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1

2013.11.04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비생산 소모적 정쟁에 여론 분열 심화…희생하고 타협하는 용기 필요

  •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bestpro2020@gmail.com

    입력2013-11-04 09: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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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2000년 미국 대통령선거(대선)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치열했다. 8년간 빌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미국 행정부를 이끌었던 현역 부통령 앨 고어와 대통령, 부통령으로 12년간 백악관에 있었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을 이어서 나온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간 싸움이었다. 둘은 인지도에서 서로 밀리지 않았고 두 전·현직 대통령이 총력 지원하는 양상이었다. 선거 결과 총 득표수는 고어가 54만 표 앞섰지만, 승자독식 제도인 선거인단 확보에서 부시가 5명을 앞섰다.

    13년 전 미국 상황 한국서 재현

    게다가 투표용지 표기 방법이 다른 주에 비해 복잡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플로리다는 선거인단이 25명이나 됐다. 게다가 선거를 관장하는 주지사가 다름 아닌 부시 후보의 동생 젭 부시였다. 고어 부통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하지만 미국 내 여론이 엇갈리고 사회가 극도로 양분되는 갈등을 보이자 연방대법원은 답이 나오지 않는 재검표를 중단하고 부시 후보 당선을 인정했다. 대법원 결정 후에도 국민의 동요는 있었지만 점차 갈등을 봉합해갈 수 있었다.

    13년 전 미국 상황이 한국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야당이 대선 불복을 하려 한다’는 여당과 ‘지난 대선은 불공정했다’는 야당이 극단적인 대결 양상을 보이며 한국 사회를 이분화로 몰아간다. 왜 우리 국민은 끝나지 않은 대선 전쟁과 마주해야 할까.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이 전쟁은 어떻게 끝이 나야 하는 것일까. 먼저 1년 전 대선 전쟁이 끝나지 않는 이유부터 밝혀보자.

    첫째, 국가정보원(국정원)의 인터넷 댓글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대화록 논란 등 대선 관련 이슈와 관련해 검찰 수사가 지나치게 장기간 지속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사안에 대해 선거 기간 내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규명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물론 수사의 엄정성을 생각한다면 일정 시간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잃은 것이 너무 많다. 일반 선거에서도 관련 이슈에 대한 법적 규명과 재판은 매우 빠른 속도로 이뤄진다. 오죽했으면 선거 관련 재판의 경우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3개월 내 하도록 규정해 신속한 판단을 요구하겠는가. 매우 중대한 사안이긴 하지만, 수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갖가지 추측과 추가 정쟁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댓글, NLL 논란과 관련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총장이 사퇴하고 수사팀장과 담당검사장이 갈등을 빚는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끝나지 않은 대선 논란에 대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대선 당시의 진영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미디어리서치의 8월 24일 조사 결과(전국 1000명, 유무선 RDD 전화면접조사, 표본오차 95%에 신뢰 수준 ±3.1%p)를 보면,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것으로 보는 의견이 40.9%, 대선에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보는 의견이 43.9%였다. 이 결과만 보더라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층의 견해가 뚜렷하게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둘째, 박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이 대선 이후 대통합을 위한 상생적 행보를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 시작 직후 지지도가 대선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후 안보 리더십과 글로벌 외교가 호평받으면서 지지도 역시 고공행진을 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지도 고공행진은 20대의 전폭적 지지가 있어 가능했다. 박 대통령이 G20 다자외교와 베트남 국빈 방문에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자 20대에서의 박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이후 복지공약 축소 수정과 대선 관련 정쟁이 지속되면서 20대에서의 박 대통령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최근 3개월간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던 조사(9월 11일)에서 20대의 박 대통령 지지율은 64%였지만, 10월 25일은 37.4%로 반 토막이 났다(‘그래프1’ 참조).

