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4

2013.07.01

100% 공연 자유… 음악은 건드리지 않는다

Mnet ‘MUST 밴드의 시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3-07-01 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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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공연 자유… 음악은 건드리지 않는다

    Mnet ‘MUST 밴드의 시대’ 무대에 선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윤도현의 소개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가 무대에 올랐다. 잔디와 꽃으로 장식한 무대가 신들의 정원 같았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멤버들은 그리스 신들을 연상케 하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등장했다. 히피처럼 차려입은 그들의 친구 20여 명이 ‘러브 앤드 피스’ 깃발을 들고 함께 올라왔다. 그들이 연주한 곡은 송창식의 ‘우리는’. 자작곡인 ‘사과’에 송창식의 가사를 입힌 리메이크곡이다. 곡 후반, 함께 노래하던 친구 한 무리가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밴드 보컬이자 기타리스트인 조웅이 친구들 위로 쓰러졌다. 그들의 손이 만들어내는 파도를 타고, 조웅은 기타 솔로를 연주했다. 한국 음악방송 사상 전례가 없는 이런 멋진 무대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Mnet ‘MUST 밴드의 시대’(‘밴드의 시대’)다.

    지금 한국 방송계에서 예능과 음악이 결합하는 방식은 사실상 하나, 서바이벌 혹은 오디션이다. 그렇지 않으면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포맷은 구조적으로 밴드 음악과 궁합이 맞지 않는다. 밴드는 창작 및 표현에 있어 철저히 주체가 돼야 한다. 비틀스 이래 스스로 음악을 생산하고 연주하지 않는 밴드가 음악계에서 인정받았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따라서 기성 밴드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가는 건 음악인으로서의 소중한 뭔가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밴드와 예능을 접목한 첫 사례였던 KBS 2TV ‘TOP 밴드’가 비판받았던 이유는 자작곡이 아닌 리메이크곡만 연주함으로써 ‘이름’은 알리되 ‘음악’은 알릴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예능국이 아닌 시사교양국에서 제작을 맡은 탓에 ‘재미’에 대한 감각도 떨어졌다. 특히 기존 밴드가 대거 참여했던 시즌2는 음악적 성취와 대중의 호응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말았다.

    ‘밴드의 시대’는 그런 실패를 답습하지 않는다. 편성이나 시청률을 위해 기존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틀을 따르기는 한다. 회당 밴드 6팀이 3개 조를 이뤄 경연을 펼치고, 각 라운드의 승자 3팀 중 그 회의 우승자가 뽑힌다. 그렇게 6차례 경연을 걸쳐 선발된 밴드 6팀이 준결승과 결승을 벌여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각 회 우승자에겐 500만 원, 최종 우승자에겐 5000만 원이 주어진다. 딱 8회. 짧고 굵다.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 1회만 출연하는 것도 아니다. 패자들에게도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 그럼에도 경쟁은 경쟁이요, 예능은 예능이다.

    ‘밴드의 시대’ 주요 출연 팀은 그동안 각종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을 거부해왔다. 3호선 버터플라이,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갤럭시 익스프레스, 델리스파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지난봄부터 기획된 ‘밴드의 시대’에 합류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하나다. 공연할 때만큼은 밴드에게 100% 자유를 주겠다는 제안 때문이었다. 또한 음악을 일절 건드리지 않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즉 프로그램 진행상의 이유로 공연 영상 중간에 다른 화면을 삽입하거나 심지어 노래를 중간에 편집해버리는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밴드의 시대’는 다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선 볼 수 없는 미덕이 있다. 방청객의 과도한 리액션 샷으로 시청자에게 흥분 혹은 감동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 첫 번째다. 있는 그대로의 음악을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녹화 시간보다 밴드의 준비를 우선시하는 게 두 번째다. 밴드가 준비를 완벽하게 마친 후에야 녹화가 진행되고, 지연돼도 재촉하는 사람이 없다. 이런 ‘밴드 중심’의 방침은 무대 연출을 철저히 밴드 의사에 맞춘다는 것으로 마지막 미덕을 완성한다. 첫 회 녹화 당시엔 델리스파이스의 요구에 따라 음향 및 악기팀이 교체됐다. 2회에서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공연 마지막에 모든 악기를 다 부쉈다. 제작진은 이들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구현해줬을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작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방송이 출연진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창의력을 믿고 맡기는 시스템 말이다. 밴드는 공연을 통해 단련되고 성장하는 법. 현장에서 경험을 쌓을수록 아이디어는 늘어간다. 이 경험의 영감이 방송이란 기록으로 남는 것은 한국 대중음악의 미래에도 소중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이제 막바지로 향하는 이 프로그램의 다음 시즌도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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