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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아야 잘 산다 ③

난, 오늘도 뽀로로를 초대했다

40대 남자가 노는 법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난, 오늘도 뽀로로를 초대했다

난, 오늘도 뽀로로를 초대했다

1 잘 논다는 건 스스로를 유쾌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 수염 모양 액세서리는 버튼을 누르면 할아버지 목소리가 나온다. 2 책과 노트북, 펜만 있으면 카페에서 혼자 종일 잘 논다.

난 좀 놀아본 남자다. 내가 쓴 ‘라이프 트렌드 2013’의 부제가 ‘좀 놀아본 오빠③의 귀환’이기도 한데, 난 과거 X세대였다. 대중문화와 소비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X세대가 나이를 먹어 40대가 된 것이다. 요즘 나는 오빠로 불리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패션도 좀 알고, 명품도 좀 알고, 문화예술도 좀 알고, 결정적으로 카드 긁는 맛도 좀 안다. 그렇다고 음주가무를 즐기는 건 아니다. 가끔 술은 마시지만 그래 봤자 1년에 손에 꼽을 정도다. 골프도 치지 않는다. 등산이나 캠핑도 취미가 아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노는 이미지와는 조금 다를지언정 난 분명 꽤 많이 놀았던 사람이고, 지금도 잘 논다.

평일 낮 도서관과 미술관 산책

주말엔 아내와 합세해 잘 놀지만 평소엔 서로 바빠 함께 놀기가 꽤 어렵다. 심지어 아내와 저녁식사 한 번 하려면 서로 스케줄을 잡아야 할 정도다. 상대적으로 나는 덜 바쁘고, 아내는 무척 바쁘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월급쟁이가 아니고 아내는 월급쟁이여서 그렇고, 아내는 이혼율이 높은 직장 중 하나라는 잡지사에서 편집장을 하고 있어 더 그렇다.

하여간 주중에는 나 혼자 잘 놀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평일 낮에 놀 때는 주로 미술관, 도서관, 카페를 찾는다. 평일 오전에 조용한 미술관을 가본 적 있는가. 미술관이 마치 내 것 같다. 도서관도 그렇다. 난 전용 도서관이 두 곳 있다. 서울 정독도서관과 이진아기념도서관. 그냥 내 마음대로 내 전용 도서관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도서관과 그 안에 있는 책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고, 그 공간을 아낀다. 그럼 충분히 내 것이 된다.

카페는 넋 놓고 몰입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적당한 소음과 커피가 뇌를 긴장시켜 새로운 생각을 잘하게 만든다. 그래서 난 카페에서 책을 보며 글 쓰는 걸 좋아한다. 요리도 좋아하고, 빨래나 청소도 놀이 삼아 자주 한다. 이런 게 다 내 놀이다. 사실 땀 흘리며 뛰어다니진 않지만,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세상 누구보다 다이내믹하다.



나는 주로 아내와 논다. 20대 때는 친구들과 놀았지만, 30대를 넘고 40대에 이르니 아내만 한 친구도 없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유흥의 의미라면, 아내와 노는 건 충전의 의미다. 내가 아내와 여전히 잘 노는 건 전적으로 운이 좋아서다. 결혼한 지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주말 이틀 중 하루는 꼭 아내와 데이트를 한다. 미술관에 가서 미뤄놨던 전시회를 보거나 공연장에 가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관람하고 예술영화 전용관에서 심야영화도 본다. 그러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며 수다를 떤다. 거기에다 그녀의 물주가 돼 백화점을 따라다니기도 한다. 가끔은 쌍으로 누워 스킨케어와 마사지를 받는다. 이런 레퍼토리를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잘 섞어 실행하는데, 이걸 13년째 매주 한 번 정도는 하고 있으니 결혼 후에만 600번쯤 한 셈이다.

쌍으로 노는 재미는 편안함에 있다. 뭔가 자극적이고 신기한 것보다 담백하고 은근한 것이 오랫동안 지속하기에는 더 좋지 않나. 그간 특이한 일도 꽤 했지만 결국 13년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은 무난한 것이었고, 이것이 소소한 일상의 놀이로 정착된 듯하다.

난 사실 놀기와 일하기가 구별되지 않는다. 남이 보기엔 일하는 것처럼 보여도 난 일이라 여기지 않고 일하고, 남들한테 빈둥거리며 노는 것처럼 보여도 나는 일할 때가 많다. 가령 아내와 미국 뉴욕에 가면 난 놀면서 동시에 일한다. 트렌드 연구자이면서 비즈니스 창의력을 연구해서인지 여행은 많은 정보를 해석하고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난, 오늘도 뽀로로를 초대했다

3 집이 덕수궁 근처라 덕수궁과 정동길, 정동공원이 동네 마실 코스다. 4 뉴욕에 가면 오페라, 발레, 뮤지컬, 미술관 관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뉴욕 맨해튼 링컨센터 전경.

빈둥거리며 창의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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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을 바라보며 산책하다 아내와 와인 낮술 중. 여행 사진에서 내가 나오는 건 그나마 발이 대부분이다.

둘이 하는 놀이의 압권은 뭐니 뭐니 해도 여행이다. 특히 해외여행은 2주 정도 가는 걸 선호하는데, 때로는 서로 다른 일정을 짜서 오전에 각자 돌아다니다 오후에 만난다. 해외여행은 주로 대도시로 다닌다. 뉴욕이나 런던, 파리, 도쿄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도 새로운 트렌드가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휴가를 가더라도 몸을 편히 쉬지 않고, 새로운 걸 보면서 재충전한다. 그러다 보니 놀러간 건지 일하러 간 건지 애매할 수밖에 없다. 다행인 건 아내도 마찬가지란 점이다.

잘 놀아야 잘 산다는 말은 정말 내게 딱 맞는다. 난 책을 읽는 것도, 새로운 보고서나 자료를 보는 것도, 글을 쓰거나 심지어 책을 만드는 것도 놀이로 여길 때가 많다. 기업에서 비즈니스 워크숍이나 특강을 할 때도 그냥 재미있게 떠들겠다는 마음가짐이다. 내가 하는 걸 일로 여기면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수 있다.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새로운 걸 분석해, 새로운 사람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팔아 먹고사는 사람은 늘 머리를 새롭게 채우고 총기를 충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일이 재미있지 않으면 오래 하기 힘들다. 그래선지 자연스럽게 이런 태도를 키워왔나 보다.

자주 그러진 않지만, 일보다 노는 걸 우선시할 때가 있다. 예전엔 박찬호였고 요즘은 류현진이다. 그들이 등판하는 날엔 가급적 시간을 비워둔다. 메이저리그 경기는 대개 한국시간으로 새벽이나 오전에 하는데, 빅게임이 잡힌 날은 오전에 업무 미팅이나 강연 요청이 와도 거절한다. 클라이언트에겐 비밀이었는데 이참에 털어놓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부턴 아예 대놓고 양해를 구할까 보다. 하여간 놓치면 안 될 공연이 있을 때도 그렇고, 친구들과 특별한 만남이 있을 때도 그렇다. 그럴 때는 일 안 하고 돈 안 벌어도 된다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잘 노는 덕분인지 일할 때 몰입을 잘한다. 뽀로로 에피소드 첫 번째가 ‘노는 게 제일 좋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나도 노는 게 제일 좋다.



주간동아 2013.07.29 898호 (p54~55)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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