    30대의 경우는 대선 과정부터 현재까지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높지 않기 때문에 20대와 구별된다. 20대는 상대적으로 큰 변동 폭을 보이며 대통령 지지도 상승에 결정적 구실을 하고 있다. 20대 연령층은 탈이념적 성향이 강해 박 대통령이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국민의 분노 게이지 계속 올라가

    문 의원의 행보도 대통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1996년 미국 대선에서 패한 밥 돌 전 상원의원도, 2000년 억울한 심정이 들었던 고어 전 부통령도 대선 직후 정치 전면에서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는 않았다. 국내를 보더라도 92년 대선에서 패한 당시 김대중 후보는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영국행을 택했다. 대선후보가 선거 이후에도 격돌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민 여론이 분열하고 진영 대결로 결집하게 된다.

    문 의원이 자신을 향한 비판에도 박 대통령과 맞서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몇 가지 전략적 고려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대선 당시 문 후보를 옥죄던 것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였다. NLL 논란은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이슈였지만, 국정원 댓글 의혹은 바로 자신이 중심이 된 ‘홀로 서기’ 재료다. 더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아닌 ‘대선후보 문재인’으로 각인되는 효과가 분명 있다.

    또 하나는 민주당 내 문 의원의 영향력이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소위 친노(친노무현) 그룹에 대한 비판도 높지만, 여전히 민주당 내외에서 영향력은 상당하다. 문 의원이 NLL 관련 발언 또는 국정원 댓글과 관련한 메시지가 있을 때마다 민주당 지지층이 소폭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40대 수도권 화이트칼라층의 반응도 민감하게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도는 소폭 상승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40대의 지지도는 소폭 하락한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국정원 댓글과 관련해 문 의원 발언이 있었던 6월 말과 7월 말 직후 새누리당 지지도는 소폭 하락하고 민주당 지지도는 소폭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그래프2’ 참조).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10월 22일 김한길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긴급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회 본청 계단에서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검찰 수사에 대한 외압 중단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40대 민심 변화

    40대 지지층도 문 의원의 발언에 민감하게 꿈틀거렸다. 9월 11일 리서치앤리서치 조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40대의 지지도는 67.6%였다. 그러나 문 의원의 ‘대선 불공정’ 발언 직후인 10월 25일 조사에서는 51.3%에 그쳤다. 같은 날 조사에서 60대 이상은 각각 88.1%와 84%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40대 민심의 변화는 심상치 않다(‘그래프1’ 참조).

    40대 민심 속에는 국정원 댓글 논란을 중심으로 문 의원의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문 의원은 적어도 40대 수도권 화이트칼라층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흡수하지는 못했지만,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변수 가운데 하나로 작동시킨 것이다.

    셋째, ‘끝나지 않은 대선 전쟁’은 비단 박 대통령과 문 의원만의 대결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좋든 싫든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이 오롯이 투영돼 있다. 문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을 떠나 설명하기가 힘들다. 역대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한 리서치뷰의 결과를 보면 2011년 조사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근소하게 앞섰고, 2013년 조사(전국 1000명, 휴대전화 RDD 조사, 표본오차 95%에 신뢰 수준 ±3.1%p)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호감도가 34.3%로 가장 높았다. 박 전 대통령은 26.1%로 2위였고 바로 그 뒤를 이어 박 대통령이 18.5%를 기록했다. 부녀 대통령의 호감도를 합하면 44.6%.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조사에서 10% 초반 정도가 나오는 문 의원 지지도를 노 전 대통령 호감도에 더하면 약 40%대 중반이 된다. 호각지세의 대결 양상이다. 노 전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의 장기 집권에 항거한 부마항쟁 주동자의 변호를 맡았고 문 의원이 ‘반유신’ 운동권이던 인연을 떠올리면 숙명적 대결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문 의원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2000년 미국 대선 결과의 후유증은 수개월 지속되다 ‘9·11테러’가 발생하고서야 겨우 일단락됐는데, 두 사람은 그런 전철을 결코 밟지 말아야 한다. 대선 과정의 논란, 지지층의 극명한 대립, 숙명적 구원(舊怨)이 있다고 해도 ‘100%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고 타협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먹고사는 문제로 분주한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더는 높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대선 전쟁’을 끝내야 한다.

    아직도 물어뜯는 ‘대선 전쟁’

    7월 30일 민주당 의원들이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유출 및 실종 규명을 위한 특검법을 발의하려고 의안과에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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