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자산 위주의 성장 모형은 국내 은행의 수익성을 악화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국내 은행의 대출증가율이 명목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상회하는 등 국내 은행은 과도한 외형 경쟁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국내 은행의 총자산 대비 원화 대출 비중이 2000년 3월 말 40.4%에서 2013년 6월 말 61.5%로 증가했고, 국내 대출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이 가속화하면서 대출 수요가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렇듯 국내 은행의 가계 및 기업 여신 중심의 성장전략은 한계에 이르렀다.
국내 은행 성장성, 수익성 빨간불
국내 은행의 수익성도 쉽게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내 은행의 수익성 악화는 경기 악화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고착화한 사업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장기화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 대출자산 위주의 성장 모형은 이자 이익 중심의 수익구조를 야기했다. 지난 12년간 국내 은행의 전체 이익 대비 비(非)이자 이익 비중은 평균 16%에 불과하다. 그나마 비이자 이익은 수수료 관련 이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현재 같은 저금리 환경에서는 대출을 늘려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 즉 이자 이익의 확대를 통한 수익성 개선은 어렵다. 과거 이자율이 5%대를 넘던 시기에는 대출금리 상승폭이 예금금리 상승폭보다 더 커지면서 예대마진도 비례해 커졌지만, 저금리 시대에는 예대마진은 정체되고 대출 수요자들의 금리 민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예대마진폭을 늘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같은 이자 이익 중심의 수익구조 하에서는 장기적인 수익성 개선이 어려워 보인다.
이자 이익 중심의 단순한 수익구조는 국내 은행의 건전성을 약화할 수 있다. 이자 이익은 경기 상승 국면에서 이자율이 상승하면 개선되는 경기 순응적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이자 이익에 편중된 수익구조를 가진 은행은 거시환경의 변화 및 금리정책에 취약한 특징을 보인다. 또 국내 은행 대부분이 가계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및 중소기업 여신에 집중하는 등 은행 간 차별화 정도가 낮아 무리한 대출 경쟁으로 부실 여신이 증가할 여지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 은행의 성장성 및 수익성을 높이고 건전성을 강화하는 데 필요한 전략적 수단은 무엇일까. 그 답은 국내 은행과 유사한 업무 영역을 가진 미국 US뱅코프(U.S. Bancorp)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은행이 보여주는 새로운 대안은 현재 은행업권 내외에서 활발히 논의되는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이나 겸업화 추진과는 구별된다.
US뱅코프는 1863년 설립 이래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고, 2013년 6월 말 현재 상업은행인 U.S.뱅크를 포함한 105개 자회사를 지닌 지주회사로 발돋움했다. 특징은 미국 내 주요 은행과는 다르게 전통적 업무와 내수시장 중심으로 경영활동을 펼친다는 점. US뱅코프가 1980년대 이후 해온 기업 인수합병의 대다수는 변화하는 규제 환경에 대한 전략적 대응 차원이었다. 특히 은행 영업지역에 관한 규제 완화는 US뱅코프가 전 미국적 은행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US뱅코프는 미국 내 다른 지역 은행들을 인수해 위스콘신에서 만든 영업망을 오하이오 등을 포함한 중부지역으로 넓혀나갔고, 이후에는 캘리포니아, 오리건 등 인구성장률이 높은 서부지역까지 확장했다. 영업망 규제 완화 덕에 주(州)단위 영업에서 여러 개 주를 포함하는 지역(region)단위 영업망을 가진 ‘슈퍼 지역 은행’으로 성장한 것이다.
US뱅코프의 남다른 위상
현재 US뱅코프의 높은 위상은 미국 시장에서 자산규모 및 각종 순위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6월 말 자산규모 기준으로 미국 금융지주회사 중 10위를 차지했으며, 2006년부터 2012년까지 영국 금융잡지 ‘유로머니(Euromoney)’와 시장조사기관 ‘포네몬 인스티튜트(Ponemon Institute)’, 미국 경제잡지 ‘포춘(Fortune)’이 US뱅코프를 ‘최고 은행’으로 선정했다.
