 오히려 후대 평론가들을 향해 내려치는 죽비처럼 보인다. 개인이 모아온 자료로 국책사업 급 저술을 내놓았으니 너희도 나태해지지 말고 분발하라는. 나는 ‘대중가요 LP 가이드북’을 읽으며 앞으로 어떤 책을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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