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23

2014.01.27

神도 놀란 ‘코리안 게이머’

스타크래프트부터 LoL까지 지고 못 사는 e스포츠에서 두각

  • 이경민 전자신문 기자 kmlee@etnews.com

    입력2014-01-27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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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神도 놀란 ‘코리안 게이머’

    ‘폭풍 저그’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프로게이머 홍진호(왼쪽), 훤칠한 외모와 뛰어난 실력으로 큰 인기를 모았던 ‘테란 황제’ 임요환.

    한국 e스포츠를 이야기할 때 미국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개발한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빼놓을 수 없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는 1997년 ‘테란’ ‘저그’ ‘프로토스’라는 3개 종족이 벌이는 우주전쟁 게임을 내놓는다. 그리고 이듬해 한국에서 한빛소프트를 통해 정식 발매했다. ‘스타크래프트’는 우리나라에 e스포츠란 단어를 탄생시킨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는 게임은 어린아이나 사회 주변부를 맴도는 젊은이만 즐기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직장인까지 퇴근 후 당구장이나 호프집 대신 PC방에 모여 ‘스타’ 한판 즐기는 일상에 동참했다. 이 게임 하나로 PC방 문화가 생기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한달음에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게임의 성공 비결은 3개 종족이 절묘하게 짜 맞추는 힘의 균형에 있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뒤 저그 여왕으로 성장하는 ‘캐리건’, 국가가 버린 연인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테란을 이끄는 ‘짐 레이너’, 종족을 위해 희생을 택한 프로토스 영웅 ‘타사다’ 등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완벽한 서사를 갖고 있고, 독특한 전투력도 갖춰 균형을 추구했다. 종족별 유닛은 기존 게임에서 볼 수 없던 고유 특징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공격함으로써 전투력 조화를 이룬다. 이런 내용이 입소문을 타면서 ‘스타크래프트’가 팔려나갔고 확장판 ‘브러드 워’는 1100만 장이 팔렸다.

    스타크래프트, 레전드를 만들다

    ‘스타크래프트’ 흥행에 힘입어 PC방에선 한국인의 경쟁 심리를 자극하는 게임 대회를 개최한다. 이는 이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정식으로 게임 대회를 여는 계기가 됐다. e스포츠 시초가 된 것이다. ‘스타크래프트 리그’(‘스타리그’)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점은 최초 프로게이머인 신주영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1998년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주최한 ‘스타크래프트 레더 토너먼트’에서 우승한 뒤 최초로 ‘프로’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게임을 스포츠로 보는 시각은 없었다. 더구나 게임을 직업으로 삼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신주영이 프로를 만들었다면 이기석은 e스포츠 제1의 봄을 이끈 인물이다. 이기석은 당시 KPGL(Korea Professional Gamers League)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프로구단이 결성됐고 한국e스포츠협회가 생겼다. ‘쌈장’으로 통한 이기석은 뛰어난 외모로 여성팬까지 사로잡아 TV 광고에도 출연했다.

    “쌈장 이기석, 테란 황제 임요환, 폭풍 저그 홍진호, 천재 테란 이윤열.”

    e스포츠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마우스를 잡아봤다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모든 스포츠가 스타를 낳듯 e스포츠 역시 많은 레전드(전설)를 배출했다.

    이기석에서 시작한 열풍은 임요환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쌈장 이기석의 인기가 주춤해진 시점에 나타난 테란 황제 임요환은 한국 e스포츠 상징으로 통한다. 곱상한 외모, 뛰어난 손놀림과 전략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질 것 같은 경기를 극적으로 뒤집는 그의 승부사 기질도 수많은 팬을 열광하게 했다. 천재 테란 이윤열과 폭풍 저그 홍진호도 e스포츠 전성기를 함께했다.

    LoL 새로운 스타 탄생 예고

    神도 놀란 ‘코리안 게이머’

    ‘천재 테란’으로 불렸던 프로게이머 이윤열(위)과 2013년 리그 오브 레전드(LoL) 시즌3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SK 텔레콤 T1 선수들.

    2005년과 2006년 부산 광안리에서 벌어진 ‘스타리그’ 결승전은 관객 10만 명이라는 신화를 만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스타리그를 즐겼다. 더는 프로게이머를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가 ‘스타크래프트’ 방송중계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한국e스포츠협회 및 게임방송사와 갈등을 빚었다. 양측은 법적분쟁에 들어갔고 한동안 TV에서 ‘스타크래프트2’ 중계를 볼 수 없었다. 이로 인한 손해는 게임사, 협회, 유저 모두에게 돌아갔다. 인기가 시들어가는 와중에 2010년 마재윤 등 프로선수가 승부 조작에 휘말렸고 e스포츠는 사람들 시선에서 멀어져갔다.

    ‘스타크래프트’가 e스포츠를 만들었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LoL)는 e스포츠 봄을 부활시켰다. ‘스타크래프트’가 이기석, 임요환, 홍진호, 이윤열 등 스타를 배출했다면 프로리그 3년 차에 접어든 LoL은 유망주를 배출하면서 e스포츠 바람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신인선수상과 최고선수상 등을 거머쥔 SK텔레콤 T1의 이상혁이 대표적이다. 이상혁은 지난해 10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중국 로열클럽 황주에 완승을 거둘 때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그는 5대 5 팀 대항에서 허리를 맡아 뛰어난 개인기로 해외에서도 많은 팬을 몰고 다녔다. 그의 별명 ‘마이클 조던’도 해외에서 얻은 것이다.

    LoL에서 통하는 홍민기 역시 신의 수준에 달하는 실력으로 인기가 높다. 홍민기는 CJ 엔투스 프로스트 소속으로 주로 후방을 지원하는 서포터지만 눈부신 활약으로 게이머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CJ 엔투스 블레이즈 플레임 이호종과 CJ 엔투스 프로스트 소속 샤이 박상면 역시 톱 플레이어로 명성을 떨친다. 이호종과 박상면은 현란한 일대일 플레이 기술로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제닉스 스톰 톱 라이너로 뛰어난 기량을 보여준 정언영, 이정현과 상위 랭커들이 인정한 실력자 채광진, 배성웅도 인기 플레이어로 꼽힌다. 이들은 LoL 인기로 e스포츠가 다시 성장하면서 글로벌 스타로의 도약이 기대된다.

    과거 스타들은 현재 대부분 각자 새로운 길을 걷는다. 테란 황제 임요환은 지난해 게임팀 감독 생활을 청산하고 프로포커 선수 길로 들어서 또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으로 해외에서도 폭풍 저그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홍진호는 케이블방송 tvN 프로그램 ‘더 지니어스 : 룰 브레이커’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 번 능력을 인정받았다. 천재 테란 이윤열은 프로게이머 코치로 활동 중이다. 2006년 결혼과 함께 유학길에 오른 쌈장 이기석은 이후 소식이 뜸하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선수도 많다. 이제동, 장민철, 문성원, 장재호는 북미와 유럽, 중국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스타크래프트’ 세계 리그에서 두 차례 우승한 이제동은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러시아 미녀 테니스선수 마리야 샤라포바 등과 함께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4년 주목할 30세 이하 스타’ 30명에 뽑히기도 했다.

    지난해 말에는 전 제닉스 스톰 매니저 이인철이 ‘베트남 e스포츠’의 e스포츠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게임 조작 사건으로 e스포츠계를 뒤흔든 마재윤 역시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었던 건 세계 곳곳에서 e스포츠가 새로운 황금 스포츠산업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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