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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tainment | 김지영의 스타데이트

“마그리트 매력 알면 빠져나오기 힘들걸요”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 주연 바다

  • 김지영 월간 ‘신동아’ 기자 kjy@donga.com

“마그리트 매력 알면 빠져나오기 힘들걸요”

“마그리트 매력 알면 빠져나오기 힘들걸요”
낮에는 한량으로, 밤에는 영웅으로 활약하는 영국 귀족 퍼시와 프랑스 공포정치 선동대장인 쇼블랑. 7월 초부터 상연 중인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에는 이 두 남자가 지독하게 사랑하는 한 여자가 등장한다. 프랑스 최고 여배우라는 명성을 뒤로한 채 영국으로 시집간 퍼시의 아내 마그리트다. 이 작품에서 무대를 압도하는 가창력과 연기력을 뽐내며 “마그리트와 싱크로율 100%”라는 찬사를 받는 뮤지컬배우 겸 가수 바다(33·본명 최성희)는 “여느 영웅 이야기와 달리 사랑하는 아내 때문에 영웅이 되는 이야기라서 더 끌렸다”고 털어놨다.

가수·뮤지컬·연극 삼색의 꿈

“마그리트가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만난 지 6주 만에 결혼한 걸까, 이 여자의 내적 성숙은 어디에서 기인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본래 인물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 (안양)예고에 다닐 때부터 생긴 버릇인데, 인물의 드러나지 않은 상황을 상상의 나래를 펴 그려본다. 난 마그리트가 귀족인 아버지와 천민인 어머니 사이에서 상처받고 자라면서 박애주의를 배웠을 테고, 동생 아르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배우가 된 이유도 힘없는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해서였을 게다. 내가 찾아낸 마그리트의 이런 매력이 나로 하여금 작품에 더 열정적으로 임하게 만들었다.”

바다가 뮤지컬에 입문한 건 걸그룹 S.E.S가 해체한 이듬해인 2003년 ‘페퍼민트’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여가수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이유리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이 그를 염두에 두고 쓴 창작뮤지컬이다. 안양예고 재학 시절부터 연극배우를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가수 길로 들어선 그에게 ‘페퍼민트’는 마음속에 억눌러온 배우의 끼를 발현할 절호의 기회였다.

“S.E.S로 활동하면서도 갈증을 느꼈다. ‘배우가 됐으면 어땠을까’라는…. 뮤지컬을 하면서 그런 갈증을 해소하고 나중에는 꼭 연극을 하고 싶었다. 지금 하는 뮤지컬에도 정극 부분이 있는데, 그때는 연극적 요소를 충분히 담아서 연기한다. 그런 게 내가 본능적으로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꿈은 연극배우를 하면서 가수도 하는 거다. 이제 멀티태스킹이 가능한 시대 아닌가.”



▼ TV 드라마나 영화도 있는데 왜 하필 연극인가.

“고등학생 때 연극을 해서 향수가 있다. 연극이 좋고 편하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드라마나 영화는 편집을 하지만 연극은 날것 그대로다. 그래서 내게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연극배우는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는데 두렵지 않나.

“전혀 두렵지 않다. 이미 어려운 생활을 해봤고, 금전적인 성공에 큰 욕심이 없다. 지금도 일반 직장인보다 조금 더 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뮤지컬 첫 작품으로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을 할 때도 부나 명성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 라이선스 뮤지컬도 들어왔지만 그건 내 연기력을 좀 더 다진 후 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 떳떳한 선택이라 믿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 모진 가난을 겪었는데도 금전적인 유혹에 초연한 사람 같다.

“아버지가 클럽을 하실 땐 부유하게 살았다. 근데 그때는 행복하지 않았다. 돈만 많은 집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부모님의 사랑이 깊어졌다. 가족이 전부 시골로 이사하고 엄마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 다니면서 돈을 버셨지만 누구도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 식구들끼리 더 아끼고 챙겨줬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란 사실을 일찌감치 배워서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기쁨과 영감 주면 만족

“마그리트 매력 알면 빠져나오기 힘들걸요”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의 남여 주인공인 박건형과 바다가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컨테이너 집에 살던 고1 때 집에 라면 한 봉지가 남아 있었다. 저녁을 못 먹어서 그걸 끓이고 있는데 아버지가 들어오면서 라면 냄새가 좋다고 하셨다. 무척 먹고 싶었지만 ‘아버지 드리려고 라면을 끓였다, 빨리 드시라’고 하니까 ‘우리 막둥이밖에 없네’ 하셨다. 그러고 나서 현관 밖 화장실에 있다가 아버지가 ‘아, 오늘은 진짜 나가기 싫다’고 혼잣말하시는 걸 우연히 들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에 일하러 나가시는 참이었다. 아빠가 아니라 한 남자의 인생이 참았던 눈물을 쏟게 했다. 우는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주먹으로 입을 틀어막고 엄청 울었다. 나 때문에 밤업소를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상고로 옮겨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 돈으론 가정형편이 나아질 리 없었다.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다, 그때까지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의 부친은 ‘고속도로 트로트 4대 천왕’이라 부르는 소리꾼 최세월(본명 최장봉) 씨다. 당시 최씨는 예고 진학을 고집하는 바다의 꿈을 지켜주려고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밤업소를 다녔다. 바다는 “소리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갓 쓰고 짚신 신은 채 지하철 타고 업소에 나가 무대에서 피를 토하며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의 고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에게 매일 기도하며 나 자신을 다잡았다”고 고백했다. 그의 집안사정을 아는 담임선생님은 “성희야, 넌 무조건 된다. 최고가 될 거야”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항상 밝고 씩씩한 그를 부잣집 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들은 염전 근처에 있던 그의 집을 다녀간 후 더 깊은 우애를 보여줬다. 그에게 ‘바다’라는 애칭을 지어준 이들이 바로 그 친구들이다.

▼ 앞으로 이루고픈 꿈이 뭔가.

“가수와 뮤지컬, 연극을 다 하고 싶다. 세 가지 모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다. 한쪽에 무게 중심을 두기보다 가수를 할 땐 가수로서 최고 무대를 보여주고, 연기를 할 땐 배우로서 100%의 끼를 발휘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노래나 연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쁨과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 욕심나는 배역이나 작품이 있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릿 오하라 역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라는 연극을 해보고 싶다. 정적인 작품, 진정성 있는 작품에 끌린다. 시류나 이미지를 고려하기보다 나 스스로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는 작품인지를 먼저 본다. 그것이 가장 나다운 선택이라고 믿는다.”



주간동아 2013.08.05 899호 (p68~69)

김지영 월간 ‘신동아’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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