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1

2013.11.04

다가온다, 거대한 소비자층

가구 수 증가·중산층 팽창·도시화 가속도…글로벌 차원서 선제적 투자 필요

  • 이상건 미래에셋 은퇴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

    입력2013-11-04 10: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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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온다, 거대한 소비자층

    중국에서는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1000년 전 실크로드 출발지였던 중국 시안 외곽의 가오신 개발구. 몇 년 전만 해도 일부 농경지를 제외하고 모래바람이 휘날리는 허허벌판이었던 곳이 서부대개발 이후 최첨단기술 업체들이 입주한 20~40층짜리 마천루 숲으로 변했다.

    “앞으로 20년 내 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주요 요소는 돌발적인 전쟁, 돌림병, 혜성 충돌 등을 제외하면 경제도 아니고 기술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인구구조의 변화다.”

    1997년 현대 경영학의 구루(Guru) 피터 드러커 박사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발표한 글의 일부다. 드러커 박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선진국, 다시 말해 일본, 유럽, 북미에서 인구가 점점 더 줄어든다. 선진국들은 지금 국민이 집단적으로 자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략) 앞으로 25년간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이미 일어난 현상”이라며, 앞으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인구 증가’가 아니라 ‘인구 감소’라고 못 박았다. 드러커 박사의 말처럼 일본 같은 초고령 국가는 이미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없이 인간이 늙어가면서 출산율이 떨어져 인구가 줄어드는 자본주의 최초의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야를 좀 더 넓히면 고령화, 저출산, 인구 감소와 함께 새롭게 진행되는 도도한 물결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세계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가구 수 증가, 거대한 중산층의 등장, 도시화의 가속화 등이다. 이는 모두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다. 현재 이 세 가지 측면의 변화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소비자층이 출현하고 있다.

    가구당 평균 인원 3.49명

    먼저 가구 수 증가다. 가구는 소비 결정 단위다. 매달 생활비를 한 번 살펴보면, 이런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교육비, 주거비, 자동차 유지비 등 가계경제에서 높은 지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대부분 가구 단위로 소비가 이뤄진다. 소비와 관련해 또 고려해야 할 것은 가구당 인원, 그중에서도 부양자녀의 감소 여부다. 부양가족 수가 많으면 저축과 소비 여력이 부족하다. 과거 5~6남매를 낳던 시절에는 하루 세 끼 밥 먹고 자녀들 교육시키는 게 전부였다. 사회적으로 소비가 활성화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2012년 현재 전 세계 가구당 평균 인원은 3.49명이다. 경제력이 높거나 급속히 확대되는 지역은 3명 정도다. 경제력이 높은 서유럽 2.4명, 북미 2.6명, 일본 등 아시아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곳은 2.7명 수준이다. 가구당 인원 비율이 높은 곳은 인도, 아시아 개발도상국, 아프리카, 중동 등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현재 가구당 인원 비율이 높은 지역도 점차 그 수치가 낮아지는 추세다. 이는 앞으로 새로운 가구가 지금보다 더 많이 등장하고, 가구당 인원도 감소할 것임을 뜻한다. 게다가 고령화의 진전으로 자녀가 없는 가구 수도 크게 늘고 있다. 가구 수 증가, 부양가족 감소는 소비와 저축 여력의 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런 추세가 도시화와 맞물릴 때 소비시장은 더욱 확대된다. 도시화와 경제성장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동시에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평균적으로 도시 가구가 농촌 가구보다 소득 수준이 높고 소비에 더 적극적이다. 농촌 기반 경제는 도시 기반 경제에 비해 거래 규모가 작고 자급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서유럽, 북미, 아시아 주요 국가의 도시화율은 80% 이상이다. 이들 지역에 더해 인구 대국인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러시아 등에서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2011년 현재 35억 명이 도시에 사는데, 2050년이면 약 63억 명이 도시에 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무려 29억 명의 새로운 도시 인구가 40년 사이 생겨나고, 세계 인구의 67%가 도시에 사는 것이다.

    다가온다, 거대한 소비자층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구찌’의 신발 장인들이 8월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 구찌 매장에서 신발 제작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 차원의 중산층 확대는 웅변적 변화를 보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추정에 따르면, 6000~3만 달러(소득 기준)의 중산층 수는 2009년 18억4500만 명에서 2020년 32억4900만 명, 2030년 48억8840만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약 20년간 30억 명이 넘는 중산층이 새로 생겨나는 셈이다. 특히 중국은 드라마틱하다. 1990년 초만 해도 소득 6000달러 이상 인구가 전체 1%에 불과했지만 2020년이면 70%로 증가할 전망이다. 중국인의 지갑이 열리는 곳에 엄청난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글로벌 소비시장의 확대는 투자 측면에서 새로운 기회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소비시장 변화의 수혜자는 누가 될 것인가.’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기업을 1차 후보군에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는 기업의 강력한 자산 가운데 하나다. 소비재 기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을 사는 이유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와 가치 때문이다. 글로벌 차원의 강력한 네트워크를 갖추고 가격 결정력을 가진 기업 역시 다른 경쟁자를 압도할 가능성이 높다.

    소비시장 확대 트렌드에 주목해야

    다가온다, 거대한 소비자층
    2차 후보군은 중국 같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가진 나라에서 강력한 시장 지배력을 갖추기 시작하며 경쟁자를 압도하는 기업이다. 고성장 국면에서는 승자와 패자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그러다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거나 외부로부터 경제적 충격이 오면, 상당수 경쟁자가 탈락하면서 시장은 3~4개 기업으로 재편되는 ‘과점적 경쟁’ 단계로 발전한다. 이때부터 기업 이익은 본격적인 증가세를 기록하고 재무구조도 좋아진다. 이미 중국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라면시장은 이미 4개 기업이 시장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맥주시장도 4개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60%를 넘어섰다.

    드러커 박사는 “이노베이션(Innovation)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노베이션을 ‘투자’로 대치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적인 투자는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성장하는 소비시장의 변화를 우리가 이용하는 방법은 강력한 브랜드와 네트워크, 그리고 가격 결정권을 가진 글로벌 기업이나 거대한 내수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갖추기 시작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 중에선 이런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강력한 브랜드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춘 기업은 대부분 선진국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이런 콘셉트의 해외 펀드에 대한 국내 투자자의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좀 더 시야를 넓혀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가장 강력하고 꾸준하며 장기적인 소비시장의 확대라는 트렌드에 투자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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