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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산 단말기 실종사건

애플 제외한 외국 제조사 줄줄이 퇴출…독특한 유통구조로 소비자 선택권 제한

  • 권건호 전자신문 통신방송사업부 기자wingh1@etnews.com

외국산 단말기 실종사건

외국산 단말기 실종사건

중국 화웨이, 일본 소니, 중국 ZTE가 선보인 최신 스마트폰(왼쪽부터). 국내에는 출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휴대전화 시장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외국산 단말기의 무덤’이라는 것이 있다. 애플을 제외하고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은 외국 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휴대전화 제조사는 수십여 곳에 이른다. 하지만 우리나라 휴대전화 매장에서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휴대전화 제조사는 4곳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 제조사 3곳에 유일한 외국 업체 애플뿐이다. 4개 브랜드 외에 알뜰폰(MVNO) 업체가 해외 제조사 제품을 일부 도입하긴 했지만 시장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국내 소비자는 글로벌 시장에서 급성장하는 화웨이나 ZTE 등 중국 업체 제품은 물론 소니, 블랙베리, 모토로라 등 유명 제조사의 휴대전화도 구매할 수 없다. 이로 인해 국내 소비자는 고가 최신 스마트폰 외에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 처했다.

돌파구 없는 ‘단말기 무덤’ 고착화

지난해 3월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인모션(RIM)이 국내 시장에서 신제품 출시 중단을 선언했고, 올해 초 지사를 철수했다. 지난해 7월에는 HTC, 12월에는 모토로라가 각각 한국 시장 철수를 선언했다. 국내 시장에 남은 외국 휴대전화 제조사는 애플이 유일하다. 해외 시장에서 선전하는 외국 제조사가 한국에서는 줄줄이 퇴출당하면서 ‘외국산 단말기 무덤’이라는 표현이 생겨난 것이다.

새로 한국 시장 진출을 모색하는 외국 제조사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거대한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성장해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국 화웨이나 ZTE도 국내 시장 진입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양사 모두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휴대전화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엔 국내 시장에 재진출을 시도하던 소니가 계획을 포기한 일도 있다. 소니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응하지 못하며 침체를 겪었다. 하지만 자국 시장에서 성과를 내면서 부활했고, 해외 진출도 다시 확대하는 분위기다. 이와 맞물려 한국 진출을 타진하며 이동통신사들과 공급 논의까지 했다. 그러나 공급 물량 등 양측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출시 계획을 중단했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제품 홍보와 마케팅, 애프터서비스(AS)망 구축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하면 50만 대 정도는 판매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국내 휴대전화 시장이 위축돼 이동통신사들이 제시한 물량은 15만 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국 제조사 처지에서도 국내 진출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지만, 이미 스마트폰 보급률이 60%를 넘어서면서 추가 수요가 많지 않다. 더구나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보조금 규제로 단말기 시장도 위축됐다. 결국 당분간 애플을 제외하고 국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외국 휴대전화 제조사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제조사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는 삼성전자와 LG전자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해 이를 넘어서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국산 단말기 비중이 90%를 넘어설 만큼 국산 쏠림현상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들여다보면 독특한 국내 휴대전화 유통구조가 큰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통구조 개선법 추진 중

국내 휴대전화 유통구조는 제조사가 이동통신사에 단말기를 판매하고, 이를 이동통신사가 다시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태다. 이동통신사는 가입자를 유치하려고 소비자에게 단말기를 판매할 때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 보조금 안에는 이동통신사의 보조금과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이 더해져 있다. 요금제나 부가서비스 가입에 대한 인센티브도 주어진다.

문제는 글로벌 정책을 지향하는 외국 제조사는 판매장려금 같은 한국만의 제도를 따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출고가는 비슷한 단말기도 소비자에게 판매될 때는 국산과 외국산의 차이가 발생한다.

판매장려금이 없다는 것은 대리점이나 판매점 같은 최종 유통사업자가 가져갈 이익이 줄어든다는 뜻도 된다. 그러니 대리점이나 판매점 처지에서는 외국산 판매를 꺼릴 수밖에 없다. 소비자 수요가 아닌 유통망에서 수요 감소가 발생한다. 결국 외국 휴대전화 제조사는 실적 부진에 내몰리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소비자 선택권이 제한되면서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국내에 출시한 단말기는 거의 대부분 스마트폰이었다. 피처폰을 쓰고 싶은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구매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고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위주로 시장이 형성됐다. 20만~30만 원대 저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은 사람도 출고가가 10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 스마트폰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은 소비자 선택권이 넓다. 미국 이동통신사 버라이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단말기는 10여 종이다. 유럽 오렌지나 T모바일 등도 10여 종 이상의 단말기를 제공한다. 오픈마켓에서 구할 수 있는 단말기도 많다. 지금 같은 시장 상황이 지속되면 국내 제조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장 경쟁이 사라지면 기업 경쟁력마저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안은 정부와 국회가 추진하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다. 법안 핵심은 과도하고 불투명한 보조금 지급 관행을 끊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동통신서비스와 단말기의 연결고리를 끊고, 시장을 투명하게 바꾸는 것이 목표다. 궁극적으로 투명한 유통시장에서 다양한 단말기가 출시될 수 있는 환경도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미래창조과학부 관계자는 “과도한 보조금과 불투명한 유통구조 등이 맞물리면서 국내 휴대전화 교체율은 세계 1위고, 소비자는 선택권을 잃었다”면서 “단말기 유통구조를 개선해 다양한 단말기가 출시되고, 합리적인 통신 소비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3.11.04 911호 (p30~31)

권건호 전자신문 통신방송사업부 기자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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