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10

2013.10.28

미술관…공항…성당…여행자 옷만 봐도 한국인

아웃도어 의류 열풍

  • 남훈 The Alan Company 대표 alann1971@gmail.com

    입력2013-10-28 09: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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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공항…성당…여행자 옷만 봐도 한국인
    그다지 신경 써본 적 없는 사람도 이제 ‘공항 패션’이란 말이 익숙하다. 방한하는 할리우드 스타, 굴지의 대기업 회장, 그리고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아이돌그룹의 형형색색 멋진 공항 패션이 미디어로 실시간 중계되기 때문이다. 공항이란 원래 어딘가를 오가기 위한 ‘고급스러운’ 터미널 아닌가. 지금은 패션과 레저가 섞인 우리 시대 코즈모폴리턴의 서식지가 됐다.

    나까지 굳이 저렇게 입어야 하나, 속으로 외쳐보지만 공항에 가면서 제일 먼저 챙기는 것이 여권이 아닌 옷차림이 되고 있긴 하다. 치열한 비즈니스를 위해 도쿄,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을 바쁘게 누비더라도 언제 어디서 중요한 누군가를 만날지 모르는 것이 사실이고, 내가 어떻게 입었느냐에 따라 승무원이나 타인의 태도가 달라지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다재다능한 일상 복장으로 전환

    공항을 둘러보면 그 어느 나라보다 과감하게 옷을 입는 사람은 이탈리아 남성들이다. 르네상스 후예답게 밝고 화려한 컬러의 재킷이나 바지를 능숙하게 입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끔 깜짝 놀랄 지경이다. 그런데 한국 남성도 은근히 그런 모습을 수용하는 걸 보니 시대가 확실히 달라진 듯하다.

    반대로 미국 도시들에선 실용적이고 좀 큰 옷을 입는 남성을 주로 목격하는데, 우리나라 남성과 성향이 비슷해 마음이 편해진다. 유럽의 장점을 빠르게 흡수하고 자기화하는 데 뛰어난 일본 남성들은 늘 단정한 슈트에 가방까지 갖춘다. 얄밉지만 멋있긴 하다. 중국 남성들의 패션은 다가가기 꺼려진다. 가까이 가면 너무 시끄러운 데다, 그들만의 어지러운 옷차림이 어쩐지 우리의 과거를 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 여행자의 옷차림에 어떤 특징이 생겼다. 나라와 장소에 상관없이 모두 아웃도어 복장을 하고 그 나름의 여행을 한다는 점이다. 아웃도어 복장이 산에 있는 게 아니라 공항에 있다.

    패션시장도 불황이라고 모두 걱정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아웃도어 의류만은 열풍이다. 캠핑과 서핑, 등산과 산책이 취미를 넘어 힐링(healing)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마치 경쟁하듯 아웃도어 의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웃도어 의류는 애초 등산 마니아가 주로 입는 기능성 옷이었지만, 이제는 등산뿐 아니라 각종 스포츠, 레저, 여행, 등교 및 가벼운 외출 등 모든 경우에 간택되는 다재다능한 일상 복장으로 전환된 느낌이다.

    미술관…공항…성당…여행자 옷만 봐도 한국인

    캠핑, 등산 등이 힐링 수단으로 부상하면서 아웃도어 의류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옷은 때와 장소에 맞게 입어야

    요즘 아웃도어는 가히 총천연색의 향연이다. 한때 온 나라에 불었던 다채로운 골프웨어 유행이 재림한 듯하다.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비즈니스맨의 출근 복장은 주중 내내 어두운 계열의 슈트나 보수적인 재킷에 갇힌 경우가 많다. 아웃도어 의류는 어떤 묵계처럼 지켜지는 남성의 주중 복장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옷에 컬러 포인트를 화끈하게 넣었다. 그래서 옷차림에 관심 없거나 내 평생 컬러풀한 옷은 결코 입지 못한다는 남성도 빨강, 파랑, 초록 등 자유로운 색채의 아웃도어 의류를 순순히 챙겨 입는다.

    아웃도어의 융성은 물론 부정적인 일이 아니다. 불투명한 미래, 치솟는 물가, 여기에 소득 양극화라는 복잡한 함수관계가 여전한 현실에서 사람은 누구나 개인의 삶에 어떤 여유를 이렇게라도 부여하고 싶은 것이다. 개인 건강을 지키는 생산적인 활동인 동시에 일상의 탈출구가 돼주기도 하니 고마운 패션이다.

    하지만 모든 장소에 다 통용되는 만능 옷이 과연 있긴 할까. 예컨대 세계인이 오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서, 그리고 홍콩 IFC 쇼핑몰에서 모두 아웃도어를 입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원래 캐주얼이란 사업 파트너와의 미팅과 일상 업무가 공존하는 비즈니스 캐주얼, 주말이나 휴가 등 완전히 개인적인 시간에 자유롭게 입는 위크엔드 캐주얼, 그리고 레저와 아웃도어 등에 통용되는 스포츠웨어로 구별한다. 지금 산에서 내려와 거리와 공항, 백화점, 사무실로 진출한 아웃도어 의류는 고유한 스포츠웨어 영역을 넘어 다른 캐주얼까지 포괄해버렸다. 아웃도어 스포츠웨어의 확산은 문제가 아니지만, 거기에만 집중하면 비즈니스에 필요한 점잖은 캐주얼이 점점 흐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가벼운 등산 중심의 한국 아웃도어 시장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악 전문가가 입어야 할 듯한 고가 옷이 유행함에 따라 가격 상승이라는 부작용도 발생한다.

    아웃도어 의류는 과감한 컬러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가벼워 몸의 부담을 줄여주고 땀을 배출하는 기능이 뛰어나다는 미덕을 지녀 전 연령대 남녀로부터 사랑받는다. 하지만 스포츠와 캐주얼의 구분이 너무 모호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옷이란 언제나 때와 장소에 맞게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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