US뱅코프의 진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10대 은행을 훨씬 능가하는 재무적 성과에서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US뱅코프의 주주들이 주식 보유로 얻은 전체 수익을 나타내는 지표 TSR(시세차익과 배당금을 합쳐 산출)는 16.2%로 -52%, -29.9%를 기록한 씨티은행(Citi)과 아메리카은행(BOA)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었으며, 총자산 이익률(ROA)도 2%(2012년) 수준으로 매우 높았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US뱅코프의 성장률과 수익성은 높은 증가율을 나타냈다. 총자산은 연평균 7.4%, 예수금은 11.8%를 기록했으며, 2009년 5.5%였던 대출금 성장률은 2012년 6.9%로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당기순이익은 글로벌 금융위기 영향으로 2009년 24.1% 감소했지만 2011년 46.6%, 2012년 14.7% 증가하며 54.9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US뱅코프의 이러한 높은 성장세와 수익성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뛰어난 리스크 관리 능력을 들 수 있다. US뱅코프의 커버리지 비율(부실대출 대비 대손충당금 비율)은 2010년 110.1%에서 2012년 58.9%로 크게 감소했으며, 건전성 지표인 동기간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2.41%에서 3.31%로 다소 증가했으나 여전히 산업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는 US뱅코프의 뛰어난 리스크 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예이며, 실제로 US뱅코프는 전 세계 큰 은행들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대출 태도를 가진 것으로 잘 알려졌다.
리스크 관리 능력 외에도 다른 사업구조에서 여타 은행과는 다른 US뱅코프만의 상대적 강점이 많다. 기업금융, 소매금융, 도매금융, 결제서비스, 자산관리 등 총 5개 사업 부문 가운데 2012년 현재 전통적 은행업무인 소매금융이 총이익의 약 40%를 차지해 비율이 가장 높다. 이는 자금, 신탁, 증권 등 투자은행(IB)업무, 즉 은행의 비전통적 업무에 강한 JP모건 체이스와 BOA 등 대형 은행과 크게 대비되는 점으로, IB업무에 가장 큰 타격을 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전통적 은행 업무에 강한 US뱅코프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꾸준히 높은 수익을 창출을 할 수 있었다.
US뱅코프는 국내 은행들처럼 소매금융에 집중하면서도 비이자 이익의 비중이 국내 은행보다 높은 특징을 보인다. 2012년 US뱅코프의 총이익 가운데 이자 이익과 비이자 이익의 비중은 각각 58%와 42%이다. 비이자 이익에서 소매금융에 해당하는 모기지뱅킹이 가장 큰 비율(20.8%)을 차지한다. 이는 겸업화를 하지 않아도 소매금융을 통해 수수료 외 비이자 이익 창출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비자 수요에 맞는 확장 전략
US뱅코프는 사업 부문별로 상이한 영업지역을 갖고 있어 지리적 영업시장 면에서도 차별화된다. 앞서 언급한 M·A를 통해 소매금융과 자산관리는 미국 내 지역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도매금융은 영업지역 내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원활한 자금 공급을 위해 전국 시장을 이용한다. 결제서비스의 경우는 소매금융 소비자의 신용카드, 직불카드 결제 및 기업금융 소비자의 기업카드 서비스 등을 원활하게 하려고 북미, 유럽, 멕시코를 포함하는 글로벌시장을 대상으로 한다. 이는 US뱅코프의 성장전략이 무차별적 확장이 아닌, 소비자 수요에 부합하는 선별적 확장전략임을 시사한다.
US뱅코프의 선별적 확장전략은 각 산업과 지역 분산투자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출은 산업용대출(31.2%), 상업용대출(17.4%), 모기지대출(20.8%), 신용카드 등 기타 소비자대출(30.6%)에 고루 분포하며, 이 중 산업용대출은 소비재산업부터 에너지산업에 이르기까지 16개 산업과 미국 내 30개 주에 걸쳐 고루 분산해 있다. 이렇게 대출포트폴리오의 종류별, 산업별, 지역별 제한을 두는 원칙은 신용 위험을 분산함으로써 US뱅코프의 신용 리스크 관리 경쟁력을 높인다.
US뱅코프는 이렇듯 강화한 리스크 관리를 바탕으로 선별적으로 확장하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국내 은행이 현재 위기를 탈출하고 발전해나갈 수 있는 모범적 사례가 된다. 또 인구성장률이 높은 서부지역으로 영업망을 확대해 은행의 잠재 성장성을 높였다. 보수적 기조에 근간한 리스크 관리 능력과 소매금융을 기초로 한 고객 수요에 부합하는 선별적 확장전략은 US뱅코프가 글로벌 금융위기 하에서도 높은 성장세와 수익성을 이루는 바탕이 됐다.
이는 국내 은행들에게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경제위기 하에서도 안정적 성장과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초체력을 다지는 작업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단, US뱅코프와 같은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한 중위험·중수익 전략은 경기가 호전됐을 때 상대적으로 수익이 낮아 단점이 될 수 있다는 